주총 시즌 앞두고 ‘행동주의 기조’ 확산, ‘기업 사냥꾼’ 우려에도 주주환원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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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행동주의 투자에 힘 실었다
우려 쏟아내는 기업들, "주주 가치 제고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행동주의 확산에 투자 위축 가능성도, 기업 '대비책 마련'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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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는 최근,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주주환원에 대한 요구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영향이다. 특히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은 여러 곳이 힘을 합쳐 기업 한 곳을 겨냥하는 ‘울프 팩(wolf pack·늑대 무리)’ 전략을 구사하며 영향력을 키우는 모양새다. 이에 기업들은 주주 가치 제고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행동주의 투자자들에 의해 경영 활동과 투자가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성장하는 행동주의, ‘밸류업’으로 날개

27일 글로벌 기업 거버넌스 리서치업체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가 발간한 ‘2024년 주주 행동주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 지역에서 기업 가치 제고를 요구받은 기업은 총 220개사로 집계됐다. 2020년 126개사에서 3년 만에 2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특히 한국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는 공개 주주제안을 받은 기업 수가 10곳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77곳으로 3년 새 7.7배나 불어났다. 아주기업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4월 1일부터 올해 2월 14일까지 나온 국내 공시 가운데 ‘소송 등의 제기·신청(경영권 분쟁 소송)’ 공시는 18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다.

행동주의 펀드란 회사의 주인인 투자자가 기업의 다양한 경영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의결권 행사나 주주제안, 집중투표 청구, 회계장부 열람 등을 무기로 기업에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요구하며 단기 주주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특히 최근엔 행동주의 펀드 여럿이 연대해 목소리를 더욱 키우는 울프 팩 전략을 취하면서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앞서 영국계 자산운용사 시티오브런던과 미국계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한국계 안다자산운용 등 5개 행동주의 펀드 연합이 주총 시즌을 앞두고 삼성물산에 5,000억원(약 3억8,000만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보통주 1주당 4,500원 배당 등을 요구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이 요구한 배당은 삼성물산 이사회가 제시한 보통주 1주당 2,550원(우선주 2,600원)보다 75% 많은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 행동주의 펀드의 각개전투도 이어진다. 싱가포르계 행동주의 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탈피트너스(FCP)는 차기 사장 선임 문제를 두고 KT&G와 충돌했고,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지주에 이사회 이사 후보 5명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차파트너스는 금호석유화학을, KCGI자산운용은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주주제안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양상에 대해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과거 행동주의는 외국계 헤지펀드 중심이었지만 2018년 7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국내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활발해졌다”며 “또 경영 참여 목적의 사모펀드가 투자 대상 기업 주식을 10% 이상 취득해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하는 의무가 사라지면서 한국 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강화됐다”고 풀이했다. 정부 차원에서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행동주의의 기세를 한껏 올렸단 의견도 나온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본질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있는 만큼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목적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난색’, “투자 위축 가능성 있어”

행동주의 펀드의 압박이 거세지자, 기업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공격적인 행동주의 행보가 경영권 불안을 초래하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어서다. 실제 행동주의 펀드들은 기업의 장기적 성장엔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삼성물산 사례만 봐도 그렇다. 삼성물산이 5개 펀드 연합으로부터 받은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할 경우 주주환원 규모는 총 1조2,364억원(약 9억3,000만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올해 삼성물산의 잉여현금흐름 100%를 초과하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이 정도 규모의 현금 유출이 이뤄지면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체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요구가 실제 주총에서 통과되는 비율은 아직 낮다. 이들의 핵심 요구인 현금·주식 배당과 주식 취득·소각 등 또한 쉽게 통과되지 않았다. 그러나 해를 지날수록 이들의 요구가 통과하는 비율은 높아지는 추세다.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되고 있단 방증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주주 행동주의 펀드 역할 확대에 따른 시장영향’ 자료를 보면 지난해 주주 행동주의 투자자에 의한 주주제안이 실제로 정기주총에서 통과된 비율은 20.2%에 달했다. 이는 2021년 5.5%, 2022년 5.6%를 한참 상회하는 수준이다. 기업 입장에선 단기 수익을 먹고 빠지는 식의 ‘기업 사냥꾼’ 행동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대비책 마련이 보다 시급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