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프로’ 애플 독주에 LG-메타 합종연횡, XR·AI가 LG의 구원투수
하드웨어 명가 LG전자, 메타와 손잡고 XR 등 사업 진출 영업 부진 타개책은 AI? LG-메타 협업에 역량 강화 기대감↑ 내부에서만 수익 내던 LG경영개발원, 이번 기회로 '한계 돌파'하나
IT 하드웨어 명가로 꼽히는 LG전자가 첨단기술 분야 최강기업 중 하나인 메타와 손을 잡는다. AI, XR(확장현실) 등 미래 성장성이 높은 분야를 함께 걸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일단 내년 1분기 출시를 목표로 고성능 XR 기기를 공동 개발하고 차후 AI 챗봇 등을 구현할 수 있는 메타의 LLM(대규모언어모델) 기술을 LG전자의 TV, 가전, 모바일 기기 등에 적용하기로 했다. LG전자와 메타의 합종연횡이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LG전자의 ‘뒷심’이 돼줄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LG-메타 협업체계 가시화, “내년 XR 헤드셋 출시”
LG전자는 2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메타와 XR, AI 신사업 협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엔 지난 27일 방한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와 권봉석 LG 최고운영책임자(COO), 조주완 LG전자 CEO, 박형세 HE사업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 테이블에 오른 첫 주제는 차세대 XR 기기 공동 개발이었다. 양사는 애플의 ‘비전 프로’를 능가하는 XR 헤드셋을 내년 1분기까지 출시하기로 합의했다. 제품 양산은 공식적으로 LG전자가 맡기로 했다. LG전자는 TV에 들어가는 운영시스템(OS)인 ‘웹OS’를 통해 쌓은 콘텐츠 서비스를, 메타는 5년 넘게 메타버스 사업을 벌인 노하우를 XR 기기에 담을 방침이다.
AI 기술 협업 방안도 논의 안건에 올랐다. 주제는 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LG전자 제품 7억~8억 대를 메타의 LLM 기반 AI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저커버그 CEO는 최근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갖춘 AGI(범용인공지능) 개발을 선언했는데, 그 출발점이 현재 개발 중인 LLM ‘라마 3’다. 조주완 CEO는 특히 ‘온디바이스 AI(인터넷 연결 없이 기기 자체에서 구동되는 AI)’ 관점에서 두 회사의 시너지 창출 가능성에 많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CEO는 “(AI 관련) 협력 범위는 굉장히 넓다”고 말했다.
LG전자는 XR 사업 추진에 있어 디바이스뿐 아니라 플랫폼과 콘텐츠 역량까지 균형 있게 갖춰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메타와의 협업이 추진된 배경에도 이 같은 인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 차세대 XR 기기 개발에 메타의 다양한 핵심 요소기술과 LG전자의 기기 역량을 결합하면 큰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XR 기기는 모바일 스크린의 한계를 뛰어넘는 몰입감과 직관성을 갖춰 다수의 전문가들로부터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 있는 ‘포스트 스마트폰 기기’로 평가받는다. 개인이 직접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라는 점에서 고객 접점을 대폭 늘릴 수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글로벌 위기 둘러싸인 LG, 재무구조 악화도
최근 LG전자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대, 경기 침체 등 경영 환경을 둘러싼 복합 위기에 잠식되고 있다. LG전자의 최대 강점 중 하나로 꼽히는 디스플레이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양상이다. LG전자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022년 2조원(약 15억 달러)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경기 침체에 따라 수요 부진이 심화하면서 역대급 어닝쇼크(예상보다 부진한 실적)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더욱이 실수요가 언제 회복 국면에 접어들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실질적인 실적 개선은 당분간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매년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해 온 LG화학조차 재무구조 악화 우려에 휩싸인 상태다. LG화학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2조5,292억원으로 전년 대비 15.1% 감소했다. 특히 석유화학 부문은 영업손실 1,43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고, 첨단 소재 부문은 5,85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전기차 시장 악화로 수익성이 전년 대비 36% 악화했다. 그러는 사이 회사채 조달 폭이 늘면서 재무구조 악화가 가시화했다. 현금 곳간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순차입금은 2022년 말 7조1,750억원에서 지난해 3분기 12조7,522억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현금창출력의 공백을 차입금으로 메우고 있단 의미다.
메타가 ‘탈출구’? ‘AI 연구원’ 역할 강화도 기대
이 같은 상황에서 메타와의 협업체계가 가시화한 건 LG전자에 있어 명백한 호재다. 업계에선 이미 메타와 손을 잡은 LG전자가 글로벌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분야는 단연 AI다. 최근 자사 가전제품에 AI 기능을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는 LG전자에 있어 메타와의 XR 기기 협업은 AI 기술 역량을 강화할 최적의 환경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LG전자가 “생활가전 사업의 목표인 ‘가사 해방을 통한 삶의 가치 제고(Zero Labor Home, Makes Quality Time)’ 실현을 AI를 통해 가속화할 것”이라고 언급한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 2020년 발족한 LG전자 내 AI 전담 연구 조직인 ‘LG AI 연구원’의 역할 강화에도 개연성이 생겼다. 그간 LG AI 연구원은 LG 계열사 내에서만 수익을 내는 등 명확한 한계에 가로막혀 있었다. 실제 지난 2022년 LG AI 연구원의 상위 조직 LG경영개발원이 올린 매출은 총 2,046억1,270만원이었는데, 이중 특수 관계자와의 거래로 발생한 매출만 2,044억7,900만원에 달했다. 사실상 매출의 대부분이 내부에서 발생한 셈이다. 다만 LG경영개발원의 매출이 꾸준히 상승 지표를 이루고 있었던 만큼 역량 자체는 부족하지 않으리란 평가가 많다. 산하의 LG AI 연구원 또한 메타와의 협업 아래 역량을 키운다면 LG전자의 제반 기술 강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