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인플레이션 둔화세 속, 신중론 고수한 파월 의장 “금리 인하에 더 큰 확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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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 의장 “물가둔화 확신 필요”, 기존 입장 재강조
골드만삭스 "디스인플레이션 과정 매우 더딜 것" 지적
월가를 중심으로 퍼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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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모습/사진=Fed 유튜브 캡처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6일(현지시간)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물가가 둔화됐다는 확신(confidence)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리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 경제가 견조한 속도의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침체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월가에서는 현 상황이 이어질 경우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월 의장 “인플레이션 둔화 확신 전까진 금리 인하 없을 것”

6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은 미 연방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경제가 예상 경로로 움직인다면 올해 어느 시점에 현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되돌리는 완화책을 시작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면서도 “경제 전망은 불확실하며, 물가상승률 2% 목표로의 진전은 보장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날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에 나서기 전 물가가 잡혔다는 더 큰 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인 2%로 지속 가능하게 움직인다는 더 큰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기준금리 인하가 적절하지 않다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인플레이션이 2%로 둔화할 것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던 기존의 입장은 물론 Fed 다수 위원의 언급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1월 FOMC 의사록에 따르면 대부분 Fed 위원은 정책 기조를 너무 빨리 완화할 경우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인플레이션이 2%로 지속 가능하게 하락하고 있는지 판단할 때 향후 경제 데이터를 신중하게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은 신중론을 유지하는 배경으로 미 경제가 튼튼하다는 점을 들었다.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질의에서 “나와 동료들은 미국 경제가 견조한 속도의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국 경제가 가까운 미래에 침체에 빠질 증거나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민자 유입 증가가 2022∼2023년 미국 경제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 경제가 연착륙(soft landing)으로 향하고 있느냐’는 질의에는 “경제가 견조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만 말하겠다”고 답하며 용어 사용에 신중한 모습을 취했다. 미 상업용 부동산발 은행 대출 부실화 위험에 대해서는 은행권의 손실이 예상된다면서도 제어할 수 있는(manageable)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지지부진한 디스인플레이션 속도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완연한 둔화 추세에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2023년 6.8%에서 2024년 5.8%, 2025년 4.4%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들은 예상보다 빠른 디스인플레이션에 세계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디스인플레이션 신호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미국 경제의 강한 성장세는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 신호가 가짜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지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수년간 미국 경제가 몇 년간의 가파른 물가 상승세를 겪었음에도 거의 타격을 입지 않고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났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다시 회복된다면 Fed는 금리를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이에 따라 현재는 거의 사라진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가 다시 되살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Fed가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측정치인 개인소비지출(PCE) 지수는 지난 1월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을 기록하며 작년 중순의 7% 상승에서 크게 둔화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물가를 제외한 근원 PCE 지수 역시 최근 연율 기준 2.3% 증가에 그치며 Fed의 목표치인 2%에 근접했다. 다만 미국의 상품 물가가 하락한 것과 달리 많은 서비스 부문 물가는 팬데믹 이전 추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금 상승률이 꺾이지 않은 점도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미국인들의 전년 대비 임금 상승률이 5.5%에서 4.5%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Fed의 물가 목표치를 고려했을 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동 부족’이라는 키워드가 구글 검색량 최다를 기록할 정도로 일자리가 많았다. 이에 최근 전년 대비 임금 상승률은 팬데믹 이전 수준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뛴 5%에 근접했다. 임금 상승으로 비용이 늘어난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이를 전가하면서 물가 상승을 부추긴 결과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노동 수요 감소가 임금 상승률 둔화로 이어지려면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최종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이 매우 느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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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더라도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월스트리트에서는 미국 경제가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경기침체)으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미국 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꼽힌다. 유가 급등, 실업률 상승, 완화적 통화 정책으로 1980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4.8%까지 치솟자 Fed의 정책 입안자들은 당시 금리를 거의 20%까지 인상했다.

이에 대해 마르코 콜라노빅 JP모건체이스 수석 시장전략가는 “현재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우리는 이미 한 차례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정책과 지정학적 발전이 이대로 간다면 두 번째 (스태그플레이션) 물결을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몇몇 Fed 관계자들은 금리 전망을 논의하면서 2% 인플레이션에 이르는 경로를 “평탄하지 않다(bumpy)”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지정학적 위험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대표적 요인이다. 지난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도 아직 진행 중에 있다. 게다가 산유국에 대한 전쟁 위험은 국제유가의 변동성마저 부추긴다. 하마스 전쟁이 다른 산유국으로 확산할 경우, 혹은 다른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이로 인해 전 세계가 다시 인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공급측 인플레이션은 세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다시 긴축으로 선회하도록 하는 만큼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빅테크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빅테크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규모 채용을 단행했지만, 비대면 경제 호황이 끝난 지난해 하반기부터 잇달아 긴축 경영으로 전환했다. 글로벌 빅테크의 감원 현황을 추적하는 레이오프(layoff.fyi)에 따르면 새해부터 2월 중순까지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메타, 아마존, 구글 등 157개 빅테크 기업들에서 약 4만 명이 감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더해 유럽연합(EU)의 빅테크 옥죄기 움직임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법안인 디지털시장법(DMA)은 이달 시행을 앞두고 있다.

중국의 경제 반등 여부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올해 2분기부터 안정 추세를 보이며 투자와 소비 회복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우려도 크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올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5.1%를 기록할 경우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제로 코로나 정책이 유지됐을 때보다) 약 0.9%포인트를 추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Fed의 긴축 기조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증폭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