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아파트 외면하는 재건축 조합들, 안 짓는 게 아니라 ‘못’ 짓는다?
물가 상승세 타고 뛰어오른 건설 자잿값, 공사비 부담 급증 "초고층은 더 비싼데" 수익성 고려해 층수 낮추는 조합 속출 '자기자본·PF 리스크' 떠안은 건설사·시행사도 등 돌려
‘초고층 아파트’를 꿈꾸던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건설 자재 가격·인건비가 나란히 뛰며 공사비 부담이 가중, 초고층 아파트 설립의 장벽이 눈에 띄게 높아진 탓이다. 급등하는 분담금을 견디지 못한 일부 단지는 50층 이상(높이 200m) 초고층 재건축에서 50층 미만 준초고층 재건축으로 눈높이를 낮추는 추세다.
뛰어오르는 공사비, 초고층 아파트 ‘주춤’
지금껏 초고층 아파트는 ‘고급화의 상징’으로 꼽혀왔다. 특히 조망권이 좋은 한강 인근 서울 재건축 단지의 경우, ‘랜드마크’ 입지를 점하기 위해 최대한 건물을 높이 올리며 일종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건설 자재 가격 인상으로 공사비가 뛰고,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이 급증하면서 이 같은 ‘초고층 경쟁’에 본격적인 제동이 걸리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건설용 중간재 물가지수(2015년=100)는 2020년 12월 106.4에서 지난해 12월 144.2로 35.5% 치솟았다. 이는 제조업자가 판매한 상품 전반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22.4%)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레미콘(34.7%) △시멘트(54.6%) △철근(64.6%) △형강(50.4%) △아연도금강판(54.1%) △건축용금속공작물(99.5%) 등 대부분의 건설 자재 가격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 영향이다.
건설 자잿값 상승세는 정비 사업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주거환경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서울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등)의 연도별 3.3㎡(1평)당 평균 공사비는 2019년 490만2,000원에서 지난해 754만5,000원으로 53.9% 급등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상복합 재개발 현장에서는 3.3㎡당 공사비가 1,000만원을 넘기도 한다”며 “공사비 상승세가 피부로 체감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분담금 부담에 눈높이 낮추는 조합들
공사비 증가는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일반적으로 초고층 아파트의 경우 △하중을 버티기 위한 고강도 자재 투입 △복잡한 인허가 절차 △안전 확보 비용 확대 등으로 인해 일반 단지 대비 공사비 부담이 큰 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층수가 50층을 넘어가면 공사비가 최소 40%가량, 경우에 따라 두 배 수준까지도 추가 투입된다고 보면 된다”며 “자재 가격이 인상되면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 조합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단지는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눈높이를 속속 낮추고 있다. 무리하게 초고층 아파트 건설을 추진할 경우, 사업 속도가 지연되고 비용이 급증하며 사업성 전반이 악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일례로 한강 인근 지역에서 70층 이상 재건축을 추진하던 성수전략지구 내 1지구는 최근 소유주 투표를 진행, 50층 이하 ‘준초고층’ 재개발로 눈을 돌렸다. 50층 미만 재개발을 선택한 조합원은 50.97%, 초고층 재개발을 선택한 조합원은 47.47%였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한강 인근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개포주공 6·7단지는 지난해 서울시의 ’35층 룰(서울의 아파트 층수를 최대 35층으로 제한하는 규제)’ 폐지에 따라 49층 재건축을 타진했지만, 결국 기존 안대로 35층 재건축안을 진행하기로 했다. 고층 아파트 건설 시 따라오는 비용 부담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도 최고 층수를 49층으로 상향하는 안을 검토했으나, 결국 기존 상한선인 35층 높이로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PF 위기 겪는 시행사·건설사에도 부담
건설사·시행사들 역시 초고층 아파트 설립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리스크,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 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대다수 국내 시행사는 부동산 개발 총사업비의 5~10%가량을 자기자본으로 충당하고, 이외 비용을 PF를 통해 충당해 왔다. 자기자본이 적은 상태에서 대출에 의존하는 구조인 셈이다.
문제는 현재 금융당국은 PF 조달 시 시행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최대 20%까지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점이다. 국내 대다수 시행사가 영세 업장이다. 충분한 자기자본과 신용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 국내 시행사에는 ‘규제 리스크’ 속 초고층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 만한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만약 시행사가 이 같은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초고층 사업을 진행할 경우, 공사 비용 상승으로 사업성이 악화하며 건설업계 내 ‘연쇄적 부실’ 리스크가 발생하게 된다.
신용이 부족한 시행사들은 PF 대출을 받을 때 건설사(시공사)의 보증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이 벽에 부딪히거나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보증을 선 건설사가 PF 대출을 대부분 갚아야 한다. 대다수 건설사가 부실 PF 위기에 봉착한 현재, 시행사는 물론 건설사와 금융회사 등이 연쇄적으로 부실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건설업계 전반에 찬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모두가 선호하던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시장의 현시점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