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 배터리 시장 악화와 투자금 마련 난항에 단계적 구조조정 돌입
SK온, 임원부터 단계적인 구조조정 진행 중 임원 20% 축소, 미국 현지 공장도 생산 인력 감축 전문가들 "전기차 수요 감소로 배터리 시장 악화 장기화" 전망
배터리 시장 활황에도 불구하고 적자 행진을 이어왔던 SK온이 단계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 모양새다. 22일 SK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들어 3월까지 총 13명의 임원이 퇴직했다. 지난해 11월에 단행됐던 임원인사에서 진교원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퇴임자 명단에 올랐던 것에 이어, 1월에 11명, 2월 및 3월에도 각각 1명씩의 상근 임원이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기준 SK온의 미등기 임원 수는 65명으로, 약 20%가 퇴사한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임원단이 교체되는 일은 있었으나 신규 선임된 미등기 임원이 불과 5명에 그친다는 점에서, 업계는 SK온이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흑자 전환 실패, 투자금 마련도 난항
SK온의 연간 영업 손실은 2021년 3,137억원에서 2022년 1조727억원(약 8억 달러)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5,818억원의 손실을 이어가면서,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데다, 올해도 실적 전망이 밝은 편이 아니다. 해외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재 상황이라면 올해부터 내년까지 적자 지속할 것”이라고 밝히며, SK온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하향 조정했다.
현재 SK그룹은 이례적으로 글로벌 IB(투자은행) 3곳을 선임하고 SK온 투자유치를 진행 중이다. 지난 20일 IB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세 곳을 공동주관사로 선임하고 최대 2조원(약 15억 달러)의 투자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에 한국투자증권프라이빗에쿼티(한투PE) 컨소시엄과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에서 2조3천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받던 당시의 기업 가치가 22조원으로 평가됐던 것이 이번 투자 라운드에서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양대 컨소시엄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22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지만, 전기차 수요 감소에 따라 배터리 시장이 악화되면서 직전 투자 수준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양대 컨소시엄은 2026년까지 SK온을 상장하고, 상장에 실패했을 경우에는 콜 옵션에 따라 투자금을 반납하거나, 투자자들 주도로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SK온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조항(드래그 얼롱)도 보장받은 바 있다. 그러나 SK스퀘어가 지난해 자회사인 11번가에 대한 콜 옵션을 포기하며 투자사와 국민연금에서 신뢰를 잃은 탓에 신규 투자자는 추가적인 보호 조건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 큰 문제는 양대 컨소시엄과의 지난해 계약에는 신규 투자자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경우 기존 투자자에게도 같은 조건을 보장해주겠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부채 21조에 현대·기아차에서 2조원 차입금도
양대 컨소시엄으로부터의 투자에 이어 지난해 5월 SK온이 현대자동차와 기아로부터 2조원을 차입하는 것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이 채무보증을 서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전기차 수요 확대에 따른 배터리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나섰을 것이라는 분석이지만, 전기차 및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동반 하락하면서 전략적 제휴 목적의 대출이 SK온에 대한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미 지난해 말 기준 부채가 21조원을 넘긴 상황인 만큼, 자칫 SK이노베이션에 재무적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재무적 부담이 가중되자 임원단 퇴사와 더불어 미국 현지 생산 인력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온의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는 지난해 11월 미국 조지아주 공장 생산을 축소하고 일부 직원에 대해 임시 무급휴직 조치를 시행했다. SK온의 조지아주 공장은 22기가와트시(GWh) 규모로 포드·폴크스바겐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해 왔으며, 빠른 시설 확장을 위해 고용 목표(2,600명)보다 많은 3,000명 넘는 직원을 고용해 온 바 있다. 당시 조 가이 콜리어 SKBA 대변인은 “전기차 시장 수요에 맞춰 인력과 생산라인을 조정하기 위한 한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업계 동반 부진도 SK온의 투자금 마련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실제로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의 생산 인력을 약 10% 축소했다. 해당 공장은 SK온의 조지아주 공장 대비 약 절반의 인력을 고용하는 규모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단계적 인원 감축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수요 둔화에 더해 그간 공격적인 시설 확장으로 발생한 일부 유휴(遊休) 인력을 조정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