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에 “재건축보단 리모델링”, 특별법 수혈에도 결심 굳히는 신도시들
재건축 장려하는 정부, 정작 시장은 "리모델링이 낫다" 정책에 흔들리는 1기 신도시, 하지만 "리모델링 강세 이어질 듯" 정책 매력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경기 악화 등 부담 여전"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으로 재정비가 추진되는 1기 신도시 평촌에서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결정한 단지가 나왔다. 정부가 특별법으로 재건축 촉진에 나섰지만 막상 시장은 정책적 매력이 크지 않다고 보는 분위기다. 부동산 경기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는 점도 재건축에 부담을 가중한다. 이렇다 보니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 갈팡질팡하던 단지들도 하나둘 결심을 굳히는 모양새다.
목련2단지, 재건축 아닌 리모델링 결정
20일 업계에 따르면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목련2단지’는 최근 권리변동계획 확정총회를 열고 과반의 동의를 얻어 수평·별동 리모델링 계획을 확정했다. 총회 가결로 목련2단지는 195% 용적률의 994가구를 299.74% 용적률의 1,023가구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공사비는 3.3㎡당 778만원, 추정 비례율은 80.23%다. 공사비가 오르면서 조합원들은 4억7,900만원(전용 58㎡ 기준)의 분담금을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추정치 2억8,600만원의 두 배 규모다. 목련2단지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적용 대상이다. 지하철 4호선 범계역 승강장과 약 120m 거리에 위치한 초역세권 단지로, 용적률 인센티브도 노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목련2단지 조합원들이 기존 추정치의 두 배 규모 분담금을 내면서까지 리모델링을 결정한 건 최근 공사비 상승으로 재건축 이점이 크게 깎여나간 탓이다.
이전에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공공기여 등 기존 부담 요소로 인해 재건축 매력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엔 공사비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선 ‘재건축으로 돌아서면 감당 못 할 지각비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실제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480만3,000원이던 3.3㎡당 평균 공사비는 지난해 687만5,000원으로 훌쩍 뛰었다. 건설 원가의 30%가량을 차지하는 건설 자재비가 급등했고 주 52시간 근로제, 안전 기준 강화 등에 따른 간접비도 늘어난 여파다.
공사비 급등에 따라 재건축 추진을 결정한 서울 강남권 아파트들도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7차아파트가 대표적이다. 해당 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 조합은 최근 시공자 선정을 위한 재입찰 공고를 냈다. 3.3㎡당 공사비를 907만원으로 낸 1차 공고에는 아무도 입찰하지 않았고, 957만5,000원을 제시한 2차 공고엔 SK에코플랜트 단 한 곳만 참여하자 세 번째 공고까지 내건 것이다.
이전부터 부담으로 작용하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나 공공기여 등 규제 대못도 여전한 압박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으로 오른 집값에서 개발비용과 평균 집값 상승분을 뺀 금액을 초과 이익으로 보고 조합원에게서 환수하는 제도다. 그나마 오는 27일부터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부담금이 면제되는 초과 이익 기준은 기존 3,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높아지고 부과 구간도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조정되는 등 부담이 적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이 크지는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러잖아도 조합원마다 수억원의 분담금을 내는 상황인데, 여기서 초과 이익을 조금 덜 걷는 정도는 티도 안 난다는 것이다. 공공기여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서는 1기 신도시별로 기본계획을 세우며 기준용적률을 정하도록 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공공기여 비율을 1구간(10~40%)과 2구간(40~70%)으로 차등화한다. 현재 용적률 200%인 아파트가 특별법을 적용받아 용적률 300%가 되면 10~40%를 공공기여로 내놔야 하는 셈이다.
리모델링-재건축 ‘갈팡질팡’, “정책 이슈 민감도 높아”
문제는 리모델링이냐 재건축이냐의 선로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양상이 거듭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오히려 평촌 신도시는 재건축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까지는 지금처럼 리모델링이 한창 인기였다. 평균 용적률이 높아 기존 용도구역의 용적률 제한으로는 재건축 사업성 확보가 어렵고 안전진단 통과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평촌 신도시 54개 단지 가운데 27개 단지에서 리모델링이 추진됐고, 지난해 주택산업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도 1기 신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리모델링 지지(32.4%)가 재건축(31.8%)보다 높게 나온 게 바로 평촌이었다.
그런데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단 소식이 들려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서 특별정비구역에 주는 혜택에 구미가 당겼던 것이다. 가령 3종 일반주거구역이라면 기존에는 용적률이 최대 300%로 제한돼 있지만,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450%까지 늘릴 수 있다. 기존 용도지역 용적률로는 부족했던 재건축 사업성이 확보되는 셈이다. 더불어 일정 수준의 공공기여를 약속하는 등 정부가 제시하는 조건을 충족하면 그간 재건축 사업의 발목을 잡던 안전진단도 면제받을 수 있다. 당시 평촌신도시재건축연합회 관계자는 “아파트 노후화로 생활이 불편한 가운데 안전진단 등의 문제로 재건축이 어려우니 대안으로 리모델링이 인기를 얻었던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재건축 빗장을 허물고 있는 데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여러 단지가 재건축으로 선회해 추진준비위원회를 꾸렸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앞서 상술했듯 다시금 리모델링 기조로 서서히 돌아서기 시작했다. 막상 펼쳐본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의 혜택이란 게 크게 와닿지 않은 탓이다.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를 결정하는 데 적잖은 피로가 발생하면서 혼란이 가중된 셈이다. 이는 평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1기 신도시에 위치한 353개 아파트 단지 중 29개 단지에서 리모델링이 추진됐는데, 이중 상당수가 재건축 선회를 원하는 소유주와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정부의 거듭된 규제 완화책에 마음이 흔들린 이들이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이리저리 부딪힌 영향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는 결국 재건축, 리모델링 등 사안이 정책 이슈에 얼마나 민감한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소 약한 정책에 시장선 리모델링 강세 분위기
다만 시장 분위기를 보면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도 재건축보단 리모델링이 더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1기 신도시들도 리모델링을 결정한 이들이 적지 않다. 경기도 용인시에선 이미 수지구 풍천덕동을 중심으로 상현동·죽전동까지 리모델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 아파트가 용적률이 200%를 넘어 재건축은 사업성이 떨어진다 판단한 영향이다. 통상 아파트의 용적률은 180%를 넘으면 재건축 사업성이 없다고 본다. 이에 대해 용인시 리모델링 단지의 한 조합 관계자는 “정부가 노후도시특별법을 통해 용적률 500% 등의 혜택을 준다고 발표했는데 대상지가 20년 경과한 100만 ㎡ 이상의 공공택지”라며 “용인시 수지구는 1지구가 94만 ㎡, 2지구가 96만 ㎡로 통합 개발이 확정돼야 규모를 충족하게 돼 현재로서는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경기 영향도 크다. 최근 부동산이 불황을 면치 못하면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치가 풀썩 주저앉았다. 구태여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할 필요 없이 현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게 차라리 더 이익일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반의 의견이다. 이에 재건축으로 눈을 돌리던 이들도 다시금 리모델링에 관심을 갖는 모양새다. 평촌 일부 단지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내건 재건축 정책에 효용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 거듭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5대 광역시를 포함한 전국 130여 개 단지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올해 발주 기준 19조원가량인 리모델링 시장 규모는 오는 2025년 37조원, 2030년에는 44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차원의 추가적인 인센티브가 나오지 않는 한 리모델링의 강세는 이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