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 3.1%, 먹거리에 이어 유가·환율도 상승세
사과·배 등 농산물 가격 연일 고공행진하며 물가상승 상방요인 작용 국제유가 상승세에 석유류 가격 상승률도 14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 원·달러 환율 1,350원 넘어서며 상승 흐름, 인플레이션 전반에 영향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개월 연속 3%대 를 기록했다. 정부가 긴급 물가안정 자금으로 1,500억원을 투입했지만 사과와 배는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여기에 국제유가와 환율까지 오르면서 서민들의 부담이 심화되고 있다.
‘사과·배 역대 최대 상승률’ 농산물 가격 20.5%↑, 석유류도 1.2%↑
2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지난해 8월 이후 12월까지 물가상승률은 줄곧 3%대를 유지했다. 올해 1월 물가상승률이 2.8%를 기록하며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지난 2월부터 다시 3%대로 복귀하면서 2개월 연속 3%대를 기록했다. 지난달에 이어 과일과 채소가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을 유지하는 가운데 석유류 가격이 오르면서 전체적인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3월 농산물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0.5% 올랐다. 사과, 배 등 주요 과일의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전체 물가를 0.79%p 끌어올렸다. 사과와 배의 가격 상승률은 각각 88.2%, 87.8%로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직 정부의 긴급자본 투입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농축수산물은 열흘에 한번씩, 총 3순기에 걸쳐 조사하기 때문에 이번 조사에는 정부의 긴급자금 투입 이후 물가 상승분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석유류도 전년 동월 대비 1.2% 올랐다. 석유류 물가가 상승세로 전환한 것은 지난 1월 이후 14개월 만이다. 석유류의 소비자물가 기여도를 보면 지난 2월 -0.06%p로 하방요인으로 작용했지만 3월에는 0.05%p로 플러스 전환하면서 상방요인이 됐다. 통상 국제유가 상승분은 시차를 두고 반영되기 때문에 2월 국제유가 변동분이 3월 석유류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3월 국제유가는 2월보다 오른 상태로 해당 인상분은 4월 물가조사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체감물가를 확인할 수 있는 물가지수 보조지표들을 살펴보면 먼저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5% 상승했다. 채소와 과실 등 가격 변동이 큰 55개 품목으로 구성되는 신선식품지수는 신선과실이 40.9%, 신선채소가 11% 오르면서 6개월째 두 자릿수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 자주 구매하는 140여 개 생필품 위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3.8% 올랐고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2.4% 상승했다.
중동지역 위기, 중국 경기 회복·수요 증가로 인해 국제유가도 상승세
주목할 만한 점은 석유류 물가가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석유류의 물가상승률 자체만 놓고 보면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먹거리 가격에 대한 불안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상승세가 전체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각) 기준으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 당 83.71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0.54달러 오른 가격에 거래됐다.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해 10월 27일 기록한 85.54달러 이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올해 1월 초 70.38달러와 비교하면 3개월 새 15% 넘게 오른 것이다. 이날 브렌트유 6월물도 전 거래일 대비 0.42달러 오른 배럴 당 87.42달러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최근 국제유가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 중국 등 주요국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면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한 지 반년이 지난 가운데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의 정유시설을 공격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좀처럼 수요를 회복하지 못했던 중국이 올해 들어 서서히 반등의 기미를 보이면서 국제유가 상승을 이끌었다. 실제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3월 제조업의 구매관리자지수(PMI)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50을 넘어서는 등 중국 경기가 확장 국면에 들어섰다.
이런 가운데 산유국 모임인 OPEC+가 올해 2분기까지는 감산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원유 공급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도 2분기에는 원유 수출보다는 감산에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JP모건은 “러시아와 OPEC+가 감산 조치를 6월에서 연말까지 연장할 경우 유가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이러한 기조가 이어진다면 이번 달 배럴 당 90달러를 돌파한 브렌트유가 9월에는 100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도 2일 열린 ‘물가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해 “향후 물가 상승세가 둔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당분간 매끄럽지 않은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미국 금리 인하 가능성 낮아, 고유가·고환율 상황 이어질 듯
환율 상승도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353원까지 오르면서 지난해 11월 1일 이후 4개월 만에 1,350원 선을 돌파했다. 이날 종가는 1,346원으로 지난 1월 2일 첫 개장일 종가 1,300원과 비교하면 3개월 만에 환율이 50원 가량 올랐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달러 강세가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견조한 가운데 각국 정부가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한때 고금리 기조를 고수했던 미국이 현재는 비교적 중림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데 반해 스위스, 영국 등 주요국 대부분이 완화 기조로 돌아서면서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해당 통화와 동조화 흐름을 보이는 원화를 끌어내리는 효과도 있었다. 위안화는 지난해 말부터 이미 달러 당 7위안을 넘어섰다. ‘달러당 7위안’, 이른바 ‘포치(破七)’는 위안화 환율에 대한 중국 정부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의미한다. 엔화의 경우에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끝내면서 강세를 전환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엔·달러 환율이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역대급’ 엔저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먹거리 가격에 국제 유가와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서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의 ‘3고(苦)’에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 내수 부진까지 더해지면서 서민 경제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당분간 미국은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서 고유가·고환율·고물가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달 29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려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향해 점차 낮아질 것이란 확신이 필요하다”며 “물가가 안정되면서 금융당국의 기대치에 근접해가고 있지만 물가 안정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난해 물가지표와 유사한 수준의 시그널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