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명’에 본격 시동 거는 日 소프트뱅크, 반도체 등에 최대 10조 엔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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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그룹, AI 개발에 88조원 규모 투자
日 정부도 소프트뱅크 AI 사업에 3,709억원 지원
라인야후 네이버 지분 노린 것도 AI 국가주의 일환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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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사진=소프트뱅크그룹

일본 소프트뱅크그룹(SBG)이 인공지능(AI) 분야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최대 10조 엔(약 88조원)을 투자한다. 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과 소프트뱅크의 추가 지분 확보를 압박하며 국가적인 AI 산업 패권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 가운데 SBG의 대규모 투자와 이 과정에서의 일본 정부의 실탄 지원은 더욱 눈길을 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AI 분야에 10조 엔 쏟아붓는다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손정의 SBG 회장 주도의 AI 혁명 사업이 AI용 반도체 개발·제조, 데이터센터 건설, 로봇 사업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이 프로젝트에 최대 10조 엔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 몇 년간 투자 사업 부진으로 ‘수비 중심’의 회사 운영에 주력했던 손 회장은 기술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아 투자 사업 손익 개선과 맞물려 ‘공격적인 비즈니스 모델 전환’에 나서는 분위기다. 2022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에 1조 엔 가까운 영업적자를 낸 SBG의 실적은 2023 회계연도에서는 큰 폭으로 개선돼 수중 유동성이 충분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더에 SBG의 스타트업 펀드인 비전 펀드도 최근 자산을 상당 부분 매각하고 AI와 반도체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손 회장이 한때 집착한 벤처캐피털 투자에서 벗어나 반도체와 AI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전환하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은 AI 반도체다. SBG는 AI 전용 반도체의 개발·제조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 엔비디아처럼 자사 공장을 가지지 않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형태로 시작해 내년 봄 시제품을 완성하고 가을에 양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I 칩 개발은 SBG가 약 90%의 지분을 쥔 영국 반도체 설계 대기업 암(ARM)에 관련 부문을 신설해 사업을 전개하는 안을 논의 중이다. 닛케이는 “수천억 엔 규모가 예상되는 개발 자금은 ARM의 자기 자금과 SBG의 지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이에 대량생산 체제가 확립되면 개발 부문을 ARM에서 분리해 SBG 산하에 두는 것도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는 대만 TSMC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에 맡긴다. 이미 TSMC를 비롯한 주요 기업과 논의해 생산 범위 목표를 잡았다.

일본 정부도 AI 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0일 소프트뱅크의 AI 개발을 위한 슈퍼컴퓨터 정비에 최대 421억 엔(3,709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자국 통신기업 KDDI 등 5개 회사의 슈퍼컴퓨터 개발에 모두 725억 엔(6,387억원)을 보조한 데 이어 소프트뱅크 지원도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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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텔, 日 기업들과 반도체 후공정 기술 개발

여기에 미중 무역 갈등의 반사이익도 일본 AI 산업 확대에 힘을 싣을 전망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 일본 14개 기업과 반도체를 최종 제품으로 조립하는 후공정을 자동화하는 제조 기술을 일본에서 공동 개발하기로 확정하면서다.

인텔은 오므론을 비롯해 야마하발동기, 레조낙홀딩스, 신에쓰폴리머 등 14개사와 함께 후공정 자동화 기술 및 장치를 개발해 2028년까지 실용화할 계획이다. 후공정 관련 기술 표준화를 진행해 복수의 제조 장치와 검사 장치, 반송 장치를 시스템에서 일괄 관리하거나 제어하도록 할 방침이다. 개발비 등 투자액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 경제산업성도 지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공정은 크게 웨이퍼 공정인 전공정과 패키징·테스트 작업을 하는 후공정으로 나뉘는테, 10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부터는 미세화를 통한 성능 향상에 한계가 있어 반도체 업체들은 여러 칩을 한데 모아 원활히 구동하도록 연결하는 패키징 기술을 통해 성능을 끌어올리려고 하고 있다. 다만 후공정은 다양한 부품과 제품을 수작업으로 조립하는 경우가 많아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과 일본에 후공정 거점을 마련하려면 생산 라인을 무인화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닛케이는 미일 기업 협력과 관련, 양국이 반도체를 일괄 생산할 수 있게 해 반도체 공급망 단절에 대비함으로써 중국에 의존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낮출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라인야후 사태도 AI 주도권 확보 위함이었나

한편 업계에서는 이번 라인야후의 ‘네이버 지우기’ 사태도 일본 ‘AI 국가주의’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22년 말 오픈AI의 챗GPT 등장 이후 손 회장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2021년 네이버의 AI팀(클로바 CIC)을 분사해, 라인야후처럼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조율하기까지했지만 해당 안건은 없던 일이 된다.

AI 기술 역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손 회장은 작년 10월 열린 소프트뱅크 컨퍼런스에서 “인터넷의 초기 성장기를 크게 놓친 일본은 앞으로 30년을 더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항 속 금붕어 그림을 띄워놓고, AI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어항 속 금붕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AI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발표했다. 미야카와 준이치 소프트뱅크 사장은 “수요가 정말 많아 이미 400개 이상의 기업으로부터 수주를 받았다”면서 “현재 구글이나 오픈AI를 쓰지만, 자체 개발한 생성 AI가 완성되는 대로 제안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생성 AI 관련해 대대적인 추가 투자를 하고, 엔비디아가 올해 3월 발표한 ‘엔비디아 최신 칩인 DGX B200을 사들여 1조 파라미터의 생성 AI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파라미터란 인간 두뇌의 시냅스에 해당하는데, 크면 클수록 연산 능력이 높다. 오픈AI GPT-4가 1조 개를 넘는 만큼 이에 버금가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