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한국전력 사장 “더 이상은 한계, 전기요금 인상 필요”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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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사장 "최후수단으로 최소한의 전기료 정상화 필요"
요금 정상화 안 이뤄지면 전력산업 생태계 동반부실 우려도
자회사 중간배당, 희망퇴직 단행 등 자구책만으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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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16일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한국전력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최후의 수단으로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을 언급했다. 한전의 자구책 이행만으로는 대규모 누적 적자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전 누적 적자 해소 위해 연간 10조원 필요

16일 김 사장은 세종의 한 식당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2027년까지 누적적자 해소돼야 하는데, 남은 3년 6개월 동안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연간 10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인상폭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10월 가진 간담회에서도 김 사장은 전력 생태계 붕괴 가능성을 언급하며 kWh당 25원의 전기요금 추가인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 사장이 2027년까지 누적 적자를 해소해야 한다고 밝힌 건 지난해 말 한전법 개정으로 한전의 사채발행한도가 기존 ‘자본금+적립금’의 2배에서 2027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5배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숨통을 좀 트이게 됐지만 2027년 이후에는 사채발행 배수가 5배에서 다시 2배로 축소되는 만큼 적자폭을 줄여나가야 한다.

김 사장은 “한전은 구입 전력비 절감을 비롯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자구책을 강구하겠지만 한전의 노력만으로는 대규모 적자를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며 “자회사 중간 배당이라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특단의 대책도 시행했지만 더 이상 대책이 남아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후 수단으로 최소한의 전기 요금 정상화가 필요함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요금 정상화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력망 투자나 정전 예방 소요 재원 조달은 더욱 막막해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한전과 전력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기업들의 동반 부실이 우려되며 이는 결국 국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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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전력

150명 규모 희망퇴직 및 자회사 중간배당 요구 등 자구안도 한계

한전은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요금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이른바 ‘역마진’ 탓에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 규모는 202조4,000억원, 누적 적자는 43조원에 이른다. 앞서 한전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12월 6개 발전 자회사에 총 3조2,000억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요구하는 등 자구책을 시행한 바 있다.

한전은 또 최근 150명 규모의 희망퇴직도 단행했다.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8일까지 입사 4년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신청접수 결과 150명의 희망퇴직자를 선정하는데, 총 369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신청자 중 ‘입사 20년 이상인 직원(명예퇴직)’이 304명으로 약 82%를 차지했다. 입사 4~19년인 직원들의 수도 65명이나 됐다. 한전의 희망퇴직은 2009년 MB 정부 시절 이후 두 번째다. 당시 420명이 회사를 떠났지만 이 같은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내부인사의 전언이다.

한전은 희망퇴직뿐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실례로 올해부터 명절이나 기념일에 직원들에게 지급해 온 지원비를 모두 없앴다. 올 초 ‘연봉 및 복리후생관리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하면서 설과 추석 명절에 각각 40만원을, 근로자의날과 사창립기념일·노조창립기념일에 각각 10만원의 지원비를 지급한다는 55조의 근거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취업규칙과 상임임원복무규정도 개정해 회사창립기념일과 노조창립기념일 유급휴무 조항도 없앴다. 한전은 창립기념일인 1월 26일이 속한 주의 금요일과 노조창립기념일인 11월 24일이 속한 주의 금요일을 그동안 유급휴일로 규정·운영해 왔다.

대만전력공사도 요금 인상, 정부 재정 투입도

문제는 한전의 이같은 희생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동 사태까지 확전되고 있어 에너지 리스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담을 떠안은 한전의 누적 적자로 인해 한 해 이자로만 4조원 넘게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한전채 발행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다 보니 존속마저 위협 받고 있는 상태다.

이에 연료비 급등 시기에 전기요금을 적기에 충분히 인상하지 못한 해외 국가들은 올해 요금인상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지난 5월 재생에너지 촉진부과금을 1.40엔에서 3.49엔 인상했다. 대만전력공사(TPC)도 지난 2018년 4월부터 4년간 동결했던 전기요금을 2022년~2023년 총 18조2,000억원 영업적자를 겪은 뒤 2022년 7월 이후 요금을 지속 인상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전기요금을 평균 11% 인상했다. 가계는 전기요금을 3~10%, 일반 기업은 최근 2년간 전기 소비량 증감에 따라 7~14% 더 내야 한다.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제조업체 등 전력 다소비 기업의 전기요금은 15~25% 올렸다. 이에 더해 지난달에는 대만 정부가 1,000억 대만달러(약 4조2,000억원)의 정부 재정을 투입하기도 했다.

TPC는 2016년 시작된 대만의 탈(脫)원전 정책과 정치권의 전기요금 인상 억제 등의 영향으로 적자가 누적돼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전력과 닮은 꼴로 거론되는 이유다. TPC의 누적 적자는 지난해 말 3,826억 대만달러, 자본총액은 4,800억 대만달러(약 20조원)로 적자가 더 쌓이면 자본금이 전액 잠식될 수 있는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