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베끼기 관행 만연한데 방지책은 ‘실효성 제로’, 삼성-미래에셋 경쟁 과열 이대로 괜찮나
ETF 베끼기 관행 여전, 지난해 이차전지 이어 올해는 비만치료제
ETP 신상품 보호제도 개선 등 방지책 마련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
시장 점유율 경쟁 과열 양상, 중소형 자산운용사만 여전히 '눈치 보기'
금융권 내 상장지수펀드(ETF) 베끼기 관행에 대해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상품 베끼기가 반복되면서 무익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이에 거래소는 베끼기 관행을 막겠단 취지의 제도를 내놨으나, 업계에선 이마저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상화된 ETF 베끼기, 한국 금융권의 현실은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비만치료제 등을 중심으로 유사한 ETF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 출시된 비만치료제 ETF는 총 3개다. 먼저 삼성자산운용이 2월 14일 ‘KODEX 글로벌비만치료제TOP2 Plus’를 선보였고, 약 2주 뒤 KB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각각 ‘글로벌비만산업Top2+’, ‘TIGER 글로벌비만치료제TOP2Plus’를 잇따라 내놨다. 세 상품 모두 글로벌 비만치료제기업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를 50%가량 편입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단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유사 상품이 잇따라 등장하는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붐을 일으킨 2차전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ETF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신한자산운용이 상장한 ‘SOL 2차전지소부장Fn’ ETF가 인기를 끌자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은 잇따라 2차전지 관련 소부장 ETF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경쟁을 이어갔다. 금융권 내 ETF 상품 베끼기가 일상화했단 방증이다.
운용사들이 타 운용사의 상품과 유사한 구조의 상품을 곧바로 출시하는 이유는 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베끼기를 시행하면 상품 개발하는 노력 크게 들이지 않는 데다 해당 상품을 먼저 내놓은 운용사들이 상품을 소개하면서 넓혀 놓은 시장에 빠르게 들어와 파이를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게 업계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ETP 보호제도 등 방안 마련 나섰지만, “실제 효용성 없어”
문제는 베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품 독창성은 저해되고 수수료나 이벤트 등 부수적인 지점에서만 경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에 최근 한국거래소는 독창적 ETF를 개발하면 6개월 배타적 사용권을 주는 ‘상장지수상품(ETP) 신상품 보호제도’의 심사 기준을 변경하는 등 베끼기 관행을 막을 방안을 고안해 냈다.
ETP 신상품 보호제도 개선안의 골자는 그동안 상품별 기초지수와 구성 종목, 중복 비율 등을 정량적으로 평가했던 기존의 제도를 정성 평가로 전환하는 것이다. 거래소는 내부 관계자로 구성된 ETP 신상품 심의위원협의회에서 독창성, 창의성, 기여도 등을 항목별로 나눠 상품을 평가해 보호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협의회를 통과한 상품은 신상품으로서 6개월간 보호받게 되며, 다른 운용사들은 해당 상품과 유사한 ETP 상품을 상장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6개월 독점권 제도인 셈이다.
금융투자협회(금투협)에도 베끼기를 막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금투협은 ‘신상품 보호’ 방안을 규정하고 있다. 신상품을 개발한 업체가 금투협에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해 달라고 신청하면 신상품심의위원회가 소집되는 방식이다. 이후 심의위원회는 해당 상품의 독창성, 투자자의 편익 제고 정도 등을 심사해 배타적 사용권 부여 여부와 기간을 정하게 되며, 해당 기간 동안 업체는 신상품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다만 업계에선 해당 제도들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지수를 추종하는 ETF 특성상 독창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독창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상품 구조는 비슷한데 마케팅이 차별화된 상품도 독창적 상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제도상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또 거래소와 금투협은 정성평가로 독창성을 심의하는데, 이 과정에 심의위원의 주관적 판단이 가미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 제도 개선·도입 이후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과점 업체 경쟁 과열, “중소형 업체 무너질 수도”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제도가 지지부진한 사이 국내 ETF 업계가 아래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최근 들어 ETF의 양강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수수료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탓이다. 앞서 삼성자산운용은 미국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ETF 4종의 총보수를 일제히 연 0.05%에서 0.0099%로 내렸다. 이에 미래에셋은 지난 10일부터 ‘TIGER 1년 은행양도성예금증서 액티브(합성) ETF’ 상품의 총보수를 기존 연 0.05%에서 0.0098%로 끌어 내리면서 맞불을 놨다. 이는 국내 상장된 모든 ETF를 통틀어 가장 낮은 보수율이다.
이들이 수익과 직결되는 총보수를 깎아가며 자산 확대 경쟁에 나선 건 매년 20%씩 성장하는 140조원 규모의 국내 ETF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뺏기지 않기 위함이다. 시장을 과점하는 두 업체 사이 점유율이 사실상 반비례적 관계에 놓이면서 경쟁에 더욱 열이 오른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경쟁이 점차 테마형 ETF 등 더 광범위한 상품으로 가격 경쟁이 옮겨갈 수 있다는 점이다. 보수율 경쟁이 확산하면 양사 외 중소형 업체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선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모두 보수 인하 대상을 여타 상품으로까지 넓힐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