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두 달 연속 ‘2%대’, 물가 안정에 금리 인하 기대감↑
근원물가지수 2.2%, 생활물가지수 3.1% 상승
신선과실, 신선채소는 각각 39.5%, 7.5% 올라
한은 금리 인하 신중론 "물가 변동 불확실성 커"
5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7% 오르며 지난달에 이어 2%대를 유지했다. 근원물가지수와 생활물가지수는 각각 2.2%, 3.1% 상승했다. 5월에도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는 하반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한국은행은 농축수산물과 에너지 가격 등 물가 변동의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이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2.7%, 근원물가지수는 2.2%↑
4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09(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 전월과 비교하면 상승 폭은 0.2%p 낮아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3.8%로 정점에 도달한 후 11월 3.3%, 12월 3.2%를 기록하다 올해 1월 2.8%로 둔화했다. 이후 재반등해 2월과 3월 연속 3.1%를 기록했지만, 4월 2.9%로 2%대에 재진입했다.
품목별로 보면 농축수산물이 8.7% 상승했다. 특히 배는 126.3%로 통계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사과도 80.4%로 높은 오름세를 나타냈다. 다만 돼지고기과 국산쇠고기는 각각 -5.2%, -2.3%로 전년 동월 대비 하락했다.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2.3% 상승했다. 항목별로는 보험서비스료 15.1%, 공동주택관리비 4.4%, 전기·가스·수도는 2.7% 올랐으며 승용차임차료와 유치원납입금은 각각 -8.4%, -6.7%를 기록하며 하락했다.
공업제품은 전년 동월 대비 2.1% 올랐다. 휘발유와 수입승용차는 각각 3.8%, 7.5% 상승한 반면, 기초화장품과 라면은 각각 -3.3%, -5.2%로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석유류 항목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월 기록한 4.1%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식료품과 에너지 등 가격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근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한 110.91을 기록했고, 전월 대비로는 0.1%p 떨어졌다. 농산물·석유류 제외지수는 112.40으로 2.0% 올랐다. 전월과 비교하면 0.2%p 하락한 수치다.
자주 구매하는 144개 품목의 물가로 구성돼 체감물가를 가늠할 수 있는 ‘생활물가지수’는 116.50으로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이는 전월 대비 0.4%p 낮은 상승률이다. ‘신선식품지수’는 131.08(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17.3% 상승했고 전월보다는 1.8%p 줄었다. 신선식품지수는 신선어개(생선·해산물), 신선채소, 신선과실 등 계절이나 기상 조건에 따라 가격변동이 큰 55개 품목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신선과실과 신선채소는 각각 전년 동월 대비 39.5%, 7.5% 각각 상승했고 신선어개는 1.3% 하락했다.
소비자물가 안정세에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커져
5월 물가 안정세가 확인되자 시장에서는 올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5월 소비자물가 동향’ 발표에 앞서 4월에 이어 5월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더디지만,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당시 한은은 물가 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아 인하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면서도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전망치인 2.4%대로 흘러간다면 4분기 경에는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금융 환경이 이미 완화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도 금리 인하 기대에 무게를 싣는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3월 M2 통화량이 64조2,000억원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도 2022년 12월 이후 최고치인 4.9%를 나타냈다. M2 통화량은 현금, 예금, 적금, 주식, 채권 등의 형태로 표현되는 통화량의 총합으로 시중 유동성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다. 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3.94%로 기준금리가 1% 시대였던 2년 전과 같은 수준까지 내려왔다. 기업 대출 금리 역시 낮은 수준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달 한은은 올해 상반기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이는 11번째 동결이다. 주목할 점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 2.1%에서 2.5%로 대폭 상향했지만, 물가 전망은 2.6%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장률이 오르는 것은 수요가 좋다는 의미기 때문에 물가 전망도 상향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은은 이와는 다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국제유가, 환율 등 공급 측 물가 압력이 여전하고 채소나 신선식품의 가격 변동성도 큰 상황”이라며 “수출이 증가하고 있지만 내수로 이어지는 데는 시차가 있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美 통화긴축 기조 유지, EU는 금리 인하 가능성 시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의 행보도 금리 인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금리를 미국보다 먼저 내렸다가 환율이 급등하거나 자본이 대규모로 빠져나가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연준의 행보가 환율 변동성이나 자본 유출입 등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연준은 기존의 매파적 기조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지난 5월 29일 연준은 ‘5월 경기 동향 보고서’를 통해 미국 경제 전반이 여전히 확장 국면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당초 시장이 기대했던 9월 금리 인하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4%로 연준의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과 경기가 여전히 견고한 모습을 보여 무리해서 금리를 내릴 이유가 없다는 평가다. 같은 달 28일에는 연준 내 매파 인사인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물가 상승세가 더 둔화하지 않는다면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미국보다 한발 앞서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미국과 디커플링(탈동조화)이 가속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유럽중앙은행(ECB)도 이달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ECB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회의까지 5년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해 연 4.5%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각)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아일랜드 공영방송 RTE와 인터뷰에서 “현재 인플레이션이 적절히 통제되고 있다”며 “데이터가 이런 확신을 뒷받침해 준다면, 6월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