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 “中, 달러 매도해 환율 방어”, 위안화 평가절하 논의도 이어져
상반기에도 달러 독주, 아시아 통화가치 하락
한국·말레이시아 등도 환율 약세에 달러 매도
위안화 평가절하 시엔 주변국 환율 동반 하락
지난해 중국이 강달러로 인한 위안화 약세를 방어하기 위해 3년 만에 달러를 순매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미국 정부의 예측이 나왔다. 중국 인민은행(PBOC)이 외환보유고를 헐어 위안화 방어에 나섰다는 것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뿐 아니라 한국, 스위스, 호주, 말레이시아 등 주요국도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美 재무부 “中 정부, 270억 달러 순매도 추정”
지난달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2024년 상반기 환율 보고서’에서 지난해 중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0.1% 규모의 달러 순매도를 단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금액 기준으로는 약 270억 달러(약 37조원)를 순매도한 것으로 추산된다. 고정환율제를 운용하는 중국은 외환 개입에 대해 명확한 데이터를 발표하지 않는다. 이에 미 재무부는 중국 인민은행의 외화 자산 데이터와 순 외환 결제액 데이터를 토대로 달러 순매수·매도 추이를 추정했다.
국가별로는 중국 외에도 한국, 스위스, 호주 등이 외화 자산을 순매도했다. GDP 대비 비중은 스위스가 16.7%로 가장 높았고 이어 말레이시아 2.3%, 한국과 태국이 각각 0.6%의 순으로 나타났다. 스위스 등을 제외하면 순매도 규모가 GDP 대비 0%대로 크지 않아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강달러 기조 속에서 자국의 통화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면 위로 떠오른 中 ‘위안화 평가절하’ 논쟁
올해 상반기에도 ‘달러 독주’가 지속되면서 아시아 국가의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엔·달러 환율은 161엔을 돌파해 1986년 이후 3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원·달러 환율은 최근 1,380원대에서 움직이면서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 돌파가 우려되고 있다. 달러당 위안화 환율도 7.3위안을 넘어서서 약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은 대미 무역흑자가 크고 외환 정책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 재무부의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됐다.
강달러 기조가 지속되자 중국 내부에서는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가 위안화 평가절하라는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달 26일 발표한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 가능성 점검 보고서’에서 “최근 시장에서 중국 정부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관한 논의가 점증되고 있다”고 전했다.
위안화 평가절하를 주장하는 측은 급격한 통화 가치 하락을 통해 중국의 수출 증대를 꾀할 수 있고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금리 인하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위안화 평가절하가 자본 유출을 촉진하고 위안화 추가 하락에 대한 전망을 강화해 글로벌 외환시장의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내적으로 위안화의 가치 하락은 투자자의 신뢰에 타격을 줘 주식 매도세를 악화시키고 자금 유출을 가속함으로써 중국 기업의 외화 부채 조달 비용을 증가시킨다. 반면 인민은행이 통화 가치 하락을 둔화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입해 자본을 통제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도 인위적인 통제인 만큼 위안화 평가절하 조치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5년 위안화 평가절하, 환율전쟁으로 비화
더욱이 위안화의 평가절하 조치는 통화시장의 불안정을 심화해 자칫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위안화가 하락하면 한국 등 역내 주요 수출국 통화가 동반 하락하는데, 결국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해 단기금융시장의 유동성을 긴축할 수밖에 없고, 이는 해당 지역의 무역 전반에 성장과 안정성을 해치는 요인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직후 위안화 가치가 대폭 평가절하되면서 위안화 표시 자산이 큰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당시 인민은행은 3일 연속 위안화 가치를 4.6% 절하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가 위안화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인민은행이 선제 대응 차원에서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조치는 환율전쟁의 단초로 작용하며 신흥국에 부작용만 초래했다. 당시 신흥국의 주식·통화·채권 등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이탈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튀르키예 리라, 멕시코 페소,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의 가치는 연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고, 말레이시아 링깃, 인도네시아 루피아도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상황은 주식과 채권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신흥시장과 글로벌 주식시장의 주가수익비율(PER) 차이는 금융위기 이래 최대 폭으로 벌어졌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급락을 저지하면서 위안화 가치가 안정을 되찾은 이후에도 통화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자들의 신흥시장 이탈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