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진 경쟁’에 건전성 악화한 금융권, 결국 기업대출 축소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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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금융 경쟁 심화, 중소기업 신용대출금리 일제히 하락하기도
출혈 경쟁에 건전성 악화, 기업대출 평균 연체율 0.19%→0.32%
대기업 대출 잔액 증가율 32%·중소기업 7%, 대기업 편중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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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금융 경쟁이 심화하면서 건전성 우려가 제기되자 금융권이 대출 줄이기에 나섰다. 기업금융의 무게 중심을 성장에서 수익성 관리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대출 격차가 커질 수 있단 점이다. 이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은행 차원에서 기업 평가 방안을 다각화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자금 물꼬를 터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기업대출 확대하던 은행들, 돌연 기업대출 축소 나섰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날부터 수익성이 낮은 기업대출 자산을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영업점과 기업금융전담역(RM) 등에게도 “일정 금리 수준을 밑도는 기업대출을 내주지 말라”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전달했다.

그간 시중은행들은 공격적인 기업대출 영업을 통해 성장을 거듭해 왔다. 금융권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하나·신한·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802조1,847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676조3,139억원) 대비 무려 42조3,225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특히 성장이 두드러진 건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었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부터 지난 5월까지 기간 동안 대출 규모가 12조3,000억원 늘며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냈고, 하나은행 역시 같은 기간 11조원 이상 규모가 확대되며 신한은행의 뒤를 이었다. 국민은행도 175조2,000억원에서 177조7,000억원으로 8조8,000억원가량 규모가 늘며 성장을 이었다.

이처럼 은행들이 기업대출에 집중한 건 가계대출이 그만큼 어려워진 탓이다. 정부가 시장 안정을 이유로 가계부채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데다 올해 초 도입한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갈아타기’ 서비스로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경쟁에서 시중은행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금융권 전반이 어려워졌다.

금리 상황도 기업대출에 더 유리하다. 통상 금리 인상기엔 경기요인 등으로 기업자금 수요가 늘어난다. 금리로 채권시장이 위축되면서 은행대출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업대출은 부수 효과가 크다. 새로운 기업 고객을 유치할 경우 임직원 급여 통장 개설, 신규 대출 모집, 카드 발급 등의 영업이 가능한 데다 퇴직연금까지 연계할 경우 비이자수익까지 거둘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선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게 수익 성장을 위한 가장 적절한 방도였던 셈이다.

출혈 경쟁에 ‘노마진’까지 불사, 금융권 건전성 우려 확산

다만 기업대출 경쟁이 심화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시중은행들이 ‘노마진’, ‘역마진’까지 불사한 것이다. 실제 중소기업 신용대출 금리는 농협은행을 제외하고 일제히 하락했다. 지난해 2~4월 국민은행의 대출금리는 6.18%에서 올해 2~4월 5.69%로 줄었고, 신한은행도 5.68%에서 5.17%로, 하나은행은 5.39%에서 5.29%로, 우리은행은 5.92%에서 5.77%로 내려갔다. 은행 본점·영업점장의 전결 조정금리를 뜻하는 가감조정금리, 즉 우대금리도 확대됐다. 국민은행의 가감조정금리는 올해 2~4월 기준 1.93%로 전년 동기(1.7%) 대비 0.23%p 올랐고, 같은 기간 신한은행 3.11→3.28%, 하나은행 1.96→2.23%, 우리은행 2.43→2.61%, 농협은행 1.12→1.49%로 상승했다.

이렇다 보니 금융권 내 건전성 우려가 커졌다. 출혈 경쟁에 따른 부실 대출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1분기 0.19%였던 4대 은행의 기업대출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올 1분기 0.32%로 뛰었다. 부실 리스크가 커졌단 의미다. 부실채권비율 역시 상승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올 3월 기준 국내은행 부실채권 비율은 0.50%였다. 전 분기 말(0.47%)보다 0.03%p, 전년 동기(0.41%) 대비 0.09%p 상승한 수치다. 고정이하여신을 뜻하는 부실채권은 통상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 채권으로, 은행이 별도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만약 회수 가능성이 계속 낮다고 판단되면 은행은 이 채권을 상각하게 된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은 올 1분기 중에만 1조6,079억원 상당의 부실채권을 상·매각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8,536억원)보다 무려 88.4% 늘어난 규모다. 2022년 1분기(4,180억원)와 비교하면 2년 새 4배 가까이 증가했다. 부실 리스크가 심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하고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부실률도 일정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금리가 계속되면 자연스레 신규 대출은 줄고 총여신 중 부실대출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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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대출 증가율↓, 대기업에 대출 편중되나

더 큰 문제는 시중은행이 대출을 줄일수록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중소기업과 다소 안정적인 대기업 간 대출 격차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중소기업과 중소법인 여신의 연체는 대기업 여신 대비 높은 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기업 여신의 부실채권비율은 0.48%에 그친 반면 중소기업 여신은 0.69%, 중소법인은 0.89%에 달했다. 대기업 여신의 부실채권 비중은 전 분기 말 대비 0.02%p 떨어졌지만, 중소기업과 중소법인은 각각 0.05%p, 0.04%p 올랐다. 은행 입장에선 건전성 우려가 큰 중소기업 대출을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금융권 내 대기업 대출 편중 현상은 이미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5월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132조 9,534억원으로 전년 동기(100조4,311억원) 대비 약 32%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사업자 대출을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31조2,686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494조6,378억 원)보다 7%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은행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평가 방안을 개발해 금융시장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일각에선 “건전성 유지를 위해 은행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를 위한 ‘옥석 가리기’를 진행 중인 만큼 불안정성이 높은 중소기업에 선뜻 대출을 내주기 어렵단 것이다. PF 정상화 차원에서 은행과 보험사의 신규 자금 투입을 유도하는 정부 정책이 이어지면서 신디케이트론이 금융권 건전성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고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와중 PF 구조조정의 책임을 금융권에 떠넘기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건전성 지표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높단 점을 고려해 건전성 관리를 강화해 나갈 필요성이 있단 목소리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