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 풀더니 뒤늦게 고삐” 금감원, 가계대출 ‘폭증’에 다시 은행권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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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관리 비상, 다시 은행권 조이기 나선 금감원
DSR 예외 대출도 비율 산정 요청, 현장 점검 예고도
금감원 압박에 시중은행들 주담대 금리 줄줄이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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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은행을 압박하고 나섰다. 심상찮은 가계대출 증가세로 총량 관리에 비상등이 켜지자 현장점검을 내세워 은행권 스스로 가계대출 수요를 조절하도록 고삐를 조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잇달아 대출금리를 올리며 당국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가계부채 관리와 부동산 경기 활성화 사이에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금융당국이 은행권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금융당국 “대출목표 관리 및 차주 상환능력 심사” 강조

3일 금융감독원은 이준수 은행·중소서민금융 부원장 주재로 17개 국내은행 부행장과 함께 은행권 가계부채 간담회를 개최하고 최근 가계대출 증가원인를 비롯해 하반기 관리방향 등을 논의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6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08조5,700억원으로 집계됐다. 5월 703조2,300억원과 비교해 5조3,400억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이는 2021년 7월에 기록한 6조2,000억원 이후 가장 큰 증가폭으로, 주담대가 5조8,400억원가량 늘면서 가계대출 증가를 주도했다.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올해만 22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금감원은 최근 성급한 금리 하락 기대와 주택가격 상승 예상 등으로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세가 더욱 빨라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금융권이 선제적으로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원장은 “최근 개인사업자 및 가계대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의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자산건전성 관리 강화가 절실한 시점에서 주담대 등 가계대출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가계대출이 거시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연말까지 가계대출 증가율을 명목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요 은행들이 연초에 연간 2~3% 이내로 가계대출 목표 증가율을 설정한 만큼, 각 은행이 이 같은 범위 내에서 가계대출을 취급하고 있는지를 집중 점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행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내실화와 확대 노력을 확고하게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의 건전성 관리를 위해 담보가치에 의존하기보다는 차주 상환능력에 기반한 대출심사 관행이 안착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부원장은 “각 은행은 현행 DSR 규제가 실제 영업점 창구에서 잘못 적용되는 사례가 없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앞으로는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모든 가계대출에 대해 차주의 소득 등 상환능력을 파악해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달 15일부터 다음달까지 은행권 가계대출 관리 실태를 살펴보는 현장 점검에도 나설 예정이다. 각 은행의 자체 가계대출 목표 및 관리 실태, 대출 규제 준수 여부 등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해에도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은행권 가계대출 취급 실태를 살피기 위한 종합 점검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DSR 규제의 준수 여부와 담보·소득 등 여신 심사의 적정성 등을 살펴본 결과 다수 은행들이 50년 만기 주담대 등으로 DSR 규제를 피해 대출을 적극 늘려온 행태를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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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KB국민 등 시중은행, 당국 압박에 주담대 금리 인상

이번 조처는 가계대출이 최근 두 달 새 10조원 이상 증가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인 데 따른 것이다. 이에 감독 당국이 은행권의 대출 증가세를 억누르기 위해 사실상 압박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금리 인하를 주범으로 보고 있다. 4월 이후 은행권 대출금리 하락과 일부 국지적인 주택 거래량 증가가 맞물리면서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은행권 주담대 금리는 지난 1월 3.99%였으나, 지난 5월 2.89%까지 내려갔고,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은 1만2,100호에서 1만9,800호로 급증했다.

금융당국의 경고에 은행권은 즉각 반응했다. KB국민은행은 3일부터 주담대 고정형 금리를 3.00∼4.40%에서 3.13∼4.53%로, 변동형 금리를 3.65∼5.05%에서 3.78∼5.18%로 0.13%포인트씩 올렸다. 하나은행은 지난 1일부터 일정 기간 고정금리를 적용하는 혼합형 및 주기형 주담대 신규 상품의 감면 금리(우대금리) 폭을 최대 0.20%포인트 축소해 적용하고 있다. 대출 금리는 은행의 조달 비용을 반영한 기준금리에 대출자별 가산금리를 더한 뒤 거래 실적 등에 따른 우대금리를 빼서 산정하는데, 소비자의 금리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렸다는 얘기다. 최근 가계대출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선제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조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주담대 금리를 연 2%대까지 낮추면서 은행권 금리 경쟁의 선봉에 섰던 신한은행도 조만간 금리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농협은행 역시 주담대 금리 인상 검토에 착수한 상황이다. 우리은행은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채권시장에서 고정금리 주담대 금리와 연동된 은행채(5년물) 금리가 내리막을 타고 있음에도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금리를 반대로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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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금융이 주담대 주도, 정책 엇박자 혼란 가중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은행권의 책임으로만 떠넘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초 가계부채 폭증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당국의 정책 기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 시행 연기가 대표적인 예다.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적용해 대출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 1단계는 지난 2월 적용했고, 이달부터 2단계를 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25일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 시행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돌연 9월로 2개월 연기했다. 스트레스 DSR을 100% 적용하는 3단계는 내년 7월로 7개월 늦췄다. 정부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취약차주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 해명했지만, 결국 이는 더 많은 대출을 내주고 시장을 살리겠다는 뜻으로 읽히면서 ‘막차 수요’만 자극하는 꼴이 됐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앞서 최저 1.6% 금리로 최대 5억원을 받을 수 있는 신생아 특례대출의 소득 요건을 한시적으로 최대 2억5,000만원까지 풀어주기도 했다. 특히 전세자금대출과 중도금대출, 신생아 특례대출 등은 DSR 산정 과정에서 제외돼 최근 주담대 확대의 주범으로 꼽힌다. 전체 가계대출의 66.7%에 해당하는 정책 대출상품을 마구잡이로 늘린 정부도 가계부채 증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올해 1월에서 5월까지 풀린 디딤돌·버팀목 대출 잔액만 14조원에 달한다. 이는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분의 80%를 넘어서는 규모로, 당국이 디딤돌·버팀목 대출의 부부합산 한도를 상향하면서 대출 수요가 급격히 쏠린 영향이 크다. 올해 들어 신설된 신생아 특례대출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당정은 정책 대출을 조이기는커녕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기준 추가완화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애초 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가계부채 안정화를 천명해 온 건 한때 GDP의 100%가 넘은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이미 관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은행권 가계대출 규모는 한국 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꼽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불과 반년 사이에 당국의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한쪽 손에는 가계부채 안정화 카드를 들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손에는 주택 매매 수요를 자극하는 카드를 내미는 엇박자 정책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