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SK온에 알짜 자회사 SK엔텀·트레이딩 합병 추진
SK이노·E&S 합병 안건과 함께 17일 이사회 논의 예정
탱크터미널 기업 SK엔텀, 시황 영향 없이 안정적 수익
미래 먹거리 SK온, 배터리 보릿고개에 자금 확보 총력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 자회사 SK온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이종 자회사 간 합병을 추진한다.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과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난 SK E&S 간 합병과 함께 석유 사업 부문 알짜 계열사를 SK온과 통합해 배터리 사업 설비투자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SK온, SK엔텀 등 에너지 관계사 통합해 캐시카우 확보
16일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오는 17일 이사회를 열고 SK온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의 합병을 논의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해당 기업을 포함해 총 9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 중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원유·석유제품 트레이딩 사업을, SK엔텀은 SK에너지의 탱크터미널 사업을 영위한다. 이사회에서는 SK그룹의 핵심 에너지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합병하는 안건도 함께 심사할 예정이다.
SK온은 2021년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물적 분할한 이후 2년 6개월간 영업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1조6,836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38.2% 급감했고 영업손실은 3,315억원으로 한 분기 만에 18배나 확대됐다. 1분기 부채는 23조4,907억원으로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부채 중 절반을 차지한다. 흑자 전환이 늦어지며 재무 부담도 커지고 있다. 매년 5~7조원가량을 설비 투자에 쏟아온 SK온은 올해도 7조5,000억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다.
세 자회사 간의 합병은 수천억원의 적자가 누적된 SK온을 흑자 전환해 자금난에 숨통을 틔우고, 향후 기업공개까지 노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SK에너지·인천석유화학 등의 원유 수입과 제품 수출을 담당하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매출 48조9,630억원, 영업이익 5,746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초 SK에너지 탱크터미널사업부가 인적 분할해 출범한 SK엔텀도 지난해 매출 2,576억원을 기록했다. 내부 거래 물량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확보된 데다 지속가능항공유(SAF) 등 친환경 에너지 부문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
SK이노, 유동성 풍부한 SK E&S 합병해 ‘SK온 구하기’
최근 자금난을 겪고 있는 SK그룹은 미래 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대대적인 리밸런싱에 돌입했다. SK그룹의 리밸런싱 작업의 중심축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이다. SK그룹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부진에 빠진 SK온과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난 SK E&S와의 합병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 기반 에너지 사업을 전개하는 에너지 분야 중간 지주회사로 그동안 SK온의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 개발을 지원하는데 많은 자금을 투입해 왔다. 하지만 SK온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고 급기야 올해 3월에는 국제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이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부정적)에서 투기 등급으로 분류되는 BB+(안정적)까지 하향했다.
반면 SK E&S는 수소, 재생에너지, 천연가스(LNG)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는 비상장사로 지주사인 SK㈜의 캐시카우로 꼽힌다. 지난해 기준 매출 규모는 SK이노베이션의 7분의 1 수준이지만 영업이익은 거의 차이가 없다. 배당금도 2019년 7,300억원, 2020년 6,548억원, 2021년 3,858억원 등으로 지난 3년간 배당금이 총 1조7,700억원에 이른다. 배당성향 역시 118.8%, 85.1%, 112.1%로 높은 수준이다. SK그룹은 SK㈜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최대주주인 만큼 17일 이사회에서 양사 합병안이 무난히 의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합병이 성사되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합병 비율 산정 방식이다.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달리 SK E&S는 비상장사여서 기업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해 합병비율 산정 방식에 따라 손해를 보는 주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이 1대 2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3조1,350억원 규모의 SK E&S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보유한 사모펀드 운용사 KKR을 설득하는 일도 남아 있다. 만약 합병 문제로 KKR이 투자금 중도 상환을 요구하면, 상환 자산으로 도시가스 자회사를 넘겨줘야 할 수도 있어서다. KKR을 설득하려면 SK E&S의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하지만 이는 또 SK이노베이션 주주의 반발을 살 수 있어 합병 비율을 적절히 조율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주가가 저평가된 데다 합병 과정에서 주식 가치의 희석이 불가피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SK온, 美 배터리 보조금 추가 확보 위해 생산 물량 확대
한편 계열사 구조조정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SK온도 직접 수술대에 오르며 고강도 쇄신에 돌입했다. SK온은 최근 비상 경영을 선언한 데 이어 경영진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하고 흑자전환 때까지 모든 임원의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SK그룹이 향후 성장 전략의 방향을 인공지능(AI)과 반도체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SK온의 배터리 사업도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보조금을 확대하기 위해 배터리 소재 공급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IRA 요건을 충족하는 국산 소재로 배터리 셀을 생산하기 위해 유미코아와 에코앤드림에 각각 양극재와 전구체 주문을 서두르고 있다. 유미코아 천안 사업장의 지난 5월 양극재 수출액은 6,900만 달러(약 958억원)로 전월 대비 187% 증가했다. 수출 중량도 전월 대비 2배인 약 2,000톤 규모다.
에코앤드림은 13개의 자체 특허와 전구체 합성 핵심기술을 기반으로 미국 IRA에 대응 가능한 국산 전구체를 생산한다. SK온은 올해 4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에코앤드림에 하이니켈 NCM 전구체를 주문했다. 주문 금액은 총 266억원이다. 이와 함께 늘어나는 공급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연간 생산능력 3만 톤 규모의 새만금 공장 준공을 2025년 1분기 말에서 연내로 단축시키는 등 생산라인 증설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합작 공장으로 포드와는 켄터키와 테네시에, 현대자동차와는 조지아에 각각 127GWh, 35GWh 규모의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현재 SK온은 미국 조지아주에 단독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합산 연간 배터리 생산능력이 21.5기가와트시(GWh)다. 이런 가운데 2026년 북미에 위치한 모든 공장이 가동할 시 연간 생산능력은 최대 184GWh에 달하며 이로 인한 AMPC 보조금은 6조8,000억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