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 부동산 PF 손실 처리된 줄 알았더니, 금감원 실태조사에 추가 부실 속속 드러나는 중
금융당국, 부동산 PF 추가 부실 우려에 주요 증권사들 현장 조사 진행
1분기에 쌓은 충당금으로 모자라 2분기에도 추가 충당금 쌓아야 할 것 전망
손실 예상 규모도 지난해 대비 증가, 한신평은 기본 시나리오에서도 4조8천억 전망
부동산 경기 악화 및 관련 정책 실패 시 손실분 최대 7조원 넘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발 증권사들 손실 규모가 1분기 충당금을 통해 대부분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금감원이 실태조사에 나서면서 추가 부실이 드러날 상황에 직면했다. 일부 대형 증권사들 중에는 2분기 실적에서 ‘어닝 쇼크’가 예상된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번 금감원의 현장 조사가 부동산 PF에 대한 추가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안정적인 충당금 확보로 시장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증권사들, 금감원이 통과 기준 높게 산정한 탓에 충당금 추가 산정 필요해졌다
2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금융감독원은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부동산 PF를 집중적으로 해온 국내 증권사를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PF 리스크 관리 모범규준’에 따라 증권사가 사업장 옥석 가리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에 나선 것이다. 그간 주요 증권사들은 지난 1분기에 부동산 PF 관련 자산을 대규모 상각 처리한 데다, 금감원의 사업성 평가 기준에 맞게 충당금을 배정했다고 강조해 왔으나, 금감원의 이번 현장조사에서 추가 부실이 다수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금융사들은 PF 사업장의 사업성을 3단계(양호-보통-악화 우려)로 구분해 평가했지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모범규준을 대폭 수정한 뒤로는 사업성 평가도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 우려)로 강화됐다. 과거에는 ‘악화 우려’ 사업장만 부실로 분류됐는데, 이제는 ‘부실 우려’와 ‘유의’가 부실에 속한다. 이같이 통과 기준이 세분화 되면서 회수 가능성이 낮은 채권에 대해 지정한 대손충당금의 규모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부동산 PF에 집중했던 중소형 증권사들은 앞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충당금으로 인한 실적 악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에서는 SK증권, 하이투자증권 등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대주주가 매각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진 다올투자증권도 2분기 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반면 대형 증권사들은 작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한 덕분에 2분기부터는 부동산 PF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우세했다. NH투자증권의 경우 PF 손실이 제한된 가운데 기업금융(IB) 실적이 개선되면서 2분기 지배순이익이 1,835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한국신용평가는 NH투자증권의 브릿지론 비중이 전체 부동산금융 중 9.4%에 불과해 PF 관련 위험이 낮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증권도 부동산 PF 신용공여를 올 초 대비 절반으로 줄이면서 PF 자산 정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달 초 미래에셋증권이 밝힌 바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의 부동산 PF 신용공여(매입보장, 매입확약) 규모는 4,575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9,639억원에 비해 52.5% 축소된 것이다. 이에 KB증권은 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한국금융지주·삼성증권·키움증권 등 5개 증권사의 2분기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2분기 대비 24.1% 증가한 1조180억원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충당금 적립 이슈 부상, 2분기 실적 추정치 크게 하회할 가능성 높아져
그러나 충당금 적립 이슈가 급부상하면서 2분기 실적이 추정치를 크게 하회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1분기 대손충당금이 1조380억원으로 집계돼 있다. 지난해 6월 4,000억원의 유상증자까지 진행하며 자기자본 8조원 시대를 열었으나, 지난 분기 대손충당금으로 자기자본의 13%를 손실 처리했던 것이다. 업계에서는 한국금융지주의 1분기 사업보고서가 발표됐을 당시 한국투자증권이 공격적으로 대손충당금을 책정해 향후 부동산 PF로 인한 우려에 선을 그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금감원의 강화된 규정 탓에 2분기에도 충당금을 책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실 규모에 대한 우려마저 커진 상태다.
일부 증권사들은 금리가 떨어질 경우 일부 부동산 PF가 살아날 것을 기대하고 ‘보통’ 단계에 배정했던 사업장을 금감원의 지적을 받고 4단계 중 ‘유의’ 단계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유의’ 단계도 부실에 속하는 만큼, 충당금 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지난 6월 한국은행이 부동산 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관련 리스크를 점검했던 것도 깐깐한 평가를 강조하는 현장조사가 진행된 이유 중 하나다. 한은은 브릿지론과 본PF 대출 모두 질적으로 다소 저하됐다고 보고 사업성 평가에 유의할 것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브릿지론에 대해선 부동산 PF 관련 신용경계감이 확산하면서 본PF 대출로 전환되지 못하고 만기 연장이 늘어나며 대출기간이 장기화되고 대출금리도 높아지고 있어 ‘유의’ 혹은 ‘부실 우려’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본PF 대출의 경우에도 시공사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상존하고 미분양 리스크도 있어 입지 여건 등이 불리한 사업장의 미분양 리스크가 증대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은, 증권사에 유동성 리스크 확대될 가능성 높다 지적
한은은 6월 보고서에서 “예상치 못한 외부 충격으로 단기금융시장 전반에 유동성 경색이 나타날 경우 증권사의 유동성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상황을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최근 들어 해외 자산 투자 손실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일부 금융기관의 유동성 우려가 시장 전체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 사건이 나타날 경우 증권사들의 연쇄 유동성 리스크로 확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PF 채무보증을 보유한 증권사들이 대체로 현금 등 유동성 자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 증권사의 PF 채무보증 현실화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부동산시장의 부진이 지속되고 건설원가 상승 등으로 PF사업성이 저하되면서 부실 위험이 다소 증대된 상황지만 그동안 충당금 적립 확대, 자본확충 등으로 금융기관의 손실 흡수력이 제고된 점을 고려할 때 PF사업장의 잠재리스크가 현실화돼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즉 충당금을 많이 쌓아놓도록 감독 절차를 통해 시스템 리스크 우려를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앞서 한국신용평가는 국내 부동산 PF 사업장 중 부실 위험이 높은 사업장에 물린 금액을 전체 브릿지론의 46%인 4조8,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사업성이 좋지 않은 브릿지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중후순위 대출일 경우 손실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지난 15일 발표된 ‘금융업권 부동산 PF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캐피탈, 저축은행 대비 양적 부담은 낮은 편이나, 질적 구성은 열위하다”며 “특히 중소형사의 경우 서울‧수도권 선순위 익스포저 비중이 13%로 낮은 반면, 지방‧중후순위 비중은 33%로 높아 위험도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심화되고 정부의 부동산 구제 정책 성과가 미진할 경우 브릿지론 부도율이 예상치보다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브릿지론 부도율이 최대 80%에 이른다고 가정할 경우 대형증권사는 4조2,000억원, 중소형사는 3조3,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해 시장 전체가 감당해야 하는 손실은 7조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