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포인트 공포 되풀이한 티메프 사태, ‘주먹구구식’ 플랫폼 규제 허점 메꿔야
티메프 미정산 사태 장기화, 정부 "5,600억원 유동성 공급하겠다"
PG업계 수난사 반복, 선환불 조치로 피해 뒤집어썼다
티메프-머지포인트 '데칼코마니', 플랫폼 규제 재정립해야 한단 목소리 ↑
티몬·위메프의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정부가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여기에 모기업인 큐텐 측도 피해 구제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소비자 불편은 다소 해결될 여지가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시장에선 여전히 불안의 목소리가 나온다.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와 비슷한 사건이 또다시 벌어진 셈인 만큼, 당장의 피해 구제를 넘어선 규제 강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티메프 사태에 유동성 공급 나선 정부
29일 정부가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범석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티몬·위메프의 판매대금 미정산 문제 관련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정부는 우선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판매대금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을 통한 긴급경영안정자금 최대 2,000억원 및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협약프로그램 3,000억원을 각각 지원하기로 했다. 여행사 이차보전(이자차액 보상)에도 600억원을 지원한다. 총 5,600억원가량의 유동성을 투입하는 셈이다.
이와 함께 피해기업의 대출·보증 만기를 최대 1년 연장하고 종합소득세·부가가치세 납부 기한을 최대 9개월 연장하는 등 세정 지원도 병행한다. 경영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제반을 마련해 주겠단 취지다. 항공사·여행사 협의를 바탕으로 항공권 취소 수수료 면제도 지원할 계획이며, 이외 ▲카드 결제 취소 등 방식을 통한 소비자 환불 지원 ▲민원 접수 전담 창구 운영 ▲집단분쟁조정 신청 접수 등 소비자 지원 방침도 세웠다.
구영배 큐텐 대표도 티몬·위메프 정산·환불 지연 사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겠다고 밝혔다. 구 대표는 “금번 사태에 대한 경영상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제 개인 재산도 활용해서 티몬·위메프 양사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히 대처하겠다”며 “현장 피해 접수와 환불은 계속해서 실시할 예정이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큐텐 보유 해외 자금의 유입과 큐텐 자산·지분 처분 및 담보를 통한 신규 자금 유입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PG사 환불·셀러 미정산 등 ‘불씨’ 여전
다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이미 대금을 지급받은 티몬·위메프가 지급결제대행(PG)사를 대상으로 환불 절차를 해주지 않고 있어서다. 금융 당국의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선환불 조치를 취해야 하는 PG사 입장에선 자신들이 피해를 뒤집어쓴 셈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PG업계 전반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불안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 PG사들은 자금력이 있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영세 업체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단 것이다.
티몬·위메프로부터 정산금을 받지 못한 판매자(셀러) 피해가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란 점도 문제다. 당국이 파악한 미정산 금액은 지난 22일 기준 위메프 195개사 565억원, 티몬 750개사 1,097억원 수준이다. 이는 지난 5월치 판매대금 미정산금만 산정한 것으로, 향후 6~7월 미정산분이 추가되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환불 지연 피해 소비자들의 고소·고발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소비자들은 이날 경찰에 모회사인 큐텐을 고소함과 동시에 환불대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민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심준섭 법무법인 심의 변호사는 “큐텐 사태와 관련해 서울강남경찰서에 소비자들의 고소·고발장을 접수한 뒤 기자회견을 진행할 것”이라며 “입점 업체들의 고소·고발장은 다음 달 2일 접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정산 사태의 파급이 연쇄적으로 확산하고 있단 의미다.
전문가들은 당초 티몬·위메프가 매상을 인식한 후 결제 플랫폼들로부터 대금을 전달받는 매출채권과 항공·여행사, 셀러 등에게 지급해야 하는 매입채무 간의 대금 지급일 차이에서 발생하는 운전 자본(Working capital) 관리 실패가 이번 사태의 주원인이라 봤다. 때문에 결제 플랫폼들과 셀러들은 시간이 지나면 미정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사태가 확대되면서 큐텐 그룹 전체가 장기간 자금 압박을 받아왔던 사실이 알려지자 운전 자본 관리 실패를 넘어선 기업 유동성의 문제로 인식이 바뀌었다. 소비자들의 법적 대응도 사실상 머지포인트 사태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돌려막기’가 자행됐다는 사실이 가시화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머지포인트와 ‘닮은꼴’인 티메프, 발생 원인은 허술한 플랫폼 관련 법?
이처럼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시장에선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체 현금 없이 고객의 선결제 대금으로 서비스를 유치하다 자금 경색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에 공통 분모가 존재한단 것이다.
머지플러스는 2020년부터 금융위원회에 등록하지 않고 음식점·편의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자화폐의 일종인 머지포인트를 20% 할인된 가격에 판매했다. 사용처도 공격적으로 늘리며 100만 명의 사용자를 모았으나, 2021년 8월 법률상 문제를 이유로 사용처를 축소해 환불이 쇄도했다. 이후 머지플러스는 설립 초기부터 자본잠식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티몬·위메프 역시 높은 상품권 할인, 선불충전금(티몬캐시), 선결제 후 상품권을 발송하는 선주문 형태의 판매 방식 등으로 현금을 확보했다. 공격적인 행보에 지난해 티몬 거래액은 전년 대비 66%, 위메프는 50% 상승했으나 자본잠식이 심화되며 판매자는 물론 소비자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3년 만에 닮은꼴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플랫폼 관련 법 규정이 지나치게 허술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주먹구구식 규제가 이커머스 플랫폼의 비정상적 관행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단 시선에서다. 실제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자상거래법상 온라인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소비자가 환불 또는 청약 철회를 요구하면 판매자는 이를 3영업일 내에 돌려줘야 하지만, 플랫폼 거래 구조상 일차적인 환불 책임은 플랫폼 입점 업체들에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은 합법적으로 책임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커머스 플랫폼의 판매자 정산 주기와 판매 대금 보관 방식 역시 허점이 있다. 통상 대기업 유통사는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라 상품이 판매된 달의 말일을 기준으로 40~60일 이내에 판매 대금을 정산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엔 관련 규정이 없는 탓에, 티몬·위메프는 물건 판매 후 판매사에 정산하기까지 70여 일을 소요했다. 심지어 이 기간 이커머스 플랫폼 측이 카드사 등으로부터 받은 결제 대금을 입점 업체에 주지 않고 운영자금 등으로 활용해도 규제를 받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의 관리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티몬·위메프는 이커머스 플랫폼임과 동시에 결제를 대행하는 2차 PG기도 하다. 현행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따르면 금융위로부터 허가받은 업체는 경영상 취약점이 드러나면 경영 개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티몬·위메프 등 PG사는 ‘허가 업체’가 아닌 ‘등록 업체’라 관리 대상이 아니다. 정산 지연 사태를 두고 업계에서 “터질 게 터졌다”는 언급이 거듭 나오는 이유다. 결국 관리·감독 부실로 사건이 촉발된 만큼, 향후 업계 전반이 당국의 감시하에 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졌다는 평가가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