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엔 동결, 9월엔 인하? 美 연준, 기준금리 조정 가능성 시사
제롬 파월 연준 의장 "9월에 정책 금리 인하 논의될 수 있을 것"
9월 금리 인하 기정사실화한 시장, 11월·12월에도 인하 기대 실려
美 국채금리 하락세, '기준금리 인상' 일본에서 투자자 이동 가능성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고용 시장 경직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경계하며 피벗(Pivot, 통화 정책 전환)에 대한 입장을 전환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9월을 넘어 11월, 12월 등에도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9월 인하론’ 불붙인 연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5.25∼5.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는 한편, 피벗과 관련해 기존과는 다른 입장을 내비쳤다.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해 인플레이션과 고용 시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고용 시장이 경직되며 미국 경기가 침체 상태에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은 3개월 연속 상승하며 4.1%까지 치솟은 상태다.
연준은 “고용과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에 대한 리스크가 계속해서 더 나은 균형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서 “현재 이중 임무(dual mandate)의 양 측면에 대한 위험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은 지난 2년간 인플레이션 위험에 ‘매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묘사했지만, 이번엔 인플레이션과 고용 시장 모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며 “이런 변화는 노동 시장이 계속 냉각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더 이상 금리 인하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동결 소식 발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그동안 우리가 이룬 진전을 고려할 때 이제 인플레이션에 100% 집중할 필요는 없다”며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일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할 만한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물가 상황이 안정세에 접어든 가운데, 지난해 7월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일종의 ‘신호’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진정세가 확인되고 견고한 노동 시장을 유지하는 것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그런 조건들이 충족되면 이르면 9월에 정책 금리 인하가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규모 금리 인하 점치는 시장
이에 시장은 연준의 9월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는 한편, 미국의 경제 둔화 상황에 따라 11월과 12월 금리 인하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CME Fedwatch)에 따르면 연준이 9월에 이어 11월에도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은 70%에 육박했다. 9월과 11월, 12월까지 세 차례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할 확률은 약 65%로 집계됐다.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이미 100%까지 치솟은 상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얼라이언스번스틴(AB)자산운용은 연준이 2025년 말까지 기준금리를 전체 여섯 차례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유재흥 AB자산운용 채권부문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31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준이 9월 정도에 금리를 처음으로 인하할 수 있다”며 “그 뒤 분기당 한 차례씩 금리를 내려 2025년까지 여섯 차례 정도 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가에서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 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역시 이와 유사한 금리 인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건들락 CEO는 “개인적으로 파월 의장이 이번 FOMC 회의에서 금리를 내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9월 FOMC 회의까지 몇 주 안 남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며 “연준이 내년 연말까지 총 150bp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총 여섯 차례 금리 인하를 의미한다.
채권 시장의 변화
채권 시장은 금리 인하 가능성에 곧장 반응하고 있다. 31일(현지시간) 뉴욕 채권시장에서 글로벌 국채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물 국채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10.8bp나 떨어지며 4.032%에 마감했다. 연준의 통화 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도 9.9bp 빠진 4.257%로 거래를 마쳤다. 국채금리가 줄줄이 미끄러지며 채권 가격은 뚜렷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통상적으로 국채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 인하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국채 금리에 선반영됐다”며 “업계에서는 일본 시장에 머물던 투자자들이 미국 채권 시장으로 대거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사하고, 일본이 금리 인상을 발표하며 상황이 뒤집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31일 기준 금리를 현재 0~0.1%에서 0.25%로 인상했다.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한 이후 4개월 만의 금리 인상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물가 인상률이 2%대로 지속적·안정적이라고 판단해 금리를 0.25%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일본은행은 이번 달부터 국채 매입액을 매 분기 4,000억 엔(약 3조6,800억원)씩 줄이고, 2026년 3월에는 매입 규모를 현재의 절반 수준인 3조 엔(약 27조6,000억원)까지 축소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일본의 국채 보유액은 2026년 3월까지 현재(약 600조 엔·약 5,515조원) 대비 7~8%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우에다 총재는 “현재 금리는 극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물가 목표 2%가 안정·지속적으로 실현된다면 추가적인 금리 인상과 금융 완화의 강도 조절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특별히 0.5%를 금리 인상의 벽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며 “일본의 경제·물가가 일본은행의 전망대로 움직인다면 추가 인상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1999년 제로 금리를 도입한 뒤 일본의 기준금리는 미국발(發) 금융위기인 리먼 사태 직후(2008년 12월) 0.3% 전후로 정점을 찍고, 2010년대 들어서는 마이너스 수준에서 유지됐다. 중앙은행이 한 번도 넘어선 적 없던 금리 0.5%의 ‘벽’이 무너질 수 있다는 시각을 드러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