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 안중에 없는 ‘서울·수도권 맞춤 부동산 정책’, 빨라진 지방 소멸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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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공급대책, PF 대출 보증 확대하고 CR리츠 재도입
재탕 대책에 현실성 낮은 방안들, "실효성 없다" 비판
또 수도권 위주 부동산 공급 대책, 양극화 심화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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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거 안정화를 위해 내놓은 ‘8·8 부동산 대책’이 수도권 쏠림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치솟는 서울·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신규 주택 공급에 집중한 반면, 미분양 주택 물량이 대거 적체된 지방의 수요 촉진 방안은 사실상 외면함으로써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편중 대책, 지방 건설·부동산 실효성 의문

지난 8일 정부는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PF 대출 보증 공급 규모를 30조원에서 35조원으로 확대해 정상사업장의 자금조달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17조원, 주택금융공사가 13조원씩 공급하기로 했으나 이를 HUG 20조원, 주금공 15조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번 PF 대출 공급 규모 확대는 지방 등 정상 사업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원활하게 이뤄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부는 지방 준공 전 미분양 관련 건설사업자에게 HUG 미분양 PF 대출 보증한도도 전용면적에 관계 없이 분양가의 70%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2년 이상 활용하면 주택 건설사업자의 원시취득세를 50% 감면해 주고, 기존 1주택자가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최초로 구입하면 1세대 1주택 특례를 적용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지방 건설사들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지방 신규 PF 사업장의 위험성이 확대됨에 따라 신규 대출 실행 자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보증 한도 확대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상반기에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부동산 PF 관련 금융 익스포저 현황 및 리스크 점검)’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올 1분기 말 기준 134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000억원(1.0%) 줄었는데, 이는 금융사들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PF 대출의 신규 취급을 줄인 결과다. 업계에서는 ‘한 지방 은행에선 2년간 PF 대출의 신규 진입이 한 건도 없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하나의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지방 건설사일수록 PF 대출에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다.

준공 후 미분양 주택에 대한 세금 경감 대책에 대해서도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시취득세 감면을 위해 임대주택으로 2년간 활용할 경우 미분양 주택의 종부세 합산 배제 기간 5년 중 상당 기간이 지나게 되는데, 임대주택으로 활용한 이후에도 분양이 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1가구 1주택 특례를 준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인 혜택 없이 현상 유지만으로 미분양 주택을 구입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업계는 지방 주택에 대한 수요 진작책은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사업성이 없는 사업장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한 ‘수요’가 먼저 회복돼야 한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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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CR리츠’ 대책 재탕, 지방은 구색 맞추기용인가

정부의 기업구조조정(CR)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구색 맞추기 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CR리츠는 지난 2009년, 2014년에 이어 10년 만에 재등장한 제도로 재무적 투자자(FI), 시행·시공사 등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입대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CR리츠를 통해 지방 신규 주택 공급에 여력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정부는 내달 CR리츠를 출시하고 연내 미분양 주택 매입을 개시할 수 있도록 심사 소요기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미분양 아파트는 리츠 운용 기간 동안 임대로 운영되며, 투자금과 임대보증금으로 PF 대출을 상환, 부동산 경기가 회복된 시점에 자산을 매각해 리츠를 청산하고 수익을 배분한다. 여기에 정부는 CR리츠 수익성을 높이고자 지방 미분양 주택에도 HUG의 모기지 보증을 발급하기로 했다. 채무자(리츠)가 모기지 대출을 갚지 않으면 보증기관인 HUG가 자금을 대신 상환하는 구조다. 정부는 국토교통부가 CR리츠에 대한 업계 수요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약 5,000가구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CR리츠 방안은 정부가 지난 6월 경제장관회의 의결을 통해 내놓은 ‘국민소득 증진과 부동산 산업 선진화를 위한 리츠 활성화 방안’에 담긴 내용의 재탕이다. 업계에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모두 공급자 중심 일색으로 시장의 최종 종착지인 소비자가 지갑을 열도록 할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리츠는 미분양으로 도산 위기에 처한 시행사와 시공사에 인공호흡기만 달아줄 뿐, 정작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인책이 없는 셈이다.

CR리츠 규모가 미분양을 해소할 만큼 충분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과거 CR리츠를 도입해 건설사들의 손실을 줄인 사례가 있긴 하나, 그 규모가 전체에 비해 턱없이 적어 큰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구성된 CR리츠는 미분양 물량 2,200가구를 매입했고, 2014년에는 500가구를 사들였다. 그럼에도 CR리츠로 해소된 경우는 2009년 12월 기준 미분양 물량 총 12만3,297가구 가운데 1.8%에 불과했고, 2014년 4만379가구에 비하면 1.2% 수준이었다.

전문가들도 CR리츠 효과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리츠가 일부 사업성이 나오는 지역으로만 한정될 것이란 분석이다. 리츠 사업자는 미분양 아파트 매입해 수익률을 내면서 5년 안에 되팔아야 하는 만큼 우량 매물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어서다.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란 볼멘소리도 높다.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경기가 극단적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실정에서 지방 미분양 물량에 누가 투자하려 하겠냐는 것이다. 이처럼 지방을 배제한 서울·수도권의 무차별적인 주택 공급은 오히려 지역 부유층들의 투기 심리를 자극해 지역 자본 유출로 이어지고, 이는 지역 부동산 경기를 더 침체하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만 있고 지방은 없다, 지방 소멸 불꽃에 기름 붓는 정부

실제로 서울과 지방의 온도차는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다섯 째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28% 오르며 19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거래량도 꺾일 줄 모른다. 국토부에 따르면 6월 기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6,150건으로 전월보다 18.7%, 전년 동월보다는 48.7% 늘었다. 지난 2020년 12월(8,764건) 이후 3년 6개월 만에 최대치다. 반면 같은 기간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거래량은 전월보다 9.3% 줄어든 2만7,057건을 기록했다. 수년간 침체해 있던 부동산 시장이 반등하고 있으나 양극화가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책 방향을 수도권에 집중시키며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번 8·8 부동산 대책 내용만 봐도 정부는 지방균형 발전은 외면한 채 수도권 일극체제를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 모습이다. 일례로 정부는 수도권 집값 안정화를 위해 정비사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는데, 정비사업으로 신축이 서울 핵심지에 공급되면 주변 아파트값을 끌어올려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시장 상황이 다른 만큼, 각 시장에 맞는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양극화로 인해 빚어질 지방 소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저출생과 지방소멸의 원인이 수도권 집중화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초저출생의 원인을 청년들이 체감하는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불안을 꼽으면서 수도권 집중 완화가 이들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윤 대통령 역시 “수도권 집중과 과도한 경쟁이 저출생의 원인”이라며 국가균형발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되려 수도권의 비대화를 재촉하는 이번 대책은 정부가 지향하는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