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은행 기업대출 ‘100조원’ 증가, 부실채권도 함께 늘어 건전성 악화 우려
올해 상반기 4대 은행 기업대출 7.8% 증가
KB국민 ELS 이슈에 주춤한 사이 신한 약진
3개월 연체 '부실채권' 증가에 한은도 경고
올해 상반기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이 100조원가량 증가했다. 정부가 가계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은행권이 대체 수익원으로 부상한 기업대출을 확대하기 위해 영업 경쟁을 벌이면서다. 하지만 기업대출이 급증하면서 부실채권도 함께 늘어나 향후 건전성 악화의 트리거가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가계대출 2.4% 증가할 때 기업대출은 7.8% 늘어
21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경영공시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의 상반기 기업대출 잔액은 884조9,7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8%(100조9,574억원) 증가했다. 은행별로는 하나은행 222조1,415억원, KB국민은행 218조6,157억원, 신한은행 217조2,480억원, 우리은행 186조9,719억원의 순으로 집계됐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대출은 562조8,504억원에서 576조1,292억원으로 2.4%(13조2,788억원) 늘어났다. 기업대출의 증가 폭이 가계대출을 크게 웃돈 것이다.
7월 기준으로 은행별 기업대출의 증가 폭을 보면 신한은행이 15조9,45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하나은행 12조8,094억원, 우리은행 11조5,241억원을 기록했다. KB국민은행은 4대 시중은행 중 가장 낮은 7조2,552억원에 머물렀다. 특히 신한은행은 기업대출 잔액이 가장 많은 KB국민은행이 1분기 주가연계증권(ELS) 이슈로 주춤한 사이 틈새를 파고들어 기업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면서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우리은행도 중소기업 특화 채널 ‘비즈프라임센터’를 오픈하며 기업금융을 강화했다. 지난해 취임한 조병규 행장은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1차 목표로 내세웠고 비즈프라임센터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기업대출 1조6,400억원의 실적을 달성했다. 총 8개의 비즈프라임센터 중 국가산업단지인 반월·시화 지점에서는 1조원 이상의 중소기업 대출을 유치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나은행은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지난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가장 공격적인 영업을 했던 하나은행은 지난해 기업대출 잔액이 20조원 넘어섰지만 주 고객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연체율 문제가 부각되면서 올해 4월 이후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됐다. 이에 지난달 기업대출은 3,000억원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KB국민은행은 기업대출 절대 잔액을 기준으로는 부동의 1위지만, 1분기 ELS 사태로 인한 충당금 이슈 등으로 위험가중자산(RWA) 축소가 불가피해 기업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정이하여신 16.2% 증가, 기업 부채 비율도 높아
다만 은행권이 경쟁적으로 기업대출을 늘리면서 부실채권 비중이 확대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4대 은행의 기업대출 중 3개월 이상 연체 대출인 고정이하여신은 올해 상반기 2조8,075억원으로 지난해 말 과 비교해 16.2%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고정이하여신은 12% 증가한 1조859억원을 기록했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이 1조1,40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신한은행 5,964억원, 우리은행 5,697억원, 하나은행 5,005억원의 순으로 나타났다.
기업대출 중 고정이하여신의 비율도 2022년 말 0.26%, 지난해 말 0.31%, 올해 상반기 말 0.33%로 꾸준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중 고정이하여신의 비율은 각 0.15%, 0.17%, 0.19% 등으로 확대됐지만 증가 폭이 기업대출만큼 크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은 지난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수익성이 저하됐고, 이자 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도 1년 전보다 하락했다”며 “최근 기업 대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 상황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산업별 위험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부채에 대한 경고음도 커지는 상황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세계 34개국(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부채 비율은 한국이 126.1%로 세 번째로 높았고, 홍콩과 중국이 각각 267.9%와 166.9%를 기록하며 1위와 2위에 올랐다. 최근 1년간 기업 부채 비율의 증가 속도 역시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빨랐다. 이 기간 기업 부도 증가율은 약 40%로 60%를 기록한 네덜란드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수익성 관리 강화 기조로 전환, 소호 대출 감소 추세
이처럼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부실기업 증가와 연체율 상승, 은행 간의 과당 경쟁에 따른 수익성 하락 등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은행권은 하반기 기업대출의 무게 중심을 ‘외형 성장’에서 ‘수익성 관리’로 전환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자금을 구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한파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이나 부동산 경기 침체에 흔들리는 건설·건축자재 업종 등이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소기업, 소상공인, 개인사업자 등에 대한 소호 대출의 축소 기조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소호 대출 잔액은 52조4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6% 감소했는데 이는 직전 분기와 비교해도 0.3% 줄어든 수치다. 올해 1분기 소호 대출은 51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 줄어들며 감소세를 이어갔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이 지난해 말 기준 73조1,81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3%, 직전 분기 대비 2.6%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4대 시중은행과 NH농협은행의 소호 대출은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만 해도 증가세를 보였지면 지난해 말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실제로 올해 1월 말 기준 5개 주요은행의 소호 대출 잔액은 319조2,304억원으로 지난해 말 319조4,936억원에 비해 2,632억원 감소했다. 은행권의 소호 대출 공백은 인터넷전문은행이 빠른 속도로 이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를 버티지 못한 사업자들이 ‘포용 금융’의 일환으로 대출 문턱을 낮춘 인터넷은행으로 몰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