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연체율 비상’ 저축은행 현미경 점검, 고강도 개선 압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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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율·부실채권비율 두 자릿수 기록한 저축은행 대상 
당국 '자산처분·증자' 등 강제조치 예정, 업계 파장 불가피
'취약' 등급 확정 저축은행, 경영 정상화 계획 제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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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여파로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이 급증한 저축은행을 긴급 점검한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앞두고 연착륙 가능성을 높일 선제 조치에 나선 것으로, 평가 결과에 따라 고강도 경영 개선 압박을 강제할 수 있어 업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금감원, 대형 저축銀 등 4곳 ‘경영실태평가’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 저축은행 4곳에 대한 경영실태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경영실태평가는 ‘적기시정조치’의 사전 단계로 여겨진다. 적기시정조치는 부실 정도에 따라 경영개선권고·요구·명령 등 3단계로 진행되며, 저축은행의 자산건전성이 4등급(취약) 이하로 평가받으면 경영개선권고 대상이 된다. 금융당국은 해당 저축은행에 △인력 및 조직 운영 개선 △부실자산 처분 △자본금 증액 △배당 제한 등의 조치를 이행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 형식은 권고지만 사실상 ‘지시’에 가깝다.

경영개선권고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종합평가에서 취약 이하 등급을 받으면 ‘경영개선요구’로 이어지게 된다. 경영개선요구가 내려지면 △예금금리 수준 제한 △임원진 교체 요구 △영업 일부 정지 등이 이뤄진다. 최고 단계인 ‘경영개선명령’에선 영업이 정지되거나 합병 또는 매각될 수 있다.

이번 평가 대상은 올해 1·2분기 연속으로 연체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곳이다. 3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약 11% 수준을 기록했고 토지담보대출 연체율은 20%를 넘어섰다. 전체 연체율은 1분기 8.8%에서 2분기 8.3%로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건전성 우려는 꺼지지 않고 있다.

각 사별 통일경영공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연체율이 10%를 넘어선 곳은 37개사로 전체 79개사 중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연체율이 20% 넘는 곳도 에스앤티(28.73%), 안국(27.31%), MS(21.56%), 라온(21.31%), 동양(21.20%), 상상인플러스(20.96%) 등 6곳에 달했다. 또한 이번 긴급 점검에는 자산 규모가 수조원에 이르는 수도권 대형 저축은행 두 곳이 평가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부실 PF 파킹 거래’ 의혹에 당국 압박 강화

금감원이 저축은행 경영실태평가에 나서는 것은 올해 들어 두 번째다. 금감원은 지난 6월 저축은행 3곳을 대상으로 10여 년 만에 평가에 착수한 바 있으며, 내달 중 등급 평가를 확정할 계획이다. 취약 등급으로 평가되면 경영 정상화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금감원이 두 달 만에 경영실태평가에 돌입한 데는 저축은행의 건전성 관리가 미흡하다는 분석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올 2분기 저축은행의 연체율이 소폭 낮아진 것도 ‘PF 펀드 꼼수 매각’에 따른 착시효과라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최근 금감원이 저축은행업계의 3차 정상화 펀드 조성을 제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앞서 저축은행중앙회는 수천억원 규모의 1·2차 정상화 펀드를 조성하고 자금을 집행했는데, 구성을 뜯어보니 당시 출자한 저축은행과 채권을 매각한 저축은행이 80% 이상 겹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실한 PF 대출 채권을 일시적으로 펀드에 넘기고, 시간이 지나 다시 싼 값에 해당 채권을 재매입하는 자전거래 구조가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경·공매를 회피하기 위한 파킹 거래로, 금감원의 조사가 시작된 배경이기도 하다.

문제는 부실채권 매각에도 불구하고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오히려 상승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평가 대상이 된 저축은행들 역시 연체율보다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문제가 됐다. 금융당국이 지난 5월 발표한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기준 개선 방안’에 따라 ‘요주의’에서 ‘고정이하’로 분류된 대출 자산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자기자본 규정을 은행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저축은행은 자산 건전성 분류 결과 정상-요주의-고정 여신에 대해 적립한 대손충당금을 자기자본(보완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은행처럼 정상과 요주의 여신에 대한 충당금만 자기자본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상위 자산 규모 상위 10개 저축은행에서만 최대 수천억원의 자본 확충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추산된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SBI·OK저축은행 등 10대 저축은행의 고정으로 분류된 여신에 대한 충당금만 6,923억원으로, 이는 10대 저축은행 충당금의 18.4%에 달한다.

궁극적으로 금융당국의 자본 규제 강화는 자본 건전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아가 자본 건전성이 떨어지는 저축은행은 대주주의 증자를 권고하거나 M&A(인수합병) 매물로 전환하는 등 시장의 체력을 높이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경우 중소형 저축은행은 존폐 위기까지 내몰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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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적 부동산 PF, 공적 자금 수혈 전 ‘근본적 개선’ 필요

이처럼 부동산 PF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의 압박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근본적인 개선에 대한 정부의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동산 PF가 지난 십 수년간 우리 경제에 위기를 초래했음에도 당국은 사태가 터진 이후 수습에만 몰두하고 있단 지적이다.

실제로 부동산 PF 문제는 고질적으로 반복되며 한국 경제를 좀먹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0여 곳의 건설사 부도와 함께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들이 파산한 것도 부동산 PF가 원인이었고, 30여 개의 저축은행이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으로 무너지고 10만 명 이상의 고객이 손실을 입었던 2011년 저축은행 사태도 PF 부실에서 비롯됐다. 뿐만 아니라 2019년, 2022년 채무보증 등 대형 위기가 터져 나오면서 채권시장이 경색된 것도, 지난해 말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20여 곳의 종합건설사가 파산한 것도 모두 PF가 원인이었다.

이렇듯 과거 PF 위기를 여러 번 겪었음에도 여전히 똑같은 사태가 반복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저자본·고보증이란 구조적 문제를 지목한다. 낮은 자기자본과 높은 보증 의존도로 대표되는 낙후된 재무구조가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내 추진된 총액 100조원 규모의 PF사업장 300여 개의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시행사는 자기자본을 3.2%만 투입하고 96.8%는 대출을 일으켜 충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주요국들이 30~40%의 자기자본비율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즉 지금의 부동산 PF 부실은 자기 자본도 거의 없이 한탕을 노리는 시행사와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거금을 내준 제2금융권, 보증만 있으면 대출을 실행한 은행의 관행들이 공모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PF 위기에 따른 리스크를 애꿎은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데 있다. 부동산 업계와 금융권의 무분별한 사업으로 인한 부실을 국민 혈세를 투입해 안정화를 도모해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PF 사태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공적자금 94조원을 수혈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작 환수 여부는 불투명하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에도 예금보험공사는 특별계정을 만들어 27조2,000억원을 지원했다. 이후 저축은행 지분 매각 및 파산배당금 수령 등으로 지난해 말까지 14조원가량을 회수하고, 예금보험료 수입 등으로 6조원가량을 상환했으나 여전히 7조2,000억원의 부채가 남은 상태다. 사기업의 실패가 납세자 부담으로 이어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