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와의 전쟁’ 나선 금융당국, DSR 규제로 부동산 상승세 반전할 수 있나?
금융당국,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등 '가계부채와 전쟁'
은행권 주담대 금리 줄줄이 인상, 신한은행 전세대출 중단
월세화로 주거비 부담 가중 등 저소득층에 피해 전가 우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과 함께 DSR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하면서 전세대출에 대한 DSR 적용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다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정부의 조처를 두고 일부 갭투자 등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실수요자의 전세대출이 막히고 급격한 월세화로 인해 임차인의 주거비가 상승하는 등 결국 저소득층에 피해가 전가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이미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에서 부동산 상승세를 반전시키는 효과도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당국 “DSR 규제 효과 없으면 LVT 등 고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전세자금 대출 중단 등의 조처를 한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검토 중이다. 앞서 지난 21일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점검회의를 열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대출금리 인상을 제외한 전방위적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 등 은행권은 주택 관련 대출금리를 일제히 올리는 한편 갭투자에 활용되는 전세자금 대출을 잠정 중단했다.
내달 1일부터는 대출금리에 가산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줄이는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된다. 당국은 2단계 스트레스 DSR 금리 0.75%포인트를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1.2%포인트로 상향 적용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신규로 취급하는 모든 가계대출에 대해 내부 관리 목적으로 DSR을 산출할 것을 요구했다.
금융당국은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효과와 함께 은행권이 산출한 모든 가계대출에 대한 DSR 수준을 살펴본 후 이미 예고한 정책모기지 대출이나 전세 대출에 대한 DSR 적용 범위 확대 등 후속 조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DSR 적용 범위가 전세대출이나 정책모기지로 확대되면 직접적으로 대출한도가 축소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나아가 현재 40%를 넘지 못하도록 정한 DSR 한도 자체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35%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당국은 이번 조치에도 가계부채 급증세가 꺾이지 않을 때를 대비해 DSR 규제 외에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검토할 방침이다. 갭투자에 활용되는 전세대출을 줄이기 위해 현재 최대 100%에 달하는 전세자금 대출의 보증 비율을 낮추고 주담대 거치기간을 없애는 방안도 유력한 검토 대상이다. 은행에 대한 간접 거시건전성 규제로 검토되는 은행권 주담대에 대한 위험가중치 상향은 올해 연말 도입 예정인 스트레스 완충 자본과 연계해 추진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최후의 수단으로는 LTV(주담대 비율) 강화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가계대출점검회의에서도 LTV 강화가 거론됐다. 또 한국은행도 LTV 수준별 차등 금리 적용을 제언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규제 지역 내 무주택자의 LTV를 50%로 일원화하고 투기·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담대를 허용하는 등 대출 규제를 일부 완화한 점과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당장 LTV 규제 강화에 나설 뜻이 없다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전향적인 입장 전환이다.
내달부터 전세대출·디딤돌·버팀목도 DSR 산출
이번 DSR 규제로 그동안 DSR 대상에서 제외돼 온 정책모기지와 전세대출 등이 적용 범위에 포함됨에 따라 일부 유주택자의 타격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담대가 있는 대출자가 보유 주택을 전세로 주고 본인도 대출을 받아 전세살이를 하고 있는 경우에는 대출 한도가 줄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일부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 대출자의 경우 전세대출은 원리금 상환 대출이 아니라 이자만 갚아 나가고 만기도 2년으로 짧은 점을 감안할 때 대출 한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수도권에만 더 높은 스트레스 DSR 금리를 적용하는 ‘핀셋 조치’를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시중은행들은 그동안 보금자리론·디딤돌과 같은 정책대출 상품이나 중도금·이주비 대출, 전세대출, 1억원 이하의 소액 대출에 대해서는 DSR을 산출하지 않았는데 정부 방침에 따라 9월부터 모든 대출에서 DSR을 산출하면 DSR 수치만큼 차주별 DSR 평균값의 정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차주의 소득, 거주 지역, 대출 상품별로 맞춤형 규제를 적용할 수 있어 앞으로 위기 시 ‘핀셋’ 대출 규제에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대출 수요 둔화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시장에는 2018~2021년 아파트값 급등기에 ‘영끌’로 집을 산 사람과 아닌 사람 간의 자산 격차가 벌어졌던 트라우마가 남아있어서다. 올해 2월 1단계 스트레스 DSR 도입 이후 주담대 잔액이 증가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은행권 주담대 증가액은 △1월 4조9,000억원 △2월 4조7,000억원 △3월 5,000억원으로 감소하다가 △4월 4조5,000억원 △5월 5조7,000억원 △6월 6조2,000억원 △7월 5조6,000억원을 기록하며 금세 증가세로 돌아섰다.
일시적인 영향으로 보이기는 하나 당장 주택 관련 대출도 급증했다. 실제로 9월부터 적용되는 DSR 규제에 앞서 막바지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주담대를 중심으로 은행권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22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록한 715조7,383억원보다 6조7,902억원이 증가한 722조5,285억원으로 집계됐다.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22일 기준 565조8,956억원으로 지난달 말 559조7,501억원에서 6조1,455억원 늘어난 규모다.
대출 규제가 부동산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듯
금융 당국의 대출 규제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더욱 미미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저소득층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전세대출에 DSR을 적용하게 되면 집을 매수하기에는 자금이 모자라 전세를 사는 서민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전세제도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다. 전세제도는 집주인의 레버리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임차인의 주거비를 절감하는 기능을 하는데 내 집 마련의 사다리로 여겨져 온 전세 제도가 사라질 경우 결국 피해는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강도 높은 대출 규제가 집값 상승세를 반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수요 억제책을 준비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해 일부 지역에서만 부동산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상승세를 주도하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경우 현금 부자가 즐비한 만큼 대출 규제로 인한 수요 감소 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되며, 오히려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등에서 수요 감소가 이뤄지면서 시장에서 수요의 감소와 증대가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정부도 지난 8일 열린 제8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 등을 통해 투기수요 차단과 동시에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국민들이 원하는 시기, 원하는 지역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인허가·착공·준공 등 주택공급 전 과정을 밀착 관리하고 서울 그린벨트 해제 등을 통해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에서 뜨거워진 주택 매수세를 잠재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