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의 ‘생산기지 다변화 전략’, 中·日·美에 이어 유럽에 반도체 공장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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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 현지 공장 건설에 보조금 2조6,000억원 지급
美 상무부, 애리조나 공장 3곳에 총 116억 달러 지원
올 4분기엔 獨 드레스덴에 유럽 첫 반도체 공장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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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가 ‘반도체 생산기지의 다변화 전략’을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고 세계 주요국에 생산 거점을 확대하는 가운데, 각국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일본과 중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받았고, 올해 4월에는 미국 상무부로부터 반도체 생산시설 설립과 관련해 당초 예상 금액보다 많은 보조금을 지급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독일에 유럽 첫 생산기지를 건설하면서 투자 금액의 절반을 독일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日 구마모토 공장 2곳, 中 난징 공장 보조금 지급

26일(현지시각) 대만 연합보 등 현지 언론은 “TSMC의 재무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TSMC가 지난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일본 구마모토 공장과 중국 난징 공장의 부동산·공장 설비 구입과 생산 운영비의 명목으로 총 625억5,200만 대만달러(약 2조6,000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연도별로는 △2022년 70억5,100만 대만달러(약 2,000억원) △2023년 475억4,500만 대만달러(약 1조9,000억원) △올해 상반기 79억5,600만 대만달러(약 3,0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난징 공장은 중국 본토의 생산·설계 서비스 핵심 기지로 차량용 반도체인 28㎚ 12인치 칩을 주로 생산한다. 2021년 공장 설립과 이후 추진된 생산라인 확장 당시에는 ‘현지 생산 기지화’를 두고 중국과 대만 간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만에서는 TSMC의 기술 노하우가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에서도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 없는 낙후된 공정만 중국으로 떠넘긴다며 투자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TSMC 공장에 보조금을 지원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의 구마모토 1공장은 올해 4분기 12·16·22·28㎚(나노미터) 공정 제품을, 2공장은 2027년경 6·7·12·16·40 ㎚ 공정 제품을 양산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2022년 4월 건설을 시작해 올해 2월 완공한 제1공장과 투자안을 확정한 제2공장에 모두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 보고서에 제시한 보조금 규모 중 중국의 비중이 얼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가 자국의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해 상당 규모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의 몫이 압도적으로 클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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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獨 정부도 보조금 지원하며 TSMC 공장 유치

TSMC는 지난 4월 미 정부로부터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 66억 달러(약 8조9,000억원)를 지원받기도 했다. 애초 예상했던 50억 달러(약 6조7,000억원) 대비 30% 이상 늘어난 규모다. 이와 함께 50억 달러 규모의 저리 대출도 제공해 지원금 규모는 총 116억 달러(약 15조7,000억원)에 이른다. TSMC도 이에 화답해 현지 투자 규모를 당초보다 250억 달러(약 33조9,000억원) 늘린 650억 달러(약 88조1,000억원)로 확대하고, 오는 2030년까지 애리조나주에 3번째 공장을 추가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TSMC의 3개 공장이 최대로 가동되면 5G·6G 스마트폰과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서버에 사용되는 수천만 개의 첨단 반도체가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미 상무부는 “TSMC의 투자 계획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외국인 직접 투자로 현지에서 생산되는 칩은 모두 AI 등 미국 경제를 뒷받침하는 필수 요소”라며 “6,000개의 직접 제조 일자리와 2만 개의 건설 일자리를 창출하고,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첨단 반도체의 20%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에는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 생산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20일 TSMC의 유럽 합작회사 ESMC가 독일 드레스덴에 유럽 첫 반도체 생산공장을 착공했다. ESMC는 TSMC가 70%, 유럽 반도체 기업인 보쉬·인피니언·NXP가 각각 10%씩 지분을 갖고 있으며 이번에 설립되는 공장은 2027년 말 본격 생산에 돌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사업비는 100억 유로(약 14조8,000억원)로 이 중 절반인 50억 유로(약 7조4,000억원)는 독일 정부가 지원한다. 유럽연합(EU) 반도체 보조금 중 사상 최대 규모다.

반도체 공장의 글로벌 재편 속 韓 기업의 전략은?

반도체 업계는 TSMC가 대만 밖으로 생산 거점을 확장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에 있어 반도체 산업은 자국 안보의 인계철선 같은 존재였다. 이 때문에 대만 정부는 탈(脫)대만을 허용하지 않았고 실제로 2022년까지 해외에서 운영 중인 공장은 중국 본토에 있는 난징과 상하이 공장이 전부였다. 당시만 해도 TSMC의 경영진들은 해외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생산하는 것이 대만 본토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고 지적하며 미국 등 주요국이 내놓는 보조금에 현혹되지 말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만은 자국을 둘러싼 경제적·외교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생산 공장을 확대하며 안정적인 고객사 확보와 신뢰 구축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기술 유출 우려가 큰 핵심 첨단 공정 제품은 대만 내에서 생산하되 생산 거점 다변화를 통해 공급망을 보다 촘촘하게 연결해 지정학적 불안을 반도체 방어막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는 2028년경 TSMC 전체 생산량의 20% 이상을 해외 공장이 담당할 것을 보고 있다.

이는 한국 상황과 상반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해외 생산공장이 미국과 중국에 한정된 데다 공급망 전반에서 미·중 의존도가 높아 양국의 패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기업들은 보조금을 대가로 하는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첨단 제품의 비중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 거점과 시장 지배력이 동아시아에 편중된 데다 친미 성향의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보니 미·중 사이에서 눈치 보기는 앞으로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