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기시정조치 안건 상정·M&A 규제 완화 나선 금융당국, 저축은행 ‘옥석 가리기’ 본격화
저축은행 상위 5개사 당기순이익 603억원, 74개사는 4,407억원 적자
금융당국 M&A 규제 완화 방안 마련, BIS 비율 완화 및 영업구역 규제 재검토
M&A 활성화 정책 실효성에 의문 확산, "비대면 금융 시대에 M&A 나설 이유 있나"
금융당국이 적기시정조치 안건 상정 등을 활용해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저축은행 간 인수·합병(M&A) 활성화 방안도 마련한다. M&A를 통해 업권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단 취지지만, 시장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팽배한 분위기다. 비대면 금융 확대 등으로 저축은행들이 M&A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양극화 심화, 연체율도 온도 차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저축은행 업권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올 상반기 저축은행 상위 5개사(SBI·OK·한국투자·웰컴·애큐온저축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총 603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 580억원 대비 약 4% 증가한 수준이다. 이들 5개사는 올 상반기 모두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SBI저축은행 161억원, OK저축은행 73억원, 한국투자저축은행 114억원, 웰컴저축은행 153억원, 애큐온저축은행 102억원 등이다. 나머지 저축은행 74개사가 동기간 4,407억원의 적자를 본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연체율 측면에서도 온도 차가 나타났다. 저축은행 79개사 전체의 평균 연체율은 8.36%였지만, 이 중 상위 5개 저축은행은 7.19%에 불과했다. 전체 평균 대비 1.17%p나 낮은 것이다. 상위 5개사를 제외한 나머지 저축은행 74개사의 연체율은 9.13%까지 치솟는다.
상황이 이렇자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옥석 가리기’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우선 내달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 건전성 관리가 미흡한 저축은행에 대한 적기시정조치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적기시정조치는 일종의 강제 경영개선조치로, 크게 권고, 요구, 명령으로 구분된다. 금융사는 당국의 요구에 따라 부실채권 처분, 자본금 증액, 배당 제한 같은 조치를 이행해야 하고, 당국이 권고·요구한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영업이 정지되거나 합병·매각될 수 있다.
수도권 저축은행 M&A 문턱 낮춘다
저축은행 간 M&A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규제 완화 방안도 마련한다. 특히 수도권 저축은행에 대한 인수 문턱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현행법상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이 금감원 내부 관리 기준인 10~11% 아래로 떨어진 수도권 저축은행만 M&A가 가능하다. 재무건전성이 이미 악화한 상태에서만 인수 매물로 나올 수 있단 뜻이다. 이렇다 보니 수도권 저축은행 입장에선 인수 매물로 나와도 인수할 금융사를 찾기 어려워졌고, 그만큼 구조조정이 늦어졌다. 이에 당국은 BIS 비율 규제를 완화해 수도권 지역의 저축은행 M&A 여력을 높일 방침이다.
저축은행 영업 구역 규제를 재검토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 저축은행은 관련 법 및 시행령에 따라 수도권은 총신용공여액의 50%, 비수도권은 40% 이상을 영업 구역 내에서 공급해야 한다. 저축은행이 지역금융 활성화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겠단 취지에서 마련된 규제다.
문제는 최근 지방 경제 규모가 축소하면서 영업 구역 내 신용공여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단 점이다. 이 경우 저축은행은 의무 비율 준수를 위해 영업 구역 외 신용공여도 줄여야 하기 때문에 비수도권 저축은행의 영업 기반을 함께 축소하는 결과가 초래할 수 있다. 영업 구역 규제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단 의미다.
이에 전문가들은 4개 권역으로 구분되는 비수도권 영업 구역 일부를 통합해 광역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규제를 완화해 비수도권 저축은행이 대출 지역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저축은행 간 M&A 인센티브를 제고한다는 게 골자다. 비대면 개인대출에 한해 총신용공여액 계산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비대면 금융의 비중이 늘어나는 환경 변화를 고려해 규제의 기준을 재설정하자는 것이다.
시장 일각선 회의적 의견, “저축은행 M&A 유인 동기 없어”
규제 완화 방안에 저축은행 업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업권 내 M&A가 활성화하면 적자 상황이 빠르게 해소될 수 있단 기대감을 내비친 것이다. 최병주 저축은행중앙회 경영전략본부 상무는 “현재도 매물로 거론되는 저축은행의 경우 어느 정도 진행 상황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당국에서 규제를 완화하면 (M&A가)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다만 시장 일각에선 회의적인 의견도 나온다. 규제를 더 완화하더라도 저축은행 간 M&A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단 시선에서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수신기능이 없는 증권사나 캐피탈사 같은 금융기관 입장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매물”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미 저축은행을 갖고 있는 금융사는 저축은행 인수에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단 의미다.
당국의 M&A 규제 완화가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된 바 있단 점도 회의론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앞서 지난해 7월 당국은 ‘저축은행 합병 등 인가 기준 개정 방안’을 통해 저축은행 M&A 규제를 완화했는데, 개정안의 핵심은 비수도권 저축은행에 대해 동일 대주주 영업 구역이 확대되더라도 최대 4개의 저축은행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동일 대주주가 3개 이상의 저축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던 기존 규제를 완화해 저축은행 M&A를 유도하겠단 취지였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 도입 이후 저축은행의 매각 거래 성사 건은 전무했다. 디지털 전환이 활성화됨에 따라 영업 구역을 늘리는 데 큰 이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월 이후 79개 저축은행 가운데 67개 저축은행이 통합 앱을 통한 비대면 가입 등 온라인 영업을 하고 있다. 영업 구역을 늘려 지점을 확보할 이유가 줄어든 저축은행들 입장에선 타사를 인수하는 데 나설 동기가 부족했던 셈이다. 이번에 당국이 내놓은 M&A 활성화 방안 역시 업권 내 M&A의 유인 동기를 강화하진 못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