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매수청구 규모가 변수” 두산에너빌리티 인적분할, 주주 반대 넘을 수 있을까
위기의 두산에너빌리티 인적분할, 주주 반대 몰리면 뒤집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새 증권신고서,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하라"
회복되지 않는 시장 여론, 그룹株 주가도 줄줄이 추락
두산그룹 사업 개편의 첫 단추인 두산에너빌리티 인적분할 계획이 위기를 맞이했다. 소액주주와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지배구조 개편 계획의 성패를 좌우할 거대 변수로 떠오르면서다. 지난 7월 정정신고서 제출 요청 이후로 본격화한 금융감독원의 압박 역시 사업 개편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 ‘변수’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 11일 두산그룹 사업구조 개편 발표일 다음 날인 7월 12일부터 9월 11일까지 거래된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은 3,309만 주(전체 주식 수의 51.6%)다. 해당 기간에 거래된 주식은 이번 두산그룹 개편안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두산 측이 지난 7월 11일까지 취득한 주식에 한해 주식매수청구권(주당 2만890원)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 등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에 반대하는 주주가 소유한 주식을 회사에 매입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현재 두산에너빌리티의 1·2대 주주인 ㈜두산(및 특수관계인, 지분 30.7%)과 국민연금(6.9%)의 지분을 제외한 유통 물량은 전체 주식 수의 약 62.4%다. 7월 12일 이후 발생한 거래 중 중복 거래가 있을 것을 고려하면 현재 주식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는 최소 11%(62.4%-51.6%) 수준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두산에너빌리티 인적분할에 반대표를 던질 수 있는 소액주주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다.
만약 11%의 소액주주와 2대 주주인 국민연금(6.9%)이 주당 2만890원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접수될 수 있는 매수청구 규모는 최대 2조3,000억원에 육박하게 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매수청구 규모가 커지게 되면 두산에너빌리티 인적분할을 통해 1조2,000억원 규모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두산그룹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며 “두산에너빌리티가 설정한 주식매수청구권 한도가 6,000억원에 그치는 만큼, 합병 계획안을 수정해야 하는 부담도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압박
최근 이어지는 금융감독원의 압박 역시 기업구조 개편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금융감독원은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합병’ 및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 정정 제출을 요구했다고 공시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감원은 △증권신고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중요 사항에 관해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는 경우 △중요 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않은 경우 △중요 사항의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등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
주주들의 반대와 당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두산로보틱스는 지난달 29일 두산밥캣과 포괄적 주식 교환 계약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두산로보틱스 측은 “양사의 포괄적 주식 교환의 필요성 및 적절성과 관련한 주주 설득 및 시장 소통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주 및 시장의 부정적 의견이 강한 상황”이라며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한 시너지가 존재해도 현시점에서 이를 추진하지 않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업 구조 개편 방안에서 주식 교환을 배제하고,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간 분할 합병에 힘을 싣겠다는 구상이다.
이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개편 작업 일부 철회 결정에 대해 “주주와의 적절한 소통이 부족해 오해를 가져올 수 있었던 전형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 원장은 “사업 모양이 많이 바뀐 만큼 (두산이 새로 제출할) 증권신고서도 많이 바뀐 형태로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두산이 새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수렴된 상태에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고 발언했다.
미끄러지는 두산그룹株
두산의 사업구조 개편안을 둘러싼 시장 잡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두산그룹 산하 기업들의 주가는 줄줄이 추락하는 추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발표되기 이전인 지난달 11일 24만1,500원 수준이었던 두산의 주가는 12일 종가 기준 16만100원까지 하락했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하락세를 보인 점을 고려해도 상당히 부진한 성적이다.
다른 계열사도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달 11일 8만5,300원(종가)에서 다음 날인 12일 장중 10만9,300원까지 뛰었던 두산로보틱스는 이달 12일 6만6,800원에 장을 마쳤다. 두산밥캣의 주가도 지난달 11일 5만2,000원에서 12일 장중 5만9,500원까지 급등했지만, 전날 4만850원 선까지 미끄러졌고, 두산에너빌리티 주가 역시 지난달 11일 2만1,850원을 기록한 이후 연일 하락세를 보이다가 전일 1만7,710원까지 내렸다.
두산그룹주 전반이 증시에서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두산 측의 무리한 지배구조 개편 시도가 기업 이미지를 크게 훼손했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시장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지 않고, 소액주주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며 “여론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만큼,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인적분할에 반기를 들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