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우군 확보로 자금 충당 꾀하는 고려아연, MBK·영풍 ‘대항마’로 소프트뱅크 부상
주담대로 자금 마련 타진하는 최 회장, 이론상 1조원 추가 확보 가능
백기사 확보에도 주력, 소프트뱅크가 최 회장 측 우군으로 나서나
자금 여력 충분한 MBK, 최 회장 측 입지는 '다소 불안정'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 간 경영권 분쟁이 심화한 가운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복수의 주요 증권사와 주식담보대출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기사 확보를 위해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접촉했단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MBK·영풍 측의 지분율 과반 확보를 저지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실탄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최윤범 회장 측, 증권사에 주담대 문의
2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은 최근 복수의 주요 국내 증권사에 주식담보대출이 가능한지 문의하고 있다. 추가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대대적인 자금 확보를 타진하겠단 취지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 12일 MBK와 영풍은 내달 4일까지 고려아연 주식을 7.0~14.6%(9,537억원~1조9,964억원) 공개매수한다고 밝혔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현재 고려아연 지분율은 MBK·영풍 측이 33.13%, 고려아연 측이 33.99%로 박빙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MBK·영풍 측의 공개매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이들은 40.1~47.74%까지 지분을 끌어모을 수 있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등을 제외하면 공개매수 후 MBK·영풍 측 지분율은 52%로 과반을 넘긴다. MBK·영풍 측의 지분율 과반 확보를 견제하기 위해선 최 회장 측이 최소 6.05%(약 6,965억원)은 확보해야 한단 의미다.
이에 최 회장 측이 선택한 방책은 주담대다. 최 회장 측은 현재 고려아연 보유 지분 중 1.61%를 담보로 한국증권금융과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약 948억원의 대출을 받은 상태다. 최씨 일가 측 회사인 유미개발이 고려아연 지분 0.72%을 담보로 585억원을, 최씨 일가 종중인 해주최씨준극경기호종중이 고려아연 지분 0.20% 지분을 담보로 168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 이자율은 4.92~5.9%대다.
이미 주담대를 받은 1.6% 지분을 제외한 최씨 일가 측 지분은 총 14%(약 2조원 수준)이다. 금융회사가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할 때 통상 140~150%의 담보유지비율을 적용한단 점을 감안하면, 최 회장 측이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주담대 규모는 이론상 1조원 정도다. 주담대만 활용해도 최 회장 측이 최소 6% 지분을 확보할 여력이 생긴단 의미다. 최 회장이 지난 19일 사내 메일을 통해 “온 힘을 다해 MBK의 공개매수를 저지할 것”이라며 “그들(MBK·영풍)에게 대항해 이기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외부 지원 절실한 고려아연, 우군 물망에 ‘소프트뱅크’ 올랐다
다만 주담대가 원활히 이뤄질지 여부는 미지수다. 주요 증권사는 내부 컴플라이언스가 있는데, 경영권 분쟁 관련 주담대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여러 논쟁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K가 2조원가량의 실탄을 바탕으로 ‘속도전’을 꾀하고 있단 점도 부담이다. MBK가 설정한 공개매수 기간을 보면 추석 연휴와 개천절 등 공휴일이 다수 포함돼 있다. 때문에 현시점 고려아연 측에 남은 기간은 영업일을 기준으로 단 10일에 불과하다. 최 회장 측이 안정적으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선 외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인 셈이다.
이에 고려아연과 동맹 전선을 구축할 만한 기업 리스트에 업계의 시선이 쏠렸다. 가장 먼저 물망에 오른 건 한국투자증권이었다. 한투증권이 최 회장 측의 우군을 자처했단 소식이 IB 업계를 중심으로 퍼진 영향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지난 19일 “한투증권 담당자가 복수의 국내외 사모펀드(PEF) 관계자와 만나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한투증권 측은 고려아연 백기사 합류설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2022년 (한투증권이) 고려아연 자사주 0.8%를 매입한 적 있긴 하나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며 “이를 두고 (한투증권을) 우군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시장에서 최 회장 측에 합류할 가능성이 가장 높고 평가되는 건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다. 최 회장은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도쿄에 방문해 고려아연과 거래 관계가 있었던 일본 종합상사 및 글로벌 기업 등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단시간에 큰 자본금을 끌어와야 하는 만큼 최 회장이 이번 출장에서 소프트뱅크 측과 ‘물밑 담판’을 진행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소프트뱅크가 고려아연의 우군으로 나서면 최 회장 측이 MBK·영풍에 대항할 실탄을 단숨에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MBK 자금 여력 약 8조원, “유연한 대응 충분히 가능한 수준”
문제는 최 회장의 각종 노력에도 MBK가 ‘철옹성’을 유지하고 있단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MBK는 지난해부터 10조원을 목표로 6호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했다. 현재까지 이 펀드에 결집된 자금은 8조원에 달한다. 공개매수에 활용하겠다고 밝힌 자금 2조원을 제외해도 6조원이 남는 수준이다. 고려아연의 반격에도 유연한 대응이 가능할 정도의 여력을 이미 만들어 둔 셈이다.
이에 반해 최 회장 측의 입지는 다소 불안정한 상태다.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현대차, LG화학, 한화)들이 우군으로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줄지가 미지수로 남아 있어서다. MBK가 내건 실탄 2조원은 대기업 입장에서도 부담되는 액수인 만큼, 기존 대기업 주주들이 직접 분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IB 업계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대형 PEF가 최 회장 측의 동맹 전선에 참여할지 여부도 명확지 않다. 최 회장이 경영권 유지를 바라고 있는 만큼 경영권 확보 가능성이 희미한 고려아연에 선뜻 우군으로 나는 건 PEF 입장에서도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려아연은 이미 상장사여서 기업가치를 극적으로 끌어올려 재무적투자자(FI) 측의 자금 회수를 지원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대형 PEF 관계자는 “MBK의 상대편에 서서 경쟁한다고 해도 명분을 만들거나 투자 후 실익을 챙기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