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PBR 위주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 “주주환원은 사실상 뒷전” 혹평 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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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비판 확산, UBS "한국 투자자에 골칫거리로 전락할 것"
적극적 주주환원 이룬 대형 은행주는 선정 불발, '기업가치'에 매몰된 밸류업
한풀 꺾인 밸류업 기대감, 저평가·고배당 ETF 중심으로 시장 재편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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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4일 서울 사옥에서 코리아 밸류업 지수 종목을 발표하고 있다/사진=한국거래소

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며 “향후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밸류업 지수를 기반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겠다고 밝힌 셈이지만, 시장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지수 선정 종목이 고평가 가치주에 편중되면서 ‘기업가치 제고 및 주주환원 활성화’라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당초 취지가 희석됐다는 이유에서다.

드디어 베일 벗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

지난 24일 한국거래소가 서울 사옥에서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구성 종목과 선정 기준을 발표했다. 기업가치가 우수하거나 기업가치 개선에 노력하는 곳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겠단 취지 아래 새로운 지표를 마련한 것이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총 100개의 종목으로 구성됐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시가총액 10위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셀트리온, 기아 등 5개사가 포함됐고, 이외 포스코DX, 한미반도체 등 정보기술주와 HMM, 포스코인터내셔널, 대한항공 등 산업재가 선정됐다. 헬스케어 종목에선 한미약품, 클래시스 등이 포함됐으며 자유소비재에선 F&F, 휠라홀딩스, 소재에선 고려아연과 한솔케미칼 등이 선정됐다.

한국거래소는 질적 요건 및 비중 상한제의 도입을 통해 코스피200, KRX300 등 기존 대표지수와의 차별을 이뤘다고 강조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밸류업 지수는 기존 대표지수와 달리 다양한 질적 요건을 도입해 시총 상위 기업이라도 배제가 가능하다”며 “개별 종목의 지수 내 비중 상한을 15%로 제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초대형주의 지수 내 비중을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밸류업 계획 조기 공시기업과 표창기업에 대한 3단계 우대 방안이 마련된 점도 특징적이다. 한국거래소는 밸류업 계획을 조기 공시한 기업이 수익성·시총·유동성 등 최소 요건을 충족할 경우 최우선적으로 특례편입(2년간 편입 유지)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내년 6월 정기심사부터는 최소 편입 요건을 충족하는 ‘표창기업’에 대한 특례편입도 실시한다. 밸류업 지수를 활용해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상장사들의 주주환원 및 기업가치 제고 문화를 확산하겠단 취지다.

한국거래소는 밸류업 지수 도입 이후 국내 기업의 투자 성과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최근 5년 기준 밸류업 지수 수익률이 43.5%로 기존 시장 대표지수인 코스피200 수익률(33.7%)보다 9.8%p, KRX300 수익률(34.3%)보다 9.2%p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 밸류업 지수의 연평균 종목 교체율이 21.2%, 턴오버 비율은 14.5%로 적정 수준인 만큼 지수 안정성이 확보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밸류업 지수는) 적정 수준의 종목 교체가 이뤄지면서도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상 안정성도 저해하지 않는 균형잡힌 수준”이라며 “질적 지표를 반영한 밸류업 지수를 기초로 선물과 ETF가 출시되면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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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평가 가치주에 편중된 지수 종목, “주주환원 인센티브 거의 없어”

다만 한국거래소의 평가와 달리 전문가들은 밸류업 지수에 회의적인 반응을 쏟아내는 모양새다.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는 “시장 참가자들이 밸류업 지수와 관련해 귀중한 조언을 했지만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며 “밸류업 지수가 진정한 가치 상승을 반영하지 않아 한국 기관 투자자에게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지수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속히 방법을 바꾸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홍콩계 크레디리요네(CLSA)도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투자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지수 구성 방식의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면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ETF로 자금 유입이 제한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밸류업 지수가 평가절하된 원인은 한국거래소의 구성 종목 선별 과정에 있다. 한국거래소는 ‘5단계 스크리닝’을 통해 밸류업 지수 종목을 선별했다. ▲시가총액 상위 400위 이내 ▲최근 2년 연속 적자 또는 2년 합산 손익 적자를 내지 않은 기업 ▲최근 2년 연속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 실시 ▲주가순자산비율(PBR·시가총액 ÷ 순자산) 순위가 전체 또는 산업군 내 50% 이내 등의 요건을 충족한 기업 가운데 산업군별 자기자본수익률(ROE) 순위가 높은 100개 기업을 지수 편입 종목으로 선정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5단계 스크리닝 과정의 결과물이 ‘고(高) PBR, 고 PER’로 단순하게 정리된다고 지적한다. 실제 밸류업 지수의 평균 PBR은 2.6배로 코스피200지수(2배)보다 높은 수준이다. PER 역시 밸류업 지수 평균이 18.4배로 코스피200지수(11.2배)를 웃돈다. 밸류업 지수 자체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 아닌 이미 기업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구성됐단 의미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지수의 종목 선정 로직이 단순하게 결정되면서 지배구조 개선이나 주주환원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겠다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지 않게 됐다”며 “정책 방향에 부합하고자 한 기업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최근 2년 연속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총주주환원율(TSR) 관점에서 배당수익률이나 자사주 매입·소각률 수준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탓에 지수 신설 목적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부작용이 가시화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밸류업 지수에서 배당수익률이 1.5% 미만인 기업은 절반에 달했고, 지난해 기준 배당 성향이 20% 미만인 기업도 49개로 나타났다. 반대로 배당을 비롯한 주주환원에 적극적이었던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 등 대형 은행주는 각각 ROE 조건과 PBR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밸류업 지수에 포함되지 못했다. 밸류업 지수 선정과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 간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방증이다.

밸류업 기대감 동력 삼은 저평가·고배당 ETF, 지수 발표 이후 주가 부진

한편 밸류업 지수 발표 이후 주식 시장에선 저평가·고배당 ETF의 주가 부진 흐름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5일 기준 KoAct 배당성장액티브 ETF는 전 거래일보다 120원(1.21%) 내린 9,795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외 RISE 고배당 ETF도 3,000원(2.19%) 떨어진 1만,415원에 장을 마감했고, TRUSTON 주주가치액티브, ACE 주주환원가치주액티브 ETF, BNK 주주가치액티브, HANARO 주주가치성장액티브, KOSEF 고배당 등도 각각 전 거래일 대비 1.72%, 0.24%, 1.56%, 1.57%, 2.03% 하락했다.

이들 ETF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가 있었던 연초만 해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주가 급등세를 보였다. 저PBR 종목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 영향이었다. 그러나 막상 밸류업 지수에 저평가 가치주가 사실상 배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저평가·고배당 ETF의 성장세가 꺾였다. 실제 ETF들의 비중 상위 종목 15개를 살핀 결과 ACE 주주환원가치주액티브나 KODEX 밸류Plus는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과 전혀 겹치는 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밸류업 지수 구성이 시장의 예상을 빗겨나가면서 밸류업 기대감을 동력으로 삼던 ETF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기 시작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시장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KB금융, 하나금융지주 등 밸류업 지수가 발표되기 전부터 일부 종목에서 유사한 매도 물량이 쏟아진 탓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 등은 24일 오후 2시경 다량의 매도 물량이 나오면서 순간적으로 낙폭을 키웠다. 이로 인해 KB금융은 전 거래일 대비 3,000원(3.53%) 하락한 8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고, 하나금융지주는 2,100원(3.40%) 내린 5만9,6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앞서 언급했듯 이들은 모두 밸류업 공시가 이뤄지지 않은 종목들이다. 이외 밸류업 지수에서 탈락한 삼성물산, KT 등도 동시간대에 유사한 패턴을 보인 것이 확인됐다.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선 “한국거래소의 밸류업 지수 종목 명단이 발표 전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증권업계 역시 “일부 종목들에 알 수 없는 매도 혹은 매수 물량이 같은 시간 일제히 유입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며 “사전 유출에 대한 강력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