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이후 처음 보는 ‘1%대’ 물가, 한국은행 금리 인하 명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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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물가 상승률 1.6% 기록, 2021년 3월 이후 첫 1%대
정부 “당분간 2% 밑돌고, 2% 안팎 수준 등락” 전망
연준도 물가 안정 이후 피벗, 커지는 ‘금리 인하’ 재촉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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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021년 3월 이후 처음으로 1%대를 기록했다. 채소를 제외한 석유류 등 대부분 품목에서의 가격 안정세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물가의 하방 압력(디플레이션) 우려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하며 이달 한국은행의 피벗(톻화정책 전환)을 점치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 1.6%↑

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6% 상승한 114.65(2020=100)로 집계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로 떨어진 건 2021년 3월(1.9%) 이후 처음이다. 상승률은 2021년 2월(1.4%) 이후 3년 7개월 만에 가장 낮다.

대부분 품목이 가격 안정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고공행진’하는 채솟값만이 골칫덩이로 남았다. 채소류는 전월과 비교해 18.6% 치솟았고, 1년 전과 비교해서는 11.5% 올랐다. 이례적인 장기간 폭염이 배추(전년 동월 대비 53.6%↑)·무(41.6%↑)·상추(31.5%↑)·풋고추(27.1%↑) 등 채소 가격 급등을 초래한 모습이다. 정부 관계자는 “상추나 시금치는 날씨만 좋아진다면 2~3주 만에 (자라서) 가격이 나아질 수 있다”면서도 “배추는 생육 기간이 3개월이라 쉽게 안정화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수입·조기 출하·할당관세 등으로 수급 안정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가격이 급등한 채소류를 제외한 다른 품목들은 모두 전년 동기 대비 0~3%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최근까지 고물가의 주범으로 꼽혔던 과일도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 신선과실은 전월 대비 7%, 전년 동월 대비 2.9% 하락했다.

국제유가 하락 영향으로 석유류는 전년 대비 7.6%나 떨어졌다. 정부는 국제유가·기상·공공요금 등에서 돌발 변수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2% 내외의 물가 상승률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이날 ‘물가 상황 점검 회의’를 통해 “물가 안정의 기반이 다져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2%를 밑돌다가, 연말로 갈수록 기저효과 등으로 2% 안팎 수준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물가 상승률 1%대 기록은 대부분 국제유가 하락 등 공급 측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각에선 내수 부진에 따른 수요 둔화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실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8월 대비 하락 분(0.42%p)에서 석유류의 하락 분(0.33%p)이 80%를 기여해 가장 컸는데, 수요 측 압력을 측정하는 근원물가 하락 분(0.06%p)도 14%가량 기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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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위험 vs 디스인플레이션 과정

이에 ‘물가 하방 압력’의 위험도 고려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국제유가 하락 영향도 있지만, 금리가 높아서 물가에 대한 수요 압력이 낮은 등 수요·공급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하방 압력이 작용했다”며 “지금까지는 고물가가 주요 이슈였지만, 내수 부진이 심화한다면 자연스럽게 물가의 하락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이자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인 김광석 교수도 “디플레이션으로 빠지는 걸 걱정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정부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물가 상승률 둔화)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황경임 기재부 물가정책과장은 “근원물가가 2%인 것을 참고하면, 경기적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이 컸다고 본다”며 “지난 2년간 인플레이션이 극심했었다. 이번 물가 상승률이 1%대로 떨어진 건 (지난 시기에 따른) 디스인플레이션 진행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은 ‘피벗’ 코앞 청신호

‘디스인플레이션’이냐 ‘디플레이션’이냐의 논쟁을 떠나 전문가들의 공통된 해석은 기준금리 인하를 더는 늦춰선 안 되는 신호라는 것이다. 물가가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2%)보다도 낮아지면서 금리 인하 명분은 더 커졌다는 평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을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 캐나다 등도 물가가 진정 국면에 들어가면서 금리 인하를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팬데믹 이후 이어진 ‘고물가와의 전쟁’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지난 4월부터 5개월 연속 2%대 물가상승률을 보이며 안정세를 나타냈다. 한은이 우려하던 주택거래량이 9월 들어 주춤한 것도 금리 인하 기대감을 키우는 요소다. KB부동산의 주택가격 동향 자료에 따르면 9월 KB선도아파트 50지수는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에 한은 내부에서도 변화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신성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주택가격 상승 모멘텀이 더 강해지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시사했지만, 지난달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집값이 100% 안정된 다음 금리 인하를 시작할 만큼 우리 경제가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내수를 보면 금리 인하 필요성은 더 커졌다”고 전했다. 집값 상승세가 뚜렷하게 꺾이지 않더라도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의중으로 읽힌다. 정부 정책 효과를 기대한다는 낙관 전망도 내비쳤다. 장 위원은 지난달 26일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과 가계부채 관리 방안 등의 효과가 점차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며 “정부 대책의 효과 점검과 거시건전성정책 공조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르익은 금리 인하 분위기는 국내 채권시장에도 반영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15%p 내린 연 2.811%를 기록했다. 이는 연중 최저치(2.806%)에 근접한 수준이다. 금일 오전 장에서는 2.781%까지 내려갔다. 경제 전문가들도 한은이 10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앞서 연준이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데다 물가안정 기조가 강화됐다는 이유에서다. 또 중동 지역 분쟁이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금리 인하 명분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