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점수 950점 돼야 은행 대출, 높아진 대출 문턱에 카드론·현금서비스로 수요 몰려
은행 대출 평균 신용점수, 한 달 새 12점 올라
5대 은행, 7~8월에만 주담대 금리 22회 인상
'카드 대출' 잔액은 사상 최대인 44조원 돌파
신용점수 950점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이 최근 가계부채 급증세를 억제하기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1금융권에서 밀려난 금융소비자는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문턱이 낮은 카드론·현금서비스 등을 찾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은 물론 인터넷은행도 대출 신용점수 급등
4일 은행권에 따르면 9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일반 신용대출(신규취급액 기준)의 평균 취급 신용점수가 938점으로 나타났다. 8월 집계한 926점과 비교하면 한 달 새 12점가량 상승했다. 5대 시중은행 일반 신용대출의 평균 취급 신용점수는 올해 초 923점을 기록한 이후 지난 8월까지 920점대를 유지하다 9월 들어 930점을 넘어섰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이 960점으로 가장 높았고 우리은행 943점, 하나은행 934점, 농협은행 929점, 신한은행 925점 순으로 나타났다.
신용등급의 기준이 되는 신용평가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점수를 기준으로 보면 △1등급 942~1,000점 △2등급 891~941점 △3등급 832~890점 △4등급은 768~831점이다. 통상 3등급까지 고신용자로 분류하는데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은행권 평균 신용점수가 938점까지 오르면서 신용등급 3등급 차주는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고 2등급 차주도 상당수가 대출을 받기 어려워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900점만 넘으면 신용점수가 높다고 평가받았지만, 이제는 950점을 넘어야 고신용자로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신용점수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터넷은행의 평균 신용점수는 866점이었으나 올해 월 901.7점, 2월 906점으로 오르며 900점대에 진입했고 3월에는 921.7점으로 920점을 넘어섰다. 은행연합회·여신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은행별 평균 신용점수는 토스뱅크가 937점으로 가장 높았고 카카오뱅크 925점, 케이뱅크 807점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토스뱅크의 신용점수는 7월 기준 하나은행(930점), 농협은행(924점)보다 높았으며 카카오뱅크도 신한은행(922점), 국민은행(918점)보다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주택시장 과열 지속 시 DSR 한도 축소 등 추가 조치할 것
은행권이 신용대출 기준을 높인 데는 가계대출을 줄이라는 금융당국의 강경 기조가 영향을 미쳤다.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 들어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자, 시중은행을 불러들여 은행장 간담회와 점검회의를 진행하는 등 은행권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지난 7~8월 5대 시중은행은 금융당국의 협조 요청에 따라 22차례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상했고 하나은행을 제외한 4개 은행에서 모두 유주택자에 대해 주담대 취급을 중단했다.
유주택자의 주담대뿐만 아니라 전세대출, 조건부 전세대출도 대부분의 은행에서 막혔다. 최근에는 대표적 가계대출 규제로 주담대 만기 축소와 생활안정자금대출 한도 축소를 적용하고 있다. 주담대 만기는 국민‧신한‧우리은행을 비롯해 기업은행까지 모두 4곳에서 30년으로 제한됐다. 현행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소득 대비 1년 상환 금액의 비율을 제한하기 때문에 만기가 줄면 그만큼 대출 한도도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주담대 생활안정자금의 경 5대 시중은행 모두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하면서 사실상 신규 대출이 막혔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가계대출의 증가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자, 지난달부터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신용대출마저 조이기 시작했다. 국민·신한은행 등은 연 소득의 150% 수준까지 내주던 신용대출 한도를 100% 수준으로 강화하고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제한했다. 특히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평균 신용점수는 957점으로 일반 신용대출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신용대출에 연간 소득 대비 대출비율(LTI)을 적용해 대출한도를 연 소득 내로 묶어버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최근 가계부채 급증세를 꺾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함께 증가세가 잡히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수단들을 과감하게 시행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상태다. 지난달 6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수장이 참석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정부의 획일적 통제보다는 은행권의 자율적 대출 관리가 우선한다”며 “주택시장이 계속 과열되고 가계부채 급증할 경우 DSR 한도 축소 등 추가적인 관리 수단들을 적기에 과감하게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막힌 중·저신용자와 다중채무자 등, 카드론에 몰려
문제는 은행권이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금융소비자의 제1금융권 접근이 제한되다 보니 카드론·현금서비스 대출은 급증하는 풍선효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카드 대출 규모는 44조6,650억원으로 지난해 말 41조5,530억원에서 7.5% 늘면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23년 한 해 동안 카드 대출이 1조8,940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8개월 새 지난해 증가 폭의 1.6배 수준을 넘어섰다.
수수료율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했던 카드사도 8월 들어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앞세워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하나·우리·비씨)의 상반기 순이익은 1조5,2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4,469억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5.2%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비씨카드가 236.0%로 가장 높았고 하나카드(60.8%) KB국민카드(32.6%) 삼성카드(24.8%) 신한카드(19.7%) 순으로 순이익 증가 폭이 컸다.
이렇듯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 장·단기카드대출이 증가하면서 가계부채 문제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카드대출은 신용카드만 있으면 별도 서류 제출이나 심사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은행권에서 대출이 불가능한 다중채무자나 중·저신용자가 받는 경우가 많아 가계부채의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카드대출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지난 8월 30일 이상 연체채권의 연체율이 3.1%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3%를 넘어섰다. 지난 2021년과 2022년의 연체율은 각각 1.9%, 2.2%를 기록했다.
대출 규제를 회피한 수요들이 제2금융권으로 넘어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나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18일 금감원은 롯데·현대·우리 등 카드사 3곳을 대상으로 이달 말까지 리스크 관리 계획 제출을 요구했다. 해당 카드 3사는 올해 늘어난 카드론 잔액 증가분의 80%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분양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인 ‘올림픽파크포레온’의 잔금대출 금융사로 선정된 서울 강동농협에 대한 건전성 관리에 나서는 등 아파트 잔금대출인 ‘집단대출’ 시장에 상호금융권이 뛰어드는 것에 대해서도 위험 요인 점검에 나섰다.
금융당국, 제2금융권 관리 등 가계대출 옥죄기 강경 기조
은행권의 가계대출 옥죄기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은행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금융권이 10월에도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 인상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2일부터 전세자금대출 상품의 감면 금리를 최대 0.5%포인트 축소했고 우리·국민·신한은행은 주담대와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일제히 인상했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30일부터 주담대 대환 시 우대금리와 신규대출 우대금리를 각각 0.5%포인트, 0.3%포인트 내렸다.
다만, 강화된 대출 규제 속에 실수요자 대출절벽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만큼 은행권의 냉·온탕 식 대출 영업을 개선하기 위해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금융위와 금감원은 은행별 연간 대출 공급 목표액을 월 단위로 설정·관리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통상 은행은 연간 이자 수익 극대화를 위해 상반기에 연간 목표액 대부분을 채우는 방식을 대출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하지만 가계대출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내년부터 월 단위 대출 공급 목표액을 세워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함으로써 대출이 특정 시점에 쏠리 않도록 월별로 적절히 분산시키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