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건설업계 임금 체불 사례, 다단계 하도급 구조·업황 침체 영향
"1차 협력사 파산, 원청사가 임금 달라" 건설 현장 노동자들 호소
건설업계 임금 체불 규모 확대, 반복되는 하청에 책임 소재 불명확
업황 침체로 지불 여력 잃은 건설사들, 지방 중소 건설사 '줄도산'
동부건설이 짓는 충남 아산 하나머티리얼즈 2공장의 하청업체 직영 근로자 100여 명이 임금 체불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에 나섰다. 동부건설의 1차 협력사인 금강티디씨가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파산하자, 원청사인 동부건설에 임금 지급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하나머티리얼즈 2공장의 사례가 현재 건설업계 전반에 만연한 임금 체불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이 나온다.
하나머티리얼즈 2공장 노동자, 10억원 못 받았다
2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하나머티리얼즈 2공장에서 칸막이(수장) 공사, 비계 공사 등을 수행한 근로자들은 전날 오전 8시 동부건설 본사 앞에서 임금 체불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공장의 수장 공사를 맡았던 이동규 새로컴퍼니 소장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동부건설의 1차 협력사인 금강티디씨가 직영 근로자 100여 명의 4개월분 임금 지급을 미루다가 지난 8월 갑자기 파산했다”며 “원청사인 동부건설은 금강티디씨가 근로자들의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금강티디씨에 기성 공사 대금을 납부했으니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사실상 방관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건설 근로자들은 3개월 넘게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도 원청인 동부건설 관계자의 ‘인건비만큼은 문제없이 지급하겠다’는 말을 믿고 동부건설이 요구한 돌관(야간)공사까지 진행했다”며 “금강티디씨가 임금 지급을 미루고 있었어도 국내 유명 건설사인 동부건설이 책임지고 준다는 말에 꾹 참고 공사에 매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금강티앤씨가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올해 1~4월 임금은 칸막이(8억8,000만원), 비계(2억1,000만원) 등 총 10억9,000만원이다.
하지만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금강티디씨는 건설 경기 침체로 인한 경영 악화로 지난 8월 21일 파산했다. 이에 금강티디씨 직영 근로자들은 원청사인 동부건설에 관리 소홀 문제를 지적하며 임금을 대신 지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동부건설은 금강티디씨와 체결한 공사 계약에 따라 적법하게 인건비, 자재비 등 공사 대금을 모두 지급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반기 건설업계 임금 체불 2,478억원
업계에서는 하나머티리얼즈 2공장의 사례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평이 나온다. 최근 들어 건설 현장 곳곳에서 임금 체불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임금체불액은 1조436억원이며, 이 중 건설업 체불액은 2,478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체 체불 규모의 23.7% 수준이자, 전년 동기 대비 26.0% 급증한 수치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통계에 잡히지 않은 소규모 현장의 임금 체불 사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임금 미지급 사례 등을 고려하면 체불 규모는 통계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건설업 임금 체불의 원인으로는 업계 특유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지목된다. 하청이 반복되는 동안 임금 지불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면서 노동자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건설노조 관계자는 “민간 건설 현장에서는 임금이 시행사와 원청업체, 하청업체 등을 거쳐 지급돼 혼란이 크고, 흔히 ‘중간업자’로 불리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수수료 명목으로 임금을 일부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며 “원청이 하청업체를 거치지 않고 근로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불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건설업 경기 침체가 임금 체불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황 악화로 건설사들이 임금 지불 능력을 잃으며 업계 전반의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이달 건설업의 업황 전망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51로 지난해 10월 대비 16포인트(p) 하락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9년 이후 10월 기준 역대 최저치다.
건설업황 전망 ‘비관적’
전문가들은 한동안 건설업계의 침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건설 수주 부진 등이 차후 건설업 업황 회복의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 6월 ‘2024년 하반기 건설·부동산 경기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국내 건설 수주 규모가 지난해보다 10.4% 줄어든 170조2,000억원에 그칠 것이라 관측한 바 있다. 이는 전년 대비 17.4% 급감한 수치다. 특히 민간 수주가 토목과 건축 모두 부진한 흐름을 보이며 전년 대비 16.1%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건설사들의 재무 부담을 가중하는 미분양 물량 역시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올해 ‘8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소위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전국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총 1만6,461호로 집계됐다. 7월 말 대비 2.6% 증가한 수준이자, 2020년 9월(1만6,883가구) 이후 3년 11개월 만에 최대치다. 미분양 물량이 적체되면 건설사의 자금 회전에 차질이 빚어지며 업황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에 생존 여력을 잃은 지방의 중소·중견 건설업체들은 줄줄이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9월(10일 기준) 누적 기준 부도가 난 건설업체(금융결제원이 공시하는 당좌거래 정지 건설업체, 당좌거래정지 당시 폐업 또는 등록 말소된 업체 제외)는 모두 23곳으로 확인됐다. 이는 동기 기준(1~9월) 지난 2019년(42곳) 이후 최대 수준이다. 건설사 폐업 신고 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집계된 누적 종합건설사 폐업 신고 건수는 330건으로, 전년 동기(266건) 대비 24.1% 늘었다. 같은 기간 접수된 전문건설사 폐업 신고도 1,410건으로 107건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