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교수 정년 67세 연장 추진, 대학가로 번진 ‘정년 세대 갈등’
국공립대 교수노조 ‘정년 연장’ 교육부와 협의 나서
폴리텍대학, 교수 정년 60세→65세 확대 정관 개정
젊은 교수·비전임 교원들 “설 자리 잃을라” 반발
노동 시장 곳곳에서 정년 연장 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고령화가 진행된 대학가에서도 정년 연장 논의에 불이 붙었다. 국공립대학교를 중심으로 정년을 연장해 달라는 전임 교수들의 요구가 확산하면서 교수 사회 내에서도 세대별, 고용형태별로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교수 정년 67세로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최근 정년이 65세인 교수들이 정년을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등장하는가 하면 정년 이후에 고용 형태를 바꿔 재고용하는 대학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국국공립대 교수 노동조합의 정년 연장 안건이 대표적이다. 국공립대 교수 노조는 최근 교육부와의 협의회에서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하는 안건을 제시했다. 장기적 안목의 연구를 지원하고 석학이 후학을 길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이 교수들 주장이다. 국공립대 교수 노조 조합원은 2,000여 명으로 국내 7개 교수 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따라서 이들의 정년 연장 논의가 여타 대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지난달 이사회를 열어 교수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기로 의결했다. 폴리텍대학은 교수 정년 연장 추진을 위한 정관에 부칙을 두고, 올해 60세가 되는 1965년생부터 정년을 1년씩 늘리는 방안을 마련했다. △1965년 출생자는 종전 정년에서 1년 △1966년 출생자는 2년 △1967년 출생자는 3년 △1968년 출생자는 4년 △1969년 이후 출생자는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방식이다. 이전 정관을 거꾸로 돌린 셈이다. 이에 한국폴리텍대학 교수 노조는 “정년 65세 환원은 ‘대학다운 대학, 교원다운 교권 확립’을 향한 대전환점”이라고 환영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정년 후 교수’ 제도를 운영 중이다. 61세~65세 전임 교수 중 교육 및 연구성과가 탁월하고 정년 후에도 업적이 기대되는 교수들을 선별해 70세까지 고용을 유지하는 제도인데, 최근에는 70세 한도도 없앴다. 정년 후 교수가 되면 전임 교수에서 초빙 교수로 고용 형태가 바뀐다. 일종의 ‘재고용’이다. 근로 조건은 전일제 근무로 전임직 때와 동일하나, 급여는 교수가 연구비에서 직접 충당해야 한다. 현재 KAIST에서 정년 후 교수로 지정된 인원은 총 41명으로 전임 교수 713명 중 5%에 달한다. 이 중 17명은 이미 65세를 넘었다.
60대 이상 1인당 과제수 1.3건 ‘최저’, 기술 트렌드에도 뒤처져
행정안전부 공무직 정년 연장에 이어 대학교수들의 정년 논의에도 불이 붙은 것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때문이다. 실제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현재 전체 교수 중 60대 이상 전임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2.1%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교수들의 성과와 업적은 고령화에 반비례했다. 한국연구재단의 자료를 보면 60대 이상 전임 교수들이 처리한 1인당 과제 수는 다른 연령대 교수들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공계 분야의 경우 60대 이상 전임 교수의 1인당 과제 수는 1.34건이었다. 40대 2.26건, 50대 2.05건, 30대 이하 1.87건에 못 미쳤다. 인문사회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60대 이상의 1인당 과제 수는 0.65건이었으며 40대 0.95건, 50대 0.91건, 30대 이하 0.71건이었다.
이렇다 보니 교수들의 정년이 연장되면 대학의 연구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내 4년제 대학 40대 교수 A씨는 “공학 분야는 첨단 기술에서 앞서가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되다보니 누구나 기술을 기반으로 경쟁한다”며 “나이가 많은 교수님들은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는 감각 등 경쟁력이 평균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어 정년을 연장한다면 반발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환경이 악화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연구실, 대학원생 할당 등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세대 간 경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 대학 교수 B씨는 “한국은 미국과 달리 본인이 지도하는 학생이 아니면 연구를 시킬 수 없다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내 학생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정년 연장 이후에도 연구실과 시설을 차지하려는 교수님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임 교수를 목표로 하는 대학원생들과 비정규 교수들은 전임 교수 정년이 연장되면 자신들의 미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 이공계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조 모씨는 “안 그래도 없는 교수 자리가 더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립대 정년 연장은 언감생심
이처럼 대학가에서 교수 정년 연장 논의가 확산하고 있지만 국공립대와 사립대 간의 온도차가 뚜렷하다. 사립대에서는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을 갖고 이를 정년 연장에 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립대에서는 교수 정년 연장이 현실화하기 위해선 대학의 재정 여력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현재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정년 연장 논의가 가속화하는 만큼 국공립대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도 사립대에서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정년 연장 문제를 두고 “환경 미화원 등 신체적인 능력을 쓰시는 분들도 정년이 65세까지 연장되는 상황인데 지식 노동자의 대표 격인 교수는 정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인 만큼 정년 연장 자체는 가능한 얘기”라고 전제하면서도 “각 대학이 정년을 연장해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사립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예산이 한정된 만큼 연구활동은 물론 강의시간도 길게 맡아줄 수 있는 젊은 교수를 더욱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학 교직원 역시 “아무래도 대학은 일반 업계보다는 특수성이 있는 곳이기에 연금 등 자원이나 공간 문제 등 선제적으로 해결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립대는 2009년부터 15년간 사실상 강제 동결되다시피 한 등록금이 재정 문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년 연장 취지는 인정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재정 여건 때문에 당장 정년 연장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 이사장도 “한국의 사립대들이 교수 정년 연장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라고 단언하며 “지난 15년간에 걸친 등록금 동결로 인해 사립대들은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연봉 3,000만원 수준으로 2~3년마다 재임용을 받아야 하는 비정년 트랙 계약직 교수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서는 지방 사립대의 경우에도 대학의 존폐가 시급하지, 교수 정년 연장은 의논할 문제조차도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의대 정원 증가 등으로 인해 시설 확충이라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들은 정년 연장 문제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다는 입장이다. 의대를 보유하고 있는 한 지방 사립대 관계자는 “당장 내년부터 입학하는 의대생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 등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교수들의 정년을 늘리는 것은 나중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