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요건 완화’ 후 동전주 기업 35% 증가, 작전 세력 타깃 주의보
2년새 동전주 급증, 주가 1,000원 미만 224곳
변동성 크고 주가 조작에 취약, 작전세력의 장난감
K-밸류업 가로막는 동전주, 시장 퇴출 필요
주가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penny stock)’가 최근 2년 동안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거래소가 국내 증시의 상장폐지 요건을 완화한 뒤 나타난 현상이다. 주가가 급락한 부실기업의 증시 퇴출 지연은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밸류업에 방해가 된다. 더욱이 이런 종목은 테마주 투자에 이용되거나 ‘작전 세력’의 목표물이 되기도 쉬워 투자자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전주 속출, 2년간 35% 급증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코스피)과 코스닥시장의 동전주는 지난달 말 기준 224개에 달했다. 주가가 100원이 안 되는 종목도 같은 기간 1개에서 5개로 늘었다. 지난 10년간 신규 상장 종목의 수정 공모가가 평균 1만3,357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종목의 주가가 얼마나 많이 내려갔는지를 알 수 있다.
시가총액이 큰 종목도 예외는 아니다. 시총이 약 2,400억원인 SK증권은 최근 507원에 마감했고, 시총 1,800억원 규모의 건설주 동양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부분 1,000원 이상이었으나 올해 들어서는 4거래일만 제외하고 그 아래였다. 이 외에도 한국제지(주당 945원), KEC(882원), 한국캐피탈(559원),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805원), 에이비프로바이오(557원) 등 시총이 1,500억원을 넘는 동전주 종목이 수두룩하다.
동전주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022년 11월 한국거래소가 상장폐지 요건을 완화한 뒤부터다. 당시 거래소는 ‘2년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등 형식적 상폐 사유에 해당하던 내용을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사유로 완화했다. 아울러 코스닥시장 종목이 5년 연속 영업손실 시 실질 심사를 받도록 한 규정 등도 삭제했다.
이에 따라 코스피·코스닥·코넥스 등 한국의 상장 기업 수가 2021년 말 2,506개에서 현 2,680개로 174개 늘어나는 사이 동전주는 139개나 증가하게 됐다. 관리종목, 투자주의 환기 종목으로 지정된 이른바 ‘좀비 상장사’도 2021년 말에는 각각 10개, 11개였지만 지난달 말 기준 32개, 42개로 늘어났다. 전체 동전주 224개 가운데 거래가 한 건도 없었던 종목도 44개나 됐다. 성장 기업 진입과 부실 기업 퇴출의 선순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다.
600% 뛰었다가 폭락, 작전 세력 먹잇감
요건이 완화된 뒤 동전주의 거래량이 다른 종목을 넘어서는 일도 잦아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거래일의 동전주 거래량은 평균 130만2,178주(거래량이 0인 종목 제외)에 달했다. 이는 같은 날 동전주를 제외한 전체 종목 평균 거래량(39만1,758주)의 3배를 상회하는 규모다. 적은 돈으로도 주가가 크게 움직이는 동전주의 특성상 테마주 투자의 대상이 되거나 주가 조작 세력의 목표물이 되는 일이 잦아 거래량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투자자가 많이 매수한 해외 주식이 폭락하는 배경에도 동전주가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미국과 홍콩 증시에서는 국내 투자자가 많이 매수한 동전주가 급락하는 일이 반복됐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관초홀딩스, 키즈테크홀딩스, 중천호남집단, 중보신재그룹, 미국 나스닥 증시에 상장된 이홈하우스홀딩스 등 파악된 주식만 40여 개사에 이른다.
이들 종목은 국내 투자자 매수세가 몰리면서 짧게는 열흘에서 길게는 1년간 주가가 2배에서 30배 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하루 이틀 만에 최대 97%대까지 떨어지면서 상승세를 타기 이전으로 돌아갔고, 수년이 지나도록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례로 관초홀딩스는 2019년 7월 열흘 만에 주가가 2배 급등했는데 그 뒤에는 국내 투자자의 475만2,260달러(약 65억원)에 달하는 매수세가 있었다. 잠시 조정받던 주가는 같은 해 8월 2거래일 만에 무려 93.99%가 빠졌고, 한때 29.7홍콩달러에 달하던 주가는 현재 1홍콩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국내 증시도 투기 세력의 놀이터가 되긴 마찬가지다. 2022년 폭락한 ‘베트남개발1’ 사례가 대표적이다. 코스피 종목이었던 베트남개발1은 2022년 하반기,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다는 상한가(30% 상승)를 단 40일 만에 8번이나 찍으며 그해 11월 9일 기준 257원에 장을 마감했다. 당시 베트남개발1의 거래량은 2억2,380만 주로, 2,422개 상장 주식 중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시가총액이 354억원밖에 되지 않는 소형주가 연일 상한가를 찍으니 개인 투자자 입장에선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전월인 2022년 10월 11일엔 주당 498원까지 올라서면서 2007년 상장 이후 역대 최고가를 찍은 바도 있다. 한국거래소가 같은 달 6일 베트남개발1을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하고, 뒤이어 19일엔 펀드 운용사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내 공시까지 냈음에도 거래가 줄어들긴커녕,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2022년 9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무려 600%나 급등했던 베트남개발1은 투기 세력이 빠지자마자 폭락했고 개미들은 하루아침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솜방망이 처벌에 ‘범죄자 놀이터’ 된 韓 증시, 밸류업 발목
문제는 동전주와 같은 비우량 종목이 국내 증시 밸류업의 발목을 잡고 있음에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나스닥의 경우 주가가 1달러 미만으로 최장 540일간 유지될 시 상폐되도록 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최근 요건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상폐를 반년 이상 앞당겨 부실기업 투자로 인한 투자자 위험 요인을 빠르게 제거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반해 국내 증시는 들어오기는 쉽고 나가기는 어려운 방향으로 역주행하는 실정이다.
동전주 투자가 투기·도박과 다름없는 초(超)고위험 상품 취급을 받는 데다 주가 조작과 같은 불공정 거래가 끊이지 않음에도 처벌은 미미한 수준에 그친 점도 문제다. 실제로 최근 3년간 대법원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단일 범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피고인 35명 중 집행유예 없는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5명에 불과하며, 최대 벌금액은 20억원에 그쳤다. 이 역시 증권시장을 교란하고 부당이득을 거둔 이들에게 징역 수십년형에 수천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상 주가조작 등에 대한 양형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불공정거래로 얻거나 회피한 손실액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으나,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의 주가조작도 15년형을 초과할 수 없다. 간혹 시세조종에 관여한 인물이 징역 20년을 선고받는 사례가 있는데, 이는 과거 같은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고 횡령이나 사기 등 다른 범죄 형량이 가중된 영향이다. 이와 함께 한국에선 미국과 달리 주가조작범에게 천문학적인 벌금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벌금액수는 ‘부당이득액’의 3~5배인데, 검찰과 금융당국이 산정한 부당이득액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올해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된 만큼 시장에선 향후 솜방망이 처벌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형사처벌과 별개로 불공정거래로 검찰 수사가 끝난 이에게 부당이득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부당이득이 없거나 산정하기 어려우면 최대 40억원 내에서 결정할 수 있다. 그동안 판례로만 존재했던 부당이득 산정방식(총수입-총비용)도 법률에 정식으로 명시됐다. 또 시세조종 기간 외부요인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면, 외부요인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부당이익을 계산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