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우려에 중기 대출 빗장 거는 은행들, 기업대출도 ‘빈익빈 부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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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은행 보수적 기업대출 영업 확대
대기업 대출 20% 늘어난 반면 中企는 6% 증가
중기대출 연체율 늘자 채권 매각·상각 65%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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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대기업 대출을 확대하는 동안 중소기업 대출 문턱은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 중소기업의 연체 및 부도 위험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시중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에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기조를 밝히면서 향후 성장기업마저 자금을 융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 대출 신장액, 중기 대출 70% 수준

6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지난달 말 대기업 대출 잔액은 164조6,35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잔액인 137조3,492억원과 비교해 20% 증가한 수치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26조9,667억원에서 665조7,354억원으로 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기업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분의 1에 불과한 대기업 대출의 증가액(27조원)이 중소기업 대출 신장액(39조원)의 70% 수준인 셈이다.

그간 시중은행이 늘 대기업 대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는 5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이 1월 대비 12월에 10%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은 5% 이상 줄었다. 최근 들어 기업대출 기조가 바뀐 것은 경기 악화 영향이 크다. 불경기에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에 대출을 내줬다가 돌려 받지 못할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는 것이다.

더구나 금융지주사들이 밸류업 계획에서 주주환원의 기준이 되는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높이기 위해 RWA(위험가중자산)를 관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업대출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CET1 비율은 보통주자본을 RWA로 나눠 구하기 때문에 RWA를 낮춰야 CET1 비율이 높아진다. RWA는 은행 자산을 유형별로 나눠 위험 정도를 반영해 계산한 것으로, 위험이 높을 수록 높은 위험가중치를 적용한다. 주택이라는 담보가 있는 주택담보대출보다 개인 신용대출이나 기업대출이 더 위험도가 높다고 보고 위험가중치를 더 높게 부여하는 식이다. 결국 RWA 관리를 위해서는 위험이 높은 자산 확대를 통제해야 하는 만큼 기업대출 중에서도 중소기업 대출을 더 엄격히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는 기본적으로 업종별 대출 취급 기준이 다르게 운영된다”며 “개인 서비스업처럼 진입 장벽이 낮고 폐업률이 높은 경우 일반적인 제조업보다 대출이 까다롭고, 이미 빚이 많아 추가 한도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고객 예금 등으로 조달한 자금을 대출로 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신용 등급과 매출액이 어느 정도는 나와야 한다”며 “건전성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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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못 갚는 중기 증가, 2016년 이후 최대

실제로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격차는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기업 규모별 재무건전성 양극화가 심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대기업 대출 연체율이 지난 10년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진 반면, 중소기업 연체율은 2016년 이후 다시금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연체율 격차가 가파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79%로 작년 동월 대비 0.23%포인트 상승했다. 2년 전인 2022년 8월 0.30%와 비교해서는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상반기로 범위를 넓혀보면 신한은행 중소기업 신규연체 금액은 4,078억원 증가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국민은행은 4,008억원, 하나은행은 3,907억원 증가했다. 은행권 연체율 트렌드와 지난해 3분기 기저효과를 감안한다면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신규 연체 금액은 3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상당 폭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의 연체율 상승은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영난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외부감사 대상 법인기업 2만3,137개사를 대상으로 올 2분기 기업경영을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1년 새 5.0%에서 4.4%로 저하됐다. 아울러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1,15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0% 넘게 증가했다. 파산 신청 기업 중 대다수는 중소기업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연체액이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국내은행들이 부실채권액도 크게 늘고 있다. 5대 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3분기 말까지 상각하거나 매각한 기업대출 채권은 3조4,296억원에 이른다. 전년 동기(2조783억원)과 비교해 65% 증가한 규모다. 은행에서는 3개월 이상 연체 등에 대해 부실채권으로 별도 관리하다가 회수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다고 판단되면 상각하거나 자산유동화 전문회사(NPL) 등에 낮은 가격에 넘기는 매각을 진행하는데,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이뤄지는 이 작업이 올해 특히 활발했던 것이다.

은행들, 4분기도 억제 기조 유지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은행들의 보수적인 기조는 4분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4분기 대기업 대출에 대한 태도지수는 3분기 0에서 -3으로 강화됐다. 반면 4분기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태도지수는 전분기와 같은 3으로 유지됐다. 대출 태도지수는 금융회사의 여신 총괄책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산출하는 것으로, 지수가 양(+)이면 대출 태도를 완화할 것이라고 응답한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음(-)이면 강화하겠다는 대답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우리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전결권을 연말까지 중단해 영업을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전결권은 대출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개별 영업점 재량으로 우대금리 등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이다. 영업점을 대상으로 이윤을 축소해 가면서까지 중소기업 대출을 내주지 말라고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통상 시중은행이 타사의 대출 제도를 유사하게 시행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중소기업 대출 제한 움직임은 시중 은행 전반에 확산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건전성 관리 압박을 받는 은행이 과거보다 기업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진행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평가다. 다만 문제는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 전반에 보수적 입장을 취하면서 일시적 자금난만 견뎌내면 되는 우량 기업에까지 돈이 흐르지 않을 우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