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 ELS 사태 방지” 금투상품 판매 대수술, ‘은행 ELS 판매’ 여부 촉각
은행 영업점 고난도 상품 판매 제한
거점점포·별도창구 판매도 거론
"전면금지는 소비자 선택권 제한" 지적도
금융당국이 은행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공론화 테이블 위에 올렸다. 홍콩 H지수 ELS 대규모 손실 사태 등 관련 사고가 반복되자 판매 제도를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다만 학계와 급융업권 간 의견이 분분해 당국은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ELS 판매 채널 분리 검토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은행 영업점 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제한을 검토 중이다. 지난 5일 금융위는 ‘홍콩 H지수 기초 ELS 대책 마련을 위한 공개 세미나’를 열고 은행의 투자상품 판매 관행 개선안을 제시하며 공론화를 시작했다. 판매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제발표에서 은행의 ELS 등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를 개선하는 방안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은행의 고난도 상품 판매 전면 금지 △지역별 거점 점포에만 고난도 투자상품 판매 허용 △창구분리를 중심으로 불완전판매 방지 내부통제 강화 등이다. 형식상으로는 금융연구원이 발표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금융당국 의중이 담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첫 번째 방안은 상품 구조가 복잡하고 20% 이상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난도 상품의 은행 판매를 원천 금지하는 내용이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 이후에도 5대 글로벌 지수 연계 ELS 판매 등은 허용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면 금지가 불가피해졌다는 시각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지역별 거점 점포에서만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별도 건물에 있고, 일정 기간 이상 고난도 상품 판매 경력을 보유한 직원을 갖춘 거점 점포에서만 고난도 금융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일반 영업점의 고객 창구는 예·적금 전용과 비고난도 상품 판매용으로 분리한다. 마지막 별도 창구에서만 판매하는 방안은 상품 종류를 고난도, 비고난도, 예·적금으로 구분하고 판매 채널도 나누는 방식이다. 세 가지 방안 모두 은행이 본연의 사업인 여수신 업무에 집중하도록 지도하고 금융소비자는 별도의 장소에서 투자를 결정해 투자 자기책임을 명확히 짊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전면금지 vs. 부분허용 이견
다만 세미나에 참석한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순기능에 동의하면서도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전면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과 일부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해외에서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금지한 사례를 찾기 어렵고, 자본시장법 상으로도 겸영투자업을 허용한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책무구조도, 성과보상체계(KPI) 설계 보완을 통해 거점점포에 한해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두 위원도”관리 감독 능력을 확보하면서 거점점포 위주로 판매를 허용해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사후 제재로 제도를 준수하지 않은 회사에 선택적인 판매 금지를 하는 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인균 은행연합회 본부장 또한 “은행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은 소비자 선택권, 접근성에서 부작용이 있다”며 “고객이 손실 가능성을 오인하지 않도록 창구 분리 등 보완책을 마련하는 방안이 바람직하고 사전 교육을 이수한 자에게만 판매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안, 3안으로 가더라도 손실이 나면 불완전 판매 이슈가 계속된다”며 “상방 이익을 닫아 놓고 하방 위험은 열어놓은 ELS 상품은 은행이 아니라 증권사에서 팔면 된다”고 말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도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소비자 인식 차이가 있다”며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일단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매 전면금지 시 시장 위축 불가피
은행권도 시장 위축을 이유로 고난도 금융상품의 판매 전면 금지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은행들은 주로 증권사가 설계·발행한 ELS를 가져와 신탁(주가연계신탁·ELT)이나 펀드(주가연계펀드·ELF) 형태로 팔아왔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ELS는 ‘중위험·중수익’ 투자처로 주목 받으며 활황을 보였다. 하지만 고금리 등에 ELS의 장점이 줄어들고, ELS 원금 손실 우려가 커지면서 수요가 위축되자 발행 규모가 점차 감소했다.
특히 은행은 ELS의 판매의 80%를 차지할 만큼 주요 창구였던 만큼 시장 위축을 피할 수 없다. ELS를 못 팔게 된 은행들은 수수료 수익을 통한 비이자 이익 확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원금 보장형 상품들은 ELS보다 마진이 적고, 방카슈랑스(은행 판매 보험) 등의 판매도 만기가 길고 새 회계기준 등으로 보험사 판매 유인마저 떨어지는 구조라 대안으론 부족하다는 평가다.
증권사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ELS 상품은 발행사인 증권사가 은행의 요구를 받고 제작하는 비중이 높다. 증권사는 ELS를 발행해 모인 자금을 채권 등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ELS 가 증권사의 수익원이자 자금조달 수단인 것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증권사가 발행한 ELS 잔액 가운데 은행신탁에서 인수한 규모는 25조2,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체 ELS 잔액의 62.8% 수준으로 가장 높은 비중이다. 결국 주요 은행의 ELS 판매 중단 조치는 증권사의 ELS 관련 수익과 조달수단 다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증권사는 ELS 발행을 통해 헤지자산 운용수익과 판매·조기상환 관련 수수료수익 등을 얻을 수 있지만 주요 시중은행들이 판매를 중단하면 ELS를 통한 증권사들의 수익창출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