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5,000억원’ 유상증자 결정한 고려아연, 시장 비판에 여의도서 의견 청취
"주주 시점에서 생각하라" 고려아연 유상증자 우려하는 시장
금융감독원은 정정신고서 요구하고 나서
유상증자 강행 시 주주가치 훼손 우려돼
고려아연이 대형 증권사와 기관 투자자 등이 밀집해 있는 서울 여의도를 찾아 유상증자와 관련한 의견을 구하고 있다. 곳곳에서 고려아연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향후 유상증자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본격적인 현장 의견 청취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비판 직면한 고려아연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최근 여의도 내 증권사와 기관 투자자들을 잇달아 만나 유상증자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고려아연은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시가 대비 30% 할인된 가격에 신주 373만2,650주를 일반공모 방식으로 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전체 주식 수의 약 18%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고려아연 측은 이번 유상증자가 유통 물량 감소에 따른 급격한 주가 변동성을 해소하고, 주주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은 대규모 일반공모로 인한 주식 시장 충격, 증권신고서 내 허점 등을 문제로 지적하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여론이 악화하자 고려아연은 시장 관계자들로부터 구체적인 입장을 듣기 위해 여의도를 찾았다. 시장 관계자들은 고려아연 측에 시장 충격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주주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도 유상증자 제동 걸어
금융당국 역시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 6일 고려아연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일반공모 관련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받았다. 금감원은 제출된 증권신고서를 검토한 후 △증권신고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아니한 경우 △증권신고서 내 중요 사항에 관해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는 경우 △중요 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이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검토한 결과 유상증자 추진 경위 및 의사 결정 과정, 주관사의 기업 실사 경과, 청약 한도 제한 배경, 공개매수 신고서와의 차이점 등에 대한 기재가 미흡한 부분을 확인했다”며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을 위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도록 정정 요구를 통해 보완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금감원의 요구에 따라 3개월 이내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일에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가 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계획을 사전에 준비한 상태로 공개매수를 진행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상증자 계획이 있었다면 공개매수 정정신고 등 과정에서 해당 내용을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공개해야 하는데, 고려아연은 유상증자 결정 발표 전까지 관련 내용을 공시하지 않았다.
유상증자 강행 시 시장 타격은?
만약 고려아연이 금감원의 제지와 시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상증자를 강행할 경우, 시장에는 유의미한 타격이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30일 고려아연이 제시한 유상증자 공모가는 67만원 수준이다. 이는 이달 22~24일 거래량과 거래 대금에 따른 기준 주가 95만6,116원에 30% 할인율을 적용한 가격으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지난 9월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개시했던 당시 처음 제시한 가격(66만원)과 유사한 수준이다.
문제는 차후 대규모 유상증자로 인해 주가가 하락할 경우 최종 공모가가 67만원 이하로 미끄러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종 공모가는 청약일 전 과거 3~5거래일까지의 가중산술평균주가에 할인율 30%를 적용해 산정된다. 만약 고려아연의 주가가 70만원 밑으로 떨어질 경우, 공모가는 50만원을 하회하게 된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 중 2조3,000억원이 차입금 상환에 투입된다는 점도 주주들의 우려를 가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주주들은 고려아연이 시가보다 비싸게 주식을 매입하고, 이를 시가보다 싸게 팔아 빚을 갚는다는 점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주주 이익을 무시하고 ‘최윤범 회장 구하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