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도 결국 ‘원격근무’ 폐지, 사무실로 돌아가는 전세계 근로자들
원격근무 체제·격주 4일 근무제 종료… 지난 10월 ‘먹통 사태’ 영향 컸다 국내 게임업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까지, ‘사무실 출근’ 지시하는 기업들 기업-근로자 이해관계 충돌하며 곳곳에서 갈등 발생, “재택근무 제도적 기반 부족해”
카카오의 ‘원격근무(재택근무)’ 체제가 약 9개월 만에 종료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이날 2023년 근무제 기준에 관련된 내용을 임직원들에게 공지했다. 내년 3월 1일부터 전면 사무실 출근 제도인 ‘오피스 퍼스트’ 기반 근무제를 공식화하고, 1월 1일부터 ‘격주놀금제’를 중단하는 것이 골자다.
오피스 퍼스트 근무제가 시행되면 카카오 임직원은 원칙적으로 회사가 지정하는 오피스 내에서 근무해야 한다. 단, 성과 창출과 업무 수행에 있어서 원격 근무가 오피스 근무보다 더 효율적이거나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에는 최소 단위 조직장의 판단·승인을 통해 원격근무를 할 수 있다. 카카오는 이같은 유연한 원격근무 허용을 위해 1~2월 중 최소 단위 조직장의 주도로 ▲오피스 근무일 ▲오피스-자율 근무일 비율 ▲근무 규범 등에 대해 조직별로 최적화된 ‘그라운드 룰’을 세팅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7월부터 실시된 ‘격주놀금제’도 반년 만에 막을 내린다. 업계에서는 최근 발생한 놀금에도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필수 인력(엔지니어 등)과 그렇지 않은 인력의 직종 간 형평성 문제가 폐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놀금의 경우 공식적인 휴일이 아닌 임직원 복지 차원의 개념인 만큼, 불가피하게 근무를 진행한다도 하더라도 별도의 수당 등이 지급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는 격주놀금제를 중단하는 대신,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휴무인 ‘리커버리데이’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새로운 리커버리데이는 오는 1월 27일부터 시작된다.
카카오는 지난 7월부터 ‘상시 재택근무제’를 도입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이 완화된 이후,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재택근무제를 완전히 정착시킨 것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카카오와 네이버 등 선도 기업들이 재택근무제를 공식 근무 제도로 채택하며 ‘직장 출근’ 개념을 해체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인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대규모 먹통 사고 등 현장 인력이 요구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전면 사무실 출근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사무실 출근’ 유지하는 게임업계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6월부터 100% 사무실 출근을 이어온 게임업계는 내년에도 전사 출근 방침을 이어갈 예정이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사내 공지를 통해 “6개월간 검토한 결과, 대면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현 상황에 보다 필요하다”라는 뜻을 밝혔다. 올해 출시 예정작이었던 ‘TL'(쓰론앤리버티)의 출시가 내년으로 연기된 이후 신작이 전무했던 만큼, 게임 개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밀도 높은 협업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도 최근 사내 타운홀미팅에서 “당사 사정엔 출근 근무가 적합하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하이브리드 근무제(원격+사무실 근무)를 채택한 게임사도 있다. 크래프톤은 ‘3일 출근+2일 재택’을 권장하되, 팀장 재량으로 근무 제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NHN도 사무실 출근을 기본으로 하되, 금요일은 원하는 곳에서 근무할 수 있는 ‘마이 오피스’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게임업계의 원격근무 폐지 기조와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기기나 보안 등의 이유로 집에서 100% 작업이 불가능한 업무도 많다”라며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이 완화될 정도로 코로나19 유행도 안정화된 만큼, 비효율적인 재택근무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근로자의 이해 상충, 과도기에 놓인 재택근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불가피하게 시행된 재택근무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직장인들의 인식을 바꿨다. EY컨설팅이 22개국 1,500개 기업 임직원 1만 7,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원들의 80% 이상이 최소 주2일 이상 재택근무를 하는 ‘하이브리드 근무형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직장인의 64%는 새로운 업무 방식 도입이 생산성을 증대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은 달랐다. 기업 측에서는 재택근무로 인해 생산성이 되려 떨어졌다고 응답한 이의 비율이 41%에 달했다. 실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메일을 통해 “테슬라 전 직원들은 최소 40시간을 사무실에서 근무해야 한다”라며 “만약 출근하지 않는다면 그만둔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히며 재택근무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사무실 출근을 선호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기간 동안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해왔으며, 최근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을 비롯한 일부 기업들이 점차 직원들에게 사무실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알파벳은 지난달 초 직원들에게 최소 주 3일 사무실 근무를 요구한 바 있으나, 많은 직원에게 여전히 재택근무를 승인하고 있다. 파라그 아그라왈 트위터 CEO도 지난 3월 사무실 근무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직원이 원하면 재택근무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강경하게 사무실 출근을 지시하지 못하는 것은 인재 이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재택근무와 같은 유연한 근무 제도는 인재를 끌어올 핵심 유인책이다. 갑작스럽게 방침을 변경할 경우 인재가 줄줄이 이탈할 위험이 존재하는 셈이다. 실제로 애플이 4월 초 사무실 근무를 2회, 3회로 늘려가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스타 개발자인 이안 굿펠로우가 구글로 이직한 바 있다. 이후 애플의 타 직원들도 해당 방침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회사를 떠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처럼 재택근무는 직원과 기업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인한 일종의 과도기에 있다.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도입된 제도인 만큼,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폐지와 유지, 구체적 시행 방법을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준비 없이 도입된 재택근무, “부작용 심해”
미국의 다국적 기술 및 컨설팅 기업인 IBM은 20년 이상 시행했던 재택근무 제도를 2017년 폐지한 바 있다. 당시 IBM은 비용 대비 업무 효율에 대한 의문뿐만 아니라, 재택근무로 인해 발생하는 근무자들의 소외감 및 단절감을 폐지 이유로 들었다. 앞서 검색 서비스 업체 야후도 2013년 재택근무를 폐지했으며,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애트나도 재택 근무자들에게 사무실 출근을 지시했다. 레딧과 베스트바이 등 인터넷 기반 업체들도 점차 재택근무 비중을 줄여가는 추세다. 팬데믹 이전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확립하고 재택근무를 도입했던 기업들도 결국 한계를 절감하고 방향을 튼 것이다.
유럽은 상대적으로 재택근무의 제도적 준비에서 한국보다 앞서고 있다. 스페인은 ‘자동화 장비를 통한 업무 관리는 근로자의 사생활 및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수행 가능하다’는 내용 등을 담은 ‘원격근로에 관한 긴급 입법’을 마련했다. 독일은 원격근무에 관한 기존 법률을 개정했다. 어느 정도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은 재택근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ILO가 원격근무의 영향에 대해 유럽연합(EU) 10개 회원국 외 아르헨티나·브라질·인도·일본·미국 등 총 15개국에서 수집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무실 밖 근무로 인해 업무 시간과 업무 강도가 늘고, 업무와 사생활의 혼재가 일어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벨기에는 재택근무 근로자의 주당 근무 시간이 44.5시간으로 사무실 근로자(42.6시간)보다 1.9시간 많았다. 주말 근무도 증가했다. 네덜란드 재택근무자의 절반(50%)이 일요일에 일을 했는데 이는 일반 근로자의 38%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같은 문제가 한층 심각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에서 재택근무 제도를 운용한 사업체는 9.7%에 그쳤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쳐온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대다수 기업에 갑작스럽게 재택근무 제도가 도입되었다.
재택근무가 일반적인 근로 형태가 아니었던 만큼, 우리나라는 특히 재택근무나 원격근로에 대한 법률 규정이 미흡했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200쪽 분량의 『재택근로 종합 매뉴얼』이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제도적·사회적 준비 없이 찾아온 재택근무 제도는 큰 혼란을 빚었고, 업무 효율을 저해하며 육체적·정신적 건강 문제를 낳았다.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도입된 제도인 만큼, 팬데믹이 지나간 이후에도 재택근무와 관련한 업계의 고충은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