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대규모 실탄 장전하는 카카오엔터, 글로벌 도약 야심 통할까?
카카오엔터 “1조원 투자 유치로 콘텐츠 강화, 글로벌 시장 나설 것” 최근 오리지널 ‘소녀 리버스’ 향한 엇갈린 평가 글로벌 도약 첫 걸음, 국내 소비자 만족이 우선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글로벌 진출에 야심을 드러냈다. 약 1조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해 콘텐츠를 강화한다는 포부를 드러낸 가운데, 카카오엔터의 오리지널 콘텐츠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에 약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해외 투자금뿐 아니라 국내 사모펀드 H&Q코리아 역시 최대 2,0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져 카카오엔터의 콘텐츠 사업에 날개가 돋을 예정이다.
2021년 3월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출범한 카카오엔터는 웹툰 및 웹소설 유통부터 콘텐츠 제작, 음반·음원 유통, 연예 매니지먼트 등을 아우르는 종합 미디어 그룹을 자처해 왔다. 카카오엔터의 이번 대규모 투자금 유치는 미디어, 뮤직, 스토리로 나뉘는 사업 부문 중 드라마, 영화, 예능 등의 제작 및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미디어 부문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카카오엔터는 출범과 동시에 공격적인 M&A로 몸집을 불려 왔다. 영상 스트리밍 기술 업체 아이앤아이소프트, 광고 제작사 돌고래유괴단, 영화 제작사 영화사집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강화한 것. 동시에 적극적인 업무 협약으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렸다. SK브로드밴드와의 제휴를 통해 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를 B tv에서 시청할 수 있게 했고, 지난해 10월에는 OTT 웨이브와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웨이브에 카카오 TV 전용 프로그램관을 개설했다.
가장 최근 선보인 오리지널 콘텐츠는 카카오엔터가 기획과 제작을 모두 담당한 <소녀 리버스(RE:VERSE)>다. 실제 K-팝 걸그룹 멤버 30명이 가상의 세계에 등장해 5인조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할 기회를 잡기 위해 경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경쟁에 참여한 ‘소녀V’들은 물론, 방청객 역시 버추얼 캐릭터로 변신해 무대 안팎을 채우며 눈길을 끌었다. 특히 공개 전부터 30인의 참가자 실체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며 각 아티스트 팬들의 이목이 쏠렸다.
‘반짝 화제’ <소녀 리버스>, 절반의 성공
다만 기술력에 대해서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앞서 선보였던 메타버스 콘텐츠 TV조선 <아바드림>, MBN <아바타 싱어> 등이 3D 캐릭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과 달리, <소녀 리버스>는 기존 가상 환경 프로그램을 토대로 2D 기반 캐릭터를 내세워 “기술의 퇴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 다만 “만화나 웹툰 등으로 익숙한 화면이라 오히려 거부감이 덜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웹툰-웹소설 대표 플랫폼답게 2D 팬들에게 영상 콘텐츠로 다가서겠다는 카카오엔터의 전략은 일부만 성공을 거둔 셈이다.
현재 <소녀 리버스>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3화까지의 에피소드가 공개되어 있다.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에피소드는 1화로, 약 51만 명이 시청했다. 이후 44만 회(2화), 43만 회(3화)로 꾸준히 하락했다. 기존에 선보였던 메타버스 예능과 비교하면 초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열기를 이어가지는 못한 모양새다. ‘새로운 것’에 집착하느라 폭넓은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영상 콘텐츠의 최우선 과제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최근 카카오엔터는 카카오페이지의 웹툰과 웹소설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상화 작업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이는 국내 대형 OTT 플랫폼들과 상반된 행보다. 티빙의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 시리즈, 지난해 웨이브 최대 화제작 <약한영웅 Class1> 등은 모두 기존 인기작의 IP를 활용해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이들 기업은 이미 검증된 이야기를 사 오는 대신 제작과 홍보, 유통 등 ‘잘하는 것’에 집중했기에 좋은 성과를 거뒀다.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자랑하는 카카오페이지지만, IP 확보에 급급해 시야를 좁은 곳에 가둬두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몸집에도 여전히 ‘대표 오리지널 콘텐츠’는 부재
카카오라는 거대한 모회사를 등에 업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다양한 사업을 한데 모은 후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몸집을 불린 카카오엔터지만, 여전히 오리지널 콘텐츠의 힘은 미비하다. 올해 선보이는 <도적: 칼의 소리>, <경성크리처>, <최악의 악>, <승부>, <야행> 등은 영화 <야행>을 제외하면 모두 글로벌 OTT 넷플릭스와 디즈니+를 통해 공개되는 작품들로, 카카오엔터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거나 회사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야행>은 극장과 카카오TV를 통해 동시 상영될 예정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집약된 시장으로 꼽힌다. 공감 능력은 뛰어나지만, ‘빨리빨리의 민족’ 답게 재미없는 이야기에는 가차 없이 등을 돌린다. OTT의 영향력 확대에 지상파 TV의 생존까지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시청자들은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 1~2달에 한 번씩 OTT 플랫폼을 바꾸며 더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요구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대형 미디어 그룹은 “한국에서 통하면 전 세계에서 통한다”고 입을 모은다.
카카오엔터가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첫걸음은 이미 형성된 스타들의 팬덤이나 신기술, 해외 기업에 의존하거나 자사의 이야기에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보다 대중적인 이야기로 국내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