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전 총리 “벤처·스타트업 육성 정책 핵심은 규제 혁신”, 말로만 ‘규제 개혁’ 외치는 韓 정부와는 대조적
‘스타트업 코리아 & 스타트업 네이션 이스라엘’ 간담회 베네트 전 총리, ‘규제 완화·글로벌화··여성 리더 육성’ 등 조언 한편 “국내에서도 정부가 실질적인 규제 완화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프탈리 베네트 전(前) 이스라엘 총리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벤처·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이영 중기부 장관도 이날 간담회에서 이스라엘 정부와 벤처·스타트업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규제 개혁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벤트성 발언에 그치는 대신 실질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성장 동력, ‘비규제’가 핵심
이영 중기부 장관은 19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와 ‘스타트업 코리아 & 스타트업 이스라엘’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자유로운 담화를 진행할 수 있는 ‘파이어 사이드 챗’이라는 담화형식을 채택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베네트 총리는 스타트업 사이오타(Cyota) 창업자 겸 CEO 출신으로, 사업을 이어가다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국방부 장관, 교육부 장관, 경제부 장관뿐 아니라 이스라엘 총리까지 역임한 그와 비슷하게 이 장관과도 비슷한 행보를 이어왔다. 이 장관은 지난 2000년 보안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테르텐’을 창업한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중기부 장관을 맡으며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한국과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와 벤처투자 환경을 소개하고 양국 간 벤처‧스타트업 육성과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특히 양국의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 소개, 세계 경제 위기에 따른 스타트업 생태계 현황 진단과 극복 방법, 딥테크 스타트업 육성, VC 투자 확대 등 양국의 스타트업 육성과 협력 방안 등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특히 베네트 전 총리는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환경 조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을 규제하기보다는 펀드 조성 등을 지원해 기업이 알아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스라엘이 벤처·스타트업 강국이 된 것은 규제를 허물고 기업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도록 한 데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정부가 나설 순 있지만, 기본적으론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로 스타트업 생태계 변혁 이끈 이스라엘 정부
내수 시장이 작은 이스라엘은 벤처 기업 대다수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창업을 시작한다. 정부는 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규제나 노동정책에 있어 유연하게 접근해 왔다. 베네트 전 총리의 말을 빌리자면 사실상 이스라엘 정부는 거의 ‘규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규제에 관해서 자유로운 편이다.
일례로 최근 이스라엘 정부는 수입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수입시장의 큰 변혁을 끌어냈다. 지난해 6월에는 표준개혁 조치가 발효에 들어가면서 이스라엘 국가표준 인증을 취득하지 않고도 국제표준에 근거해 수입할 수 있는 통로가 신설됐다. 이에 더해 물품검사 대상 제품 목록을 대폭 축소하고 수입자의 선언 위주의 간소화된 통관 대상 목록이 확대되면서 이스라엘 수입 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이 밖에도 2020년 하반기부터 금융시장 개방과 오픈뱅킹, 규제샌드박스 등의 규제 개혁에 따라 핀테크 서비스 상용화를 이끌었다. 이에 따라 해외 시장에서 활약 중인 이스라엘 토종 핀테크 기업들이 국내 시장 선점에 나서는 등 금융 업계 전반에 변화가 일었다. 까다로운 규제로 가득했던 이스라엘 금융시장의 특수성과 보수성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변혁이 일어난 셈이다.
허울만 좋은 규제 개혁 제도들, 실효성 떨어지는 정책 되풀이는 곤란
우리 정부도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첨단 산업의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사실 한국 벤처 스타트업 정책에는 이스라엘을 벤치마킹한 사례가 많다. 정부가 출자하는 벤처 투자펀드인 모태펀드는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를 참고했으며, 국내 기술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팁스'(TIPS)도 이스라엘의 관련 정책을 벤치마킹했다. 이 밖에도 중기부는 모빌리티, ICT 등 첨단 산업 내 규제 샌드박스 등의 제도를 도입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부 정책의 경우 제도의 허점으로 혁신은커녕 곤혹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분야가 자율주행이다. 2019년 자율주행 관련 규제특례가 도입됐지만, 제도 도입 이후 특례를 받은 기업이 40개 사 안팎에 불과하다. 업계에선 규제특례가 사실상 기술 실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호소도 나온다. 제도의 복잡한 부가 조건으로 인해 실제 서비스 적용 여부를 확인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2019년 도입된 규제자유특구 역시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면 신기술에 대한 실증특례나 임시 허가, 규제에 대한 30일 이내 확인, 각종 세제 혜택 등 다양한 특례를 누릴 수 있다. 다만 규제자유특구 내에 사무소가 있는 기업만 특례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자유특구 대다수가 비수도권에 자리 잡은 반면, 혁신 스타트업의 거점은 대부분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 있어 사실상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 기업이 한정적인 상황이다.
이영 장관은 이날 ‘납품대금 연동제, 규제혁신 특구, 초격차 스타트업1000+’ 등의 사례를 들며 정부의 규제 타파 및 연구개발(R&D) 지원 관련 노력에 대해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그러나 정작 내놓은 규제 완화책 대부분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폭력에 가깝다 느낄 정도로 규제 개혁에 힘쓰겠다”는 그의 말이 더 이상 공허하게 들리지 않기 위해선 그간의 정책을 점검하고 현실화하는 제도적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