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는 파란불, 투자자 마음은 천불’, 돌아온 트럼프에 전기차·이차전지 업계 비상
美 친환경 정책 후퇴 전망
IRA 폐지 가능성 ‘매우 낮음’
테슬라, 전기차 1위 굳히기 시동
지난해 우리 증시를 지탱했던 이차전지 관련주들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다. 전기차 수요 성장세가 둔화하며 주춤하던 주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확정하며 본격 하락세에 접어든 것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친환경 정책이 후퇴할 경우 테슬라를 제외한 모든 전기차 및 이차전지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트럼프, 화석연료·내연기관 자동차에 우호적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전 9시 50분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는 37만9,000원으로 전일(39만500원) 대비 2.94% 하락했다. 같은 시간 삼성SDI(-3.85%)와 LG화학(-3.44%) 등 여타 이차전지 업체들의 주가도 큰 하락폭을 보였다. 특히 삼성SDI의 주가는 장 초반 28만6,000원까지 밀리면서 연저점을 찍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의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한 모양새다.
그간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경계해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기간 내내 “전기차 의무(mandate)를 폐지하고 거추장스러운 규제를 축소하겠다”는 공약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현 바이든 행정부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차량의 판매량을 2030년 5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전기차 구매자에게 보조금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왔다.
가장 큰 우려를 낳는 부분은 기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폐지 가능성이다. 화석연료와 내연기관 자동차에 우호적 입장을 견지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기간 IRA에 따라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와 미국 내 배터리 생산·판매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 내 시장 위축으로 인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심화하고, 현재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배터리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나아가 미국 현지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여러 곳 짓고 있다는 점도 우리 기업들에는 부담이다. 박종일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첨단 생산 시설 유치를 위해 보조금을 전면 폐지하는 대신 수혜 조건을 지금보다 까다롭게 할 경우에도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은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시화한 IRA 성과, 폐지는 ‘무리수’
다만 시장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IRA를 완전 폐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층 상당수가 IRA의 지속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전문 매체 일렉트렉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뽑은 유권자 중 78%가 IRA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한 4년 동안 IRA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기업들이 각 주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이를 통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망이 강화됐다는 점이 여론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연간 17만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확인되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무시한 채 법 폐지를 강행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도 무리일 것이란 평가다.
IRA 폐지를 위한 논의 단계에서 의회의 반대에 부딪힐 공산도 크다. 현재 미국은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를 장악한 상태지만, 공화당 내에서도 일부 의원은 IRA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공화당 내에서는 하원의원 18명과 의장이 IRA 폐지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며 “폐지가 어려울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IRA 보조금 및 세액공제 혜택 조건을 까다롭게 변경하는 등 예산을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승리 1등 공신 일론 머스크, 트럼프 정부와 동행 예상
이런 가운데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은 테슬라로 모이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규모와 범위를 자랑하는 테슬라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 없는 환경에서 훨씬 명확한 경쟁 우위를 누릴 수 있을 것이란 예측에서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의 관세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며 비야디(BYD), 니오 등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전기차들의 미국 시장 진출 또한 제한될 전망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는 점도 테슬라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요소다. 머스크 CEO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슈퍼팩(super PAC·정치자금 모금 단체) ‘아메리카 팩’을 직접 설립해 운영했으며, 공화당 상·하원의원 후보 지원을 포함해 최소 1억3,200만 달러(약 1천840억원)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자자들은 머스크가 트럼프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 온 만큼 향후 트럼프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전까지 걸림돌이 돼온 규제 완화에 앞장설 것으로 기대했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의 승리는 테슬라와 머스크에게 가장 큰 호재”라고 단언하며 “(규제 완화를 통한) 자율주행 패스트트랙이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