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와 협의가 우선” 법원, 한국피자헛 기업회생 결정 보류
자율적 변제 방안 협의 기간 1개월 부여
부당 이득 소송 패소에 210억원 빚더미
ARS 합의 불발 시엔 회생 절차 돌입
회생 위기에 놓였던 한국피자헛이 기사회생했다. 한국피자헛이 신청한 자율구조조정 프로그램(ARS)을 법원이 승인하면서다. 채권자들과의 협의에 나선 한국피자헛이 난관을 딛고 국내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210억원 반환 채무 관련 합의점 도출 관건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회생12부(부장판사 오병희)는 11일 한국피자헛이 신청한 ARS 프로그램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ARS 프로그램이란 회사가 채권자들과 함께 자율적으로 변제 방안을 협의하는 제도로, 법원은 양측의 자율적인 협의를 위해 오는 12월 11일까지 한 달의 시간을 부여했다. 이 기간 한국피자헛의 회생절차 진행은 보류된다. 보류 기간은 1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지만, 전체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최장 3개월을 넘지 못한다. 주어진 기간 내 채권자와의 합의에 성공하면 한국피자헛은 법원이 강제하는 회생절차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국피자헛이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및 ARS를 신청한 것은 지난달 가맹점주 94명이 본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2심에서 패소한 직후의 일로, 채권자인 가맹계약자들과 소송 결과에 따른 강제 집행 문제를 원만히 합의하기 위함이다. 한국피자헛은 최근 가맹점주 94명이 본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2심에서 패소했다. 가맹점주들은 지난 2020년 한국피자헛이 가맹점 동의 없이 원·부재료 가격에 차액을 붙여 납품하는 방식으로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가맹점주들이 한국피자헛 측과 체결한 가맹계약에 이같은 내용을 담은 명시적 조항이 없고, 원·부재료 공급가에 차액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점주들이 알 수 없었다는 점을 인정해 본사가 75억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2심에서는 한국피자헛이 반환해야 할 금액이 210억원으로 불어났다.
한국피자헛 측은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자금난은 피하지 못했다. 일부 점주의 가맹본부 계좌 압류 등 조치로 운영상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결국 한국피자헛은 이달 4일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에 법원은 한국피자헛에 대한 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보전처분이란 신청 회사가 자산을 처분해 특정 채권자에게만 변제하지 못하게 하는 조처다. 또 포괄적 금지명령은 채권자들이 기업회생 개시 전 강제집행이나 가압류 등으로 회사의 주요 자산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채권을 동결하는 처분이다.
법적 구조조정 속에서 구현되는 사적 구조조정, ARS
기업의 구조조정은 법적 구조조정과 사적 구조조정으로 구분된다. 법적 구조조정에서는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른 회생절차가 주로 활용되며, 사적 구조조정에서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의 공동관리절차가 주로 활용된다. 문제는 도산위기에 처한 부실징후기업 입장에서는 두 가지 선택지 중 결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사적 구조조정 절차로부터 법적 구조조정 절차로의 이행을 신속하게 진행하는 방안인 P-Plan회생절차와 사적 구조조정 절차를 법적 구조조정 절차 속에서 구현하는 ARS 프로그램은 이같은 배경에서 도입됐다.
먼저 P-Plan 회생절차는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23조에 규정된 사전계획안 제출제도를 활용한 제도다. 기업의 회생절차개시 이전에 신규투자 또는 지분 또는 자산매각을 통한 채무변제의 가능성이 있을 때 채권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사전계획안을 준비하고, 이를 회생절차신청서와 동시 제출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P-Plan은 회생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기업의 빠른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특징을 지닌다.
ARS 프로그램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의 관리절차 등 자율적으로 사적 구조조정절차를 진행하는 채권자 또는 채무자가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경우 활용되는 방안이다. 구체적으로는 회생법원이 회생절차협의회를 구성한 후 회생절차에서의 보전처분과 포괄적금지명령, 개시 전 조사 등 다양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ARS는 이해관계인들의 의사에 따라 회생절차를 진행하되, 일정 기간 회생절차의 개시결정을 유보한 채 채권자와 채무자가 그 시기에 자율적으로 사적 구조조정절차를 진행해서 성공하는 경우 회생절차를 개시하지 않고 종료한다. 다만 이같은 절차로 성공할 수 없는 경우에는 즉시 개시결정을 통해 회생절차가 진행된다.
티몬·위메프, ARS 거쳤지만 결국 ‘합의 불발’
ARS 프로그램을 택한 대표적 사례로는 지난 7월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를 초래한 티몬과 위메프를 꼽을 수 있다. 큐텐 계열사인 이들 회사는 2023년 10월 정산 주기를 변경한 이후 10개월간 판매자 대금을 지급 및 정산하지 않아 시장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초창기 판매자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던 미정산 이슈는 7월 22일 티몬이 대금 정산 무기한 지연을 선언하며 일반에도 알려졌고, 이후 위메프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티몬과 위메프는 7월 29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법원은 각 회사의 대표자 심문을 진행한 뒤 ARS에 돌입했고, 채권자들과의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9월 10일 회생절차를 개시했다. 이후 일정은 숨 가쁘게 진행됐다. 10월 하순 채권신고 종료 이후 관리인은 채권조사 절차를 밟아왔다. 현재는 회생계획 인가 전 매각이 추진되는 단계로, 인수 후보자 등판 여부에 따라 다음 행보가 구체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