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엔화 가치, 1990년 무렵 거품경제 붕괴 직전 수준까지 떨어질 것”
골드만삭스 “달러 대비 엔화 가치, 달러당 155엔까지 갈 수도” BOJ, 물가·성장 끌어올리기 위해선 ‘완화적 통화정책’ 고수해야 금융완화정책 추진에도 경제성장 효과↓, 엔저 현상 이어질 가능성↑
월가에서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150엔을 넘어설 거란 전망이 나왔다. 일본은행(BOJ)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할 경우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30여 년 전 수준까지 떨어질 거란 주장이다. 아울러 미국 중앙은행이 추가 긴축 가능성을 재차 열어두면서 양국의 금리차 확대로 인한 엔화 가치 하락이 가속될 거란 주장도 나온다.
연중 최저치 경신한 엔·달러 환율
골드만삭스 전략팀은 지난 25일(현지 시간) 보고서를 통해 향후 6개월간 달러·엔 환율이 155엔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예상치 135엔에서 대폭 수정한 결과로, 전망이 맞을 경우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1990년 6월 이후 약 3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게 된다.
부정적인 전망의 배경에는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에 있다. 골드만삭스는 “금리 인상과는 동떨어진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이 계속 유지되고, 주식시장도 적당히 유지되는 한, 엔화는 계속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다만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통화가치 하락이 불거짐에 따라 일본은행이 환율에 개입하거나 예상보다 빠르게 통화 긴축에 나서는 등 대응한다면 엔화 약세가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엔화 가치는 올해 10% 넘게 하락하면서 주요 10개국 가운데 최악의 가치 하락을 겪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28일 뉴욕 외환시장에서도 달러당 146.52엔으로 장을 마치며 연중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강경한 긴축 기조를 이어온 가운데 일본은행만이 반대로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고수한 결과라는 게 월가의 설명이다.
일본은행이 나 홀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이유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은행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이유는 정책 목표가 물가 상승에 초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중앙은행이 상승률을 2%로 낮추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는 것과 달리, 일본은 2%까지 물가를 높이는 것에 정책 목표를 두고 있다.
일본은행이 물가를 끌어올리려는 배경에는 심각한 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가 있다. 일본 기업은 여전히 흑자를 내고 있지만 장기 성장 가능성이 불투명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물가는 계속 하락하며 디플레이션 늪에 빠지게 됐고, 가계는 임금 정체와 고령화 등의 문제로 소비 여력을 갖추지 못하게 됐다.
결국 일본은행이 물가를 끌어올리려는 이유는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미와 같다. 이를 위해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등 저금리 기조는 물론 국채와 위험자산 매입 확대 및 금리조절 등 다양한 완화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하고 있지만, 이 같은 돈 풀기가 자국 내 통화 가치의 심각한 절하를 이끌었다. 시중의 공급된 엔화의 늘어난 만큼 전체 엔화의 가치는 주요국 통화 대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엔저 현상’ 언제까지 계속될까
앞으로도 엔저 현상은 계속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정책 추진에도 물가 상승과 경제성장의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지표 등 물가 지표 전반은 그간 일본은행이 의도한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투자 역시 금융완화정책 추진 기간 동안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 실적이 크게 증가했지만, 정작 일본 내 투자 증대에선 여전히 소극적인 상황이다. 또 임금 인상률이 연평균 1%를 하회하는 등 고용시장에서의 실질적인 개선 효과 역시 크지 않았다.
더욱이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26일(현지 시간) 잭슨홀 미팅에서 “일본의 기조적 물가 상승률이 아직 목표치인 2%보다 낮다”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당분간 엔화의 통화가치 하락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미국과의 금리차를 고려할 때 엔화 약세가 더욱 가속될 거란 분석도 나온다. 국내 K대학 경제학부 관계자는 “현재 미국 중앙은행(Fed)은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추가 긴축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라면서 “만약 미국이 추가 긴축에 나선다면 일본은행의 환율 개입 이슈와는 별개로 미국과 일본 금리차 확대에 따라 엔화 매도세가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정책의 장기화로 인해 실물 경제 및 재정·금융 부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달 10일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정책 10년의 평가와 향후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은행의 수익률 곡선 제어정책은 국채 수익률을 왜곡시키는 한편, 국채의 이자 비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하면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초래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방대한 국채·ETF 매입으로 일본은행의 자산이 급격하게 팽창함에 따라 향후 출구전략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