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공매도와의 전쟁’ 선포한 금융당국, 정작 형사처벌은 ‘0건’?
칼 갈고 나선 금융당국, 공매도 금지 조치 정당성 피력 브레이크 걸린 불법 공매도 축출, 근본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 "공매도 금지는 사전 작업, 안일한 태도 고쳐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다시 한번 공매도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장이 반기자 더욱 자신감을 얻은 모습이다. 이 원장은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배제한 시장 조치”라며 “국내 주식시장의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선 “결국 불법 공매도 사태의 근본 원인은 금융당국의 안일한 태도인데, 당국은 이를 지나치게 무시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불법 공매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멈추고 제대로 된 형사처벌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 “공매도 금지는 불가피한 결정”
이 원장은 6일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열린 회계법인 CEO 간담회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 대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법 공매도는 상상 이상으로 만연한 현상”이라며 “작년부터 조사·검사를 통해 공매도를 본 결과 단순히 깨진 유리가 많은 도로 골목이 아니라 유리가 다 깨진 불법이 보편화된 장이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상 공매도가 적정가격을 발견하는 수단이 아니라 적정가격 형성에 장애를 줄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어 “법적으로 증시 안정이나 정상가격 형성에 저해를 초래하는 이유가 있을 때는 공매도 금지할 수 있다”며 “이미 확인된 불법 공매도 대상만 보더라도 코스피와 코스닥에 걸쳐 100여 개 종목이 무차입 공매도의 대상이 됐다”고 역설했다. 공매도 전면 금지가 법적으로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거듭 피력한 것이다.
‘공매도 금지 조치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이번 조치는 엄연한 시장 조치”라며 “수개월 동안 점검한 뒤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언론에 공표도 일부하고 정부 내부적으로 공유한 바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개인 투자자들의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니 많은 투자자들이 달러를 들고 미국시장으로 떠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우리 주식시장이 향후 뉴욕·런던보다 매력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개인 투자자에게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떠날 것이라고들 하는데, 외국인 투자자들도 견해가 다른 것 같다”면서 “외국인들도 결국 배당수익 아니면 매매차익을 얻어야 하는데 한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가가 원활하지 못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당국의 ‘안일함’에, 불법 공매도 ‘횡행’
앞서 금융당국은 불법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외국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불법 공매도는 여전히 축출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원장이 이번에 공매도 금지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실제 공매도 위반은 지난 2020년 4건에서 2021년 14건, 2022년 28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도 8월까지 누적 위반자 수가 27명이었는데, 이 중 3분의 2 이상인 19명이 외국인이었다. 현재 국내 법규에서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수준은 꽤나 높은 수준이다. 또 위반자 내역이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등 적발 시 재정적 부담과 평판 리스크도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불법 공매도의 불씨가 제대로 꺼지지 않는 건 불법 공매도에 대한 형사처벌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인 2010년부터 올해 8월까지 불법 공매도 위반은 총 174건으로 집계됐다. 이에 금융당국은 총 174건 중 △주의 56건 △과태료 92건 △과징금 26건을 처분했다. 과태료는 총 103억원으로 평균 1건당 1억4,800만원 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법 개정으로 올해부턴 과징금 처분도 가능해졌는데, 불법 공매도에 부과된 과징금은 총 90억원으로 1건당 평균 3억4,000만원 꼴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불법 공매도에 대한 형사처벌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다른 말이 아니라 정말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에 불법 공매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도마 위에 올랐다. 황 의원은 “불법 공매도 문제가 매년 벌어지고 있음에도 투자자 보호를 위한 프로세스 개선이 미비한 상황”이라며 금융당국이 불법 공매도에 대해 상당 건의 주의 조치만 취하거나 적발 금액에 비해 낮은 과태료 처분만 취해 사실상 불법 공매도를 방조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공매도뿐 아니라 주가조작 등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를 엄벌해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주식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국회와 금융당국이 총력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강화에도 불구하고 불법 공매도가 반복되면서 공매도 전면 재개 논의에 연거푸 찬물이 뿌려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일각에서 처벌 강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으나, 앞서 언급했다시피 국내 법규상 처벌 수준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금융당국의 안일한 태도다. 이 원장은 불법 공매도가 횡행한 사회를 규탄하며 공매도 금지 조치의 정당성을 시사했다. 이는 시장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지속된다면 공매도 금지 조치는 단순한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공매도 금지 조치는 어디까지나 국내 금융시장 내 ‘악의 축’을 뿌리 뽑기 위한 사전 작업 단계로,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국내 주식시장이 글로벌 시장의 꽁무니라도 쫓아가기 위해선 불법 공매도를 발본색원하고 나아가 제도 개선을 이뤄내겠단 금융당국의 진정성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