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조한 성장률’ 선진국, 당분간 인플레 우려에 정책 금리 고정 전망
미국·영국 경제 성장세 유지, 완만한 둔화 예측 장기채 금리 상승 탓에 추가 정책 금리 인상은 없을 것 예상 다만 인플레 우려로 정책 금리 인하 시점은 여전히 미지수
한국은행이 지난달 31일 국외사무소 보고서를 통해 영국 경제가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높은 정책 금리(5.25%) 상태를 상당 기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은은 금융산업 중심의 영국 경제 특성상 전 세계적인 장기채 금리 상승에 따라 하반기 성장률은 상반기보다 다소 둔화될 예정이며, 내년에도 고금리 장기화에 따라 올해보다 부진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파운드화가 약세 전환하면서 수출 시장 상황이 개선돼 전반적으로 경제 성장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나, 다만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경우 중동 전쟁 확산, 유가 불안 등의 이유로 영란은행의 목표 달성은 2025년 상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강한 만큼 정책 금리도 당분간은 내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영국·미국 견조한 성장률, 정책 금리 2025년에나 내릴 것 전망
미국도 장기채 고금리 우려 속에도 경제 성장률이 여전히 전망치를 뛰어넘고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 재무부가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망치(4.5%)를 대폭 넘어선 4.9%로 나타나 시장을 놀라게 했다. 경제 성장세가 계속 유지되는 만큼, 굳이 조기 금리 인하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잔존한 상태다. 러-우 전쟁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겨울 난방에 대한 천연가스 등의 원자재에 대한 수요도 예상되고 있는 데다,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확대돼 이란까지 참전을 시사하면서 유가 움직임에 대한 상방 리스크도 커졌다. 자칫 유가 폭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는 만큼, 경기 우려로 섣불러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또한 최근 장기채 금리의 급상승이 금리 정책에 대한 고민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재정적자로 인한 고금리 장기화가 미국 경제를 둔화시킬 것이란 월가의 지적에 정면 반박하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나타난 국채 금리 상승은 강한 경제의 회복력을 반영한다”면서 “재정적자는 국채 금리 상승과 크게 연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제 성장세가 여전히 견조한 것을 확인한 시장이 장기 고금리를 예측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최근 장기채 금리 움직임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라는 반응이다.
경기 후퇴 조짐 보인다는 지적도
반면 미국 경기 활황기가 끝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미 올 3분기에도 미국의 경기가 점차 식어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해당 기간 동안 미국의 3분기 소득 대비 저축률은 3.8%로 2분기(5.2%)보다 낮아졌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세후 소득은 1% 감소했다. 이달 초 WSJ는 올 4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0.9%, 블룸버그는 1.1%로 제시하며 3분기 대비 성장률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한때 5%를 넘기도 했다가 4분기 이후 경기침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4.85%까지 떨어졌다. 옐런 장관의 발언과 달리 시장은 4분기 이후 경기 냉각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동결 확률은 96.7%를 기록한 데다, 하락을 점치는 비율도 3.3%로 늘었다.
미국 경제성장률과 함께 발표된 3분기 개인소비지출(PCE) 지수도 예상치(2.5%)를 하회한 2.4%로, 소비자 지출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주간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21만 건을 기록하며 전망치(20만7,000건)보다 높게 나오면서 고용시장의 열기도 식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장기채 금리 크게 뛰면서 정책 금리 인상 유인 사라져
한은은 올해 초 영란은행이 6% 가까운 수준까지 정책 금리를 인상하고 강한 긴축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하반기 들어 물가 상승세가 안정되면서 현재 기준 금리를 장기간 유지하는 쪽으로 시장 전망이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투자은행도 미국, 영국 시장이 모두 경제 성장세가 일부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는 있으나, 이미 시장의 장기채 금리가 크게 뛰어 정책 금리 인상 유인이 사라진 만큼 금리를 더 올리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시장에서 컨센서스가 형성되지는 않은 모습이다. 영란은행의 앤드류 베일리 총재는 물가 상승세 등을 감안했을 때 장기간 동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지만, 시장에서는 주요 은행들이 장기채 이자율 폭등에 충당금을 쌓고 있는 상황인 만큼 조기 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 타이밍을 놓칠 경우 자칫 경기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도 속속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