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자회사 ‘ARM’ 美 나스닥 상장, 금융 시장 활기의 ‘마중물’ 역할 할까

‘반도체 강자’ ARM, 미국 나스닥 상륙 예정 최대 규모 IPO 소식에 글로벌 유수 빅테크들 투자 눈독 들여 글로벌 경제 침체 기조에서 ARM에 투입될 유동성, 금융 시장에 끼칠 영향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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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Images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ARM이 미국 나스닥에 직상장될 예정이다. ARM은 영국 기반의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요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이번 ARM 상장에 투자 관심을 보이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ARM의 미 나스닥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뭉칫 돈이 미국 IPO 시장에 대거 유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같은 유동성 유입이 그간 위축됐던 IPO 시장에 활기를 되찾게 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지, 또는 그나마 남아있던 시중 유동성을 모두 빨아들여 금융 시장 전반이 얼어붙게 되는 악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나스닥 상장 앞둔 ARM

21일(현지 시간) 외신보도에 따르면 ARM이 미국 나스닥 상장 신청을 위해 이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밀리에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ARM이 영국과 미국에 동시 상장을 고려할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결과적으로 뉴욕 나스닥 직상장으로 판단을 옮긴 셈이다. 소프트뱅크는 ARM을 640억 달러(약 85조7,312억원) 규모의 기업 가치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나스닥 상장을 위해 일본 투자회사 소프트뱅크는 지난 18일 ARM 지분 중 비전펀드가 갖고 있던 25%를 다시 인수했다. 앞서 소프트뱅크는 2016년 320억 달러(약 42조원)에 ARM을 인수했다가 이듬해 이 해당 회사의 지분 25%를 비전펀드에 매각했는데, 이를 이번에 다시 사들인 모양새다.

당초 소프트뱅크는 ARM 인수 이후 반도체 대기업인 엔비디아에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었으나, 엔비디아의 반도체 시장 독점 가능성,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규제 당국의 큰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같은 맥락으로 삼성전자도 ARM 인수를 타진했으나, 결국 포괄적 협력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같은 배경으로 인해 ARM이 지분 인수, 기업합병보다는 이번 주식시장 상장으로 노선을 틀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ARM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설계회사로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설계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미 나스닥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ARM은 모든 스마트폰의 99%에 들어가는 칩의 아키텍처(구조)를 설계하며 애플의 아이폰용 칩에도 핵심 기술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퀄컴, 삼성전자 등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기업들 대부분이 이 회사의 설계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든다.

소프트뱅크가 영국 핵심 IT 기업인 ARM을 미국 증권에 상장하는 것은, 곧 거시 경제적 관점에서 영국 경제가 경기 불황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예측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 영국 통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던 만큼, 영국 통화의 불안전성과 향후 불투명한 경제 전망으로 인해 자국 증시 대신 미국 증권시장이라는 안전한 피난처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ARM 나스닥 상장 소식에 빅테크 기업들 눈길 쏠려

이번 ARM이 상장되면 미국에선 2년 만의 최대 규모 IPO가 되는 셈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적인 통화 긴축으로 인해 미국 IPO 시장이 근 2년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랜만에 대어급 기업이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번 ARM 상장은 2021년 10월 전기차 제조기업인 리비안이 137억 달러(약 18조3,571억원) 규모의 IPO에 성공한 이후 가장 큰 규모에 해당한다.

이번 ARM의 나스닥 상장은 많은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ARM의 모회사인 소프트뱅크가 아마존, 인텔,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들을 앵커 투자자로 유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또한 ARM 상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표적인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삼전과 TSMC이 ARM의 앵커 투자자로 나설 것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ARM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면서 끈끈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오던 인텔이 이번에는 앵커 투자자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 흘러 나오고 있는 만큼, 삼전과 TSMC가 이에 따라나서야만 인텔에 반도체 시장의 파이를 과도하게 뺏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미국 시총 1위인 애플도 ARM 지분 인수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경제 불황으로 PC, 태블릿,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부품 수급이 이전보다는 나빠진 애플이 관련 경제의 상대적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ARM 지분 인수라는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사진=GettyImages

얼어붙은 IPO 시장 되살리는 ‘계기’일까, ‘확인사살’일까

이처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관심이 대거 쏠리는 가운데, 업계에선 이번 ARM 나스닥 상장을 통해 그간 메말라 있었던 IPO 시장이 되살아나는 것은 물론, ARM 투자를 시작으로 금융 시장에 대한 투자가 다시금 활발해질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린다. ARM을 향한 빅테크 기업들의 자금이 그간 통화 긴축으로 인해 유동성이 메말라 붙은 증권 시장에 대한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즈는 “ARM 나스닥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기존 상장을 추진하다 보류됐던 미국 AI 데이터 스타트업 데이터브릭스, 신분 확인 스타트업 소큐어, 식료품 배달기업 인스타카트 등이 상장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이와 반대되는 시각도 존재한다. 나스닥에 상장된 ARM이 기존 시중에 남아있던 유동성마저 모두 흡수해 금융 시장 자체가 얼어버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이행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기업이 사업 영위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영업 마진 폭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ARM에 투입된 빅테크 자금도 단기간 내에 회수하기는 어려워져 유동성이 묶여버리고, 결국 금융 시장이 기존보다 더욱 위축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지난해 우리나라 IPO 시장에서 소위 ‘대박’을 터뜨렸으나 추후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였던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을 들 수 있다. 지난해 초 IPO 당시 LG엔솔은 1경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증거금이 몰리고 경쟁률은 2,000대 1을 상회하는 등 막대한 유동성을 끌어모았으나, 실적 부진 전망에 상장 이후 3개월째 주가는 시장 예상 대비 4분의 1도 못 미쳤다. 이에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시장 참가자들은 자금 운용의 여유를 줄였고, IPO 공모 시장이 크게 위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