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 中 반독점 규제에 막힌 인텔의 타워 세미컨덕터 인수합병, 우리나라엔 호재?

반도체 둘러싼 美·中 힘겨루기에 M&A 계약 결렬된 인텔 M&A 체결됐다면 미국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 잡아먹는 그림 됐을 수도 중국이 의도치 않게 한국 대신 미국 견제해 준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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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 ‘타워 세미컨덕터(Tower Semiconductor)’와의 인수합병(M&A) 계약을 철회한다. 타워 세미컨덕터와의 M&A는 인텔이 기존 중앙처리장치(CPU) 반도체로 편중됐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 뛰어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첫 번째 단추였으나, 시작부터 중국 반도체 반독점 규제 기관에 의해 차질을 빚게 된 모양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미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에 대한 인바운드 및 아웃바운드 투자를 모두 틀어막는 규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정치적으로 맞받아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다소 호재로 인식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이 해당 인수를 통해 한국의 반도체 사업 파이를 뺏어가려고 했던 움직임을 중국이 대신 견제해 준 셈이라는 설명이다.

사진=인텔

미·중 갈등에 새우등 터진 인텔

15일(현지시간) 인텔은 기존 타워 세미컨덕터를 인수하기로 했던 계약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2월 인텔은 타워 세미컨덕터를 54억 달러(약 7조2,000억원)에 인수키로 계약했다. 타워 세미컨덕터는 의료·산업용 장비, 소비재 및 자동체에 쓰이는 반도체와 집적회로를 생산하는 이스라엘 기업으로, 본국을 비롯해 미국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일본 등지에 생산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당초 타워 세미컨덕터와 M&A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계약 기한(15일)까지 중국 반독점 규제 당국이 거래 승인을 유보하면서 결국 불발에 그치게 됐다. 반도체 업계 M&A의 경우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등 반도체 이해 당사자국들의 독점 여부 심사 통과가 필요하다.

이번 인텔의 M&A 불발을 두고, 전문가들은 이 또한 결국 미·중 갈등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자국 사모펀드 및 벤처캐피탈의 중국 첨단산업에 대한 역외투자(아웃바운드 투자)를 본격 규제키로 행정 서명하면서, 돈줄이 끊긴 중국이 미국 기업들의 M&A를 가로막는 방식으로 맞대응했다는 분석이다. 인텔은 원래 M&A를 1분기 안에 끝낼 계획이었으나, 중국 규제 당국이 계약 기한인 15일까지 승인을 해주지 않으면서 결국 거래를 성사하지 못하게 됐다. 이에 스테이시 라스곤 미국 샌포드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타워 세미컨덕터를 안방으로 들이지 못하면서 인텔의 파운드리 영토 확장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인텔의 파운드리 산업 제패하겠단 당찬 포부, 그러나 시작부터 겪게 된 난항

지난해 인텔은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파운드리 시장 2위에 오르겠다며 대대적인 사업 확대를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인텔의 지난해 파운드리 사업 매출은 8억5,000만 달러(약 1조1,351억원)로 전체 매출의 2%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 이에 인텔은 더 이상 CPU 반도체만으로 성장을 꾀하긴 어렵다고 판단, 파운드리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인텔이 최근 이스라엘, 폴란드, 독일 등에 대규모 설비 투자를 잇따라 발표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번 타워 세미컨덕터 인수 시도도 그 일환이었다. 지난해 기준 파운드리 업계 점유율 8위를 기록한 타워 세미컨덕터는 차량용 및 반도체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회사로, 인텔은 해당 시장에서 타워 세미컨덕터가 차지하는 파이가 크진 않지만 회사가 가진 전문성과 고객을 높게 평가해 M&A를 결정했다. 이에 인텔은 지난해 2월 약 7조원을 투자해 M&A를 위한 물밑 작업을 벌여왔으나 이번 중국 반독점 기관의 규제로 일련의 시도가 무산으로 돌아간 모양새다.

이미 중국은 M&A 승인 지연을 자국 산업의 유리한 무기로 사용한 바 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NAND)플래시 사업부문 인수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반독점 기관은 SK하이닉스의 인수 발표가 난 후 14개월이나 시간을 끌면서 승인을 미뤘고, 이마저도 중국 내 생산 확장 등 6가지 조건을 추가로 달았다. 동일선상에서, 이번 인텔의 세미컨덕터 M&A 계약 불발도 미중 갈등의 문맥 속에서 중국이 합병 승인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팻 겔싱어 인텔 CEO/사진=인텔

중국의 인텔 M&A 규제, 한국엔 호재로 작용

다만 이번 인텔의 M&A 불발은 우리나라에는 다소 호재로 다가올 것으로 분석된다. 타워 세미컨덕터 M&A가 성사될 경우 인텔은 차량용·산업용 반도체를 1,000nm에서 22nm까지의 다양한 종류와 낮은 단가로 생산 가능한 인프라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 사업은 ‘설계’에 집중돼 있는 만큼, 미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이 전무하다. 즉 미국의 생산 인프라는 제로 베이스에 있기 때문에 생산시설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그런 만큼 타워 세미컨덕터 인수를 통해 생산시설을 확보하겠다는 게 인텔의 의도였다. 이와 함께 인텔은 올 하반기부터 미국 오하이오주에 23조8,500억원 이상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2개를 세울 예정이었는데, 이게 현실화 됐다면 현재 미국은 설계, 대만과 한국은 제조공정으로 나뉘어 있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판도를 미국 중심으로 다시 짜게 되는 그림을 그리게 되는 셈이었다.

당시 인텔이 시총 36억 달러(약 4조8,096억원)인 타워 세미컨덕터를 구입하는 데 50% 프리미엄을 지불해 54억 달러를 썼던 이유다. 타워 세미컨덕터는 미국 2개, 이탈리아 1개, 일본 1개 등 전 세계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인수를 통해 공급망 리스크를 낮출 수 있는 것은 물론, 반도체 설계분야에서 원티어에 있는 인텔이 제조 인프라 또한 획득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배경에서 이번 M&A 불발은 인텔의 ‘쾌속 질주’를 중국이 한국 대신 견제해 준 그림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