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업용 부동산 위기 본격 가시화, “미국 경제 뒤흔들 뇌관”
美 상업용 부동산 대출 디폴트 위기 재택근무와 고금리 기조가 원인으로 꼽혀 관련 자산 비중 높은 상업용 은행들, ‘뱅크런 위기’ 수면 위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미국 경제를 뒤흔들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은행의 직접대출뿐만 아니라 상업용부동산저당증권(CMBS), 부동산투자신탁(REITs) 등 간접대출까지 포함하면 무려 수천조원의 자금이 관련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상업용 부동산 침체가 미국 중소형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이로 인해 미국 중소형 은행의 뱅크런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 금융 경제 전반으로 번져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은행업계와 경제 전반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현지 시간) 진단했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은행이 대출 규모를 줄이고, 이는 또다시 추가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업용 부동산 위기는 사무실 공실이 급증한 대도시에서 먼저 신호탄을 쐈다. 부동산 투자회사 PXR은 최근 디폴트를 선언했다. 뉴욕시 맨해튼 소재 33층 오피스빌딩을 담보로 빌린 2억4,000만달러 (약 3,200억원) 대출 만기가 다가왔으나, 이를 재융자하겠다는 은행이 하나도 없어서다. 한편 뉴욕의 지역은행인 M&T은행은 지난 6월 뉴욕시와 워싱턴DC의 사무실과 의료시설 총 세 곳에 1억2,700만 달러(약 1,700억원) 상당의 대출을 상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M&T은행은 올 초부터 관련 자산의 익스포져(위험노출액)을 줄이고 있다. 120년 역사의 OZK은행도 특정 부동산 개발업체의 디폴트 선언으로 6,000만 달러(약 800억원) 규모의 대출 회수에 차질을 빚고 있다. 당초 OZK은행은 담보로 삼은 건물 부지 가격이 2021년 1억3,900만 달러였기에 대출이 안전하다고 평가했으나 지난해 말 부지 가격은 1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은행업권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액은 총 2조2,000억원 달러(약 3,000조원)로 2015년 이후 7년 만에 2배로 증가했다. 여기에 수치상으로 드러나지 않은 간접 대출을 포함하면 미국 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익스포져는 3조3천억 달러(약 4,400조원)으로 불어난다는 게 금융 업계의 주장이다. 상업용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각종 채권 인수,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은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여신 등도 결국 은행이 해당 부동산에 간접적으로 돈을 빌려준 것과 같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부동산 분석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중 만기가 도래하는 부동산 관련 대출 및 증권은 약 9,000억 달러(약 1,200조원)에 달한다. 이들 대출은 대부분 현재 금리 수준보다 낮은 금리로 차입된 대출들이다. 즉 이들은 현재 고금리 기조가 강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재융자를 받아 이자 비용이 급등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얘기다. 이에 타일러 위거스 전 연준(Fed) 상업용 부동산 고문은 “과거 은행에 3.5% 이자를 지급하던 대출자가 갑자기 7.5%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 상황을 꼬집었다.
상업용 부동산 위기의 원인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이처럼 흔들리는 이유는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하락했고, 일상 회복이 된 이후에도 공실률이 회복되지 않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 4월 WSJ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12.9%로, WSJ가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 여기에 계속된 금리 상승으로 인해 상업용 부동산의 대출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면서 지금의 위험이 촉발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주택의 경우 코로나 기간 동안 상승한 부동산 가격이 고금리 기조에도 비교적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는 반면,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가격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초기 락다운으로 인해 상업활동이 급감하면서 소매점, 사무실, 호텔 등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부동산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 현금흐름이 감소했고, 코로나19가 장기화로 인해 오피스 중심으로 재택형태 근무방식이 많아지면서 공실률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엔데믹 이후 미국 내 근무형태가 IT 산업 등을 필두로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트렌드가 가속화면서 오피스 공실률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이 높게 유지되면서 임대 수익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하락, 대출 담보물건으로서 가치에도 악영향을 주면서 결과적으로는 은행업계 및 금융 경제 전반이 위협을 받게 됐다는 설명이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주로 5~7년 기간 후 다시 가치산정을 하는 방식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이유로 기존 부동산 대출자들의 담보 자산이었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재융자 시 기존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대출이 재설정됨에 따라 은행업계의 대출 규모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 채무자들의 디폴트 위기가 높아졌다. 여기에 SVB 사태 이후 미국 금융 당국이 은행 건전성 강화 등을 이유로 LTV 기준, 만기, 대출 규모 등 여러 가지 대출에 대한 요건이 강화된 것도 은행업계의 상업용 부동산 관련 여신 사업 위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형 은행 건전성 우려돼
지난 10여 년의 유례없는 ‘유동성 파티’ 속에서 미국 은행업계는 상업용부동산 대출로 호황을 누려왔다. 지난해 상업용 대출 시장은 2조2,000억 달러(약 3,000조원) 규모로 7년 전에 대비 2배 성장했다. 동 기간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43%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은행업계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 대형은행과 달리 당국 규제와 감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지방 중소형 은행들은 ‘하이리스크-하이 리턴’ 성격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대거 뛰어들었는데, 이번 상업용 부동산 침체로 인해 이들 줄도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를 적용받은 대형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중은 30%로 줄었지만, 중소형 은행의 비중은 현재 70%까지 늘었다.
특히 전문가들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이 중소형 은행의 손실 흡수능력을 약화시켜 종국적으로는 연쇄 뱅크런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의 분석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 대출 디폴트 발생 시 은행의 부동산 대출비율(CET1)이 최대 0.8%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ET1이란 보통주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위기 상황에서 금융기관의 손실 흡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통상 시장에선 CET1 비율이 8%를 넘어가면 손실 흡수 능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해 왔으나, 올해 3월 SVB 사태 등으로 인해 최근 시장의 기준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즉 CET1이 한 자릿수인 중소형 은행의 경우 상업용 부동산 대출 디폴트가 건전성 우려와 함께 뱅크런을 불러올 수 있단 의미다.
전직 IB 업계 종사자 A씨는 “최근 미 은행 대출 태도가 상업용 부동산에서 가장 엄격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출 축소는 그간 상업용 부동산으로 엄청난 수익을 누려왔던 중소형 은행에서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보이며, 대출 축소는 미국 성장세에 부정적인 파급을 미칠 뿐만 아니라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만기 연장도 어렵게 만듦으로써 디폴트가 추가적으로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