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 연간 25조원 규모 ‘법인세 감면’ 등 대규모 부양책 발표 “투자 활성화로 경기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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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 앞둔 英보수당, 전방위 감세안으로 지지율 반전 노려
코로나 당시 법인세 19%→25% 올린 탓에 경기 둔화 두드러져
기업 지원책 쏟아내는 독일 등 이웃 나라 정책에도 자극 받아
리시 수낵 영국총리/사진=위키미디어

영국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법인세 감면을 단행한다. 올해와 내년 모두 유럽연합(EU) 최저 수준인 0%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어두운 전망과 더불어, 최근 독일 등 주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법인세를 낮춰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흐름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지난해에도 유사한 대규모 감세안을 내놨던 영국 보수당 정부가 내년 총선 앞두고 지지율 반전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번 감세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기업 감세안

22일(현지 시간) 영국 재무부는 연간 150억 파운드(약 25조원) 규모의 법인세 감면을 골자로 하는 가을 예산안을 발표했다. 예산안에 따르면 기업들은 정보기술(IT) 장비와 생산설비에 투자한 금액의 25%를 법인세에서 공제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영국 기업은 연간 최대 110억 파운드의 법인세 부담을 덜 것으로 보인다.

숙박·소매·레저업종 기업에 한시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던 법인세 75% 인하 조치도 5년간 연장하기로 했다. 이에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해당 업계는 총 43억 파운드(약 7조801억원) 규모의 감세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제조업 분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2030년까지 자동차·우주항공·생명공학·신재생에너지 산업 등에 45억 파운드의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나아가 인공지능(AI)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관련 인프라 조성에 5억 파운드를 별도 투자하고,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위한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기업 세금뿐만 아니라 영국 사회보험, NIC 등 국민보험요율도 현행보다 2%포인트 낮춰 10%로 인하한다. 가계 부담을 줄여 소비지출 증가를 늘리겠단 의도다. 이와 관련해 영국 재무부는 “연봉 3만5,000파운드(약 5,600만원)인 사람이 연간 450파운드(약 72만원)가량의 보험료를 덜 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재 시간당 10.42파운드인 최저임금은 내년 4월부터 11.44파운드로 인상되며, 저소득층 또는 실직 가구에 지급되는 유니버설크레디트 수당도 6.7%가량 인상될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이번 예산을 통해 연간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 이상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기업 투자가 증가하고, 더 많은 사람이 일하게 되면서 내년에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감세안의 주요 배경, ‘0%대’ 경제성장률 전망

영국 정부가 기업과 가계를 위한 대대적인 감세안을 내놓은 이유는 올해(0.5%)와 내년(0.6%) 경제성장률이 0%대에 그치는 등 경기 침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라 주요국 대다수가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가운데 영국은 2년 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예산을 대폭 증액하며 당시 19%였던 법인세의 명목 최고세율을 올해부터 25%로 올린 바 있다. 이에 더해 미국발 고금리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맞물리면서 경기 둔화 양상이 뚜렷해졌다.

영국 주변의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법인세 감면 등의 대대적인 지원책을 발표한 것도 자극이 됐다. 올해 선진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역성장이 예상된 독일은 지난 8월 4년간 320억 유로(약 45조원) 규모 법인세를 경감해 주는 ‘성장기회법(Growth Opportunities Act)’을 도입한 바 있다. 성장기회법은 최근 연간 10조원의 법인세를 감면하고 기업의 전기요금을 97% 감면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대표적인 경기부양책이다.

국가 부도위기에 몰렸던 그리스와 영국의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아일랜드가 법인세 감면 등으로 성장을 거듭한 점도 주효했다. 법인세를 낮추는 등 친기업 정책을 펴온 그리스는 최근 수년간 GDP 성장률이 EU 평균 성장률보다 2%p 이상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찍이 법인세 혁명(50→12.5%)을 단행한 아일랜드는 2003년에 이미 영국의 1인당 GDP를 추월했고, 지난해에는 영국의 2배가 넘는 수준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영국 보수당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통해 지지율 반전을 꾀하고 있으나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대규모 감세안에 따른 재정 악화에 따라 인플레이션과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보수당 정부가 내놓은 대규모 감세안에 재정 악화 우려가 급증하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고 국채 금리가 폭등하는 등 영국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마저 고강도 감세정책에 대한 비판 대열에 가담할 정도로 논란이 거세자 결국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