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내는 족족 불티나게 팔린다” 美회사채, 올해 발행 규모 ‘사상 최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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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발행된 회사채만 ‘1,530억 달러’, 1990년 이후 최고치
몇 달 새 낮아진 금리, SVB 파산 이후 억눌렸던 발행 수요 겹친 영향
'중국 경제 위기' 등 향후 불확실성 높아, 신흥국 채권시장서도 유사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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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직 1월이 지나지도 않은 지금, 미국 회사채 시장의 채권 발행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올해 통화정책 운용에 대한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던 지난해 11월보다 조달 금리가 낮아진 데 더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를 앞둔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리는 영향이다. 신흥국 채권 시장에서도 올해 첫 4거래일간 신흥국 정부·기업들의 달러·유로화 표시 채권 발행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美 기업들 “불확실성 높아, 당장 낮아진 금리에 자금조달 집중”

21일(현지 시간)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에 따르면 올해 들어 투자등급 기업들이 미국 채권시장에서 1,530억 달러(약 204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달러 표시 회사채 발행금액으론 1990년 이후 30여 년 만에 최고치다. 특히 이 금액 중 3분의 2 이상이 은행·금융기관에 의해 이뤄졌으며 JP모건, 웰스파고, 모건스탠리 등 대형 투자은행들도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회사채 발행이 기록적 규모를 기록한 이유는 불과 몇 달 전보다 금리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투자 등급 회사채 금리의 평균 수익률은 연 5.34% 정도로, 지난해 11월 중순 연준의 긴축 기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당시 6%를 넘겼던 것보다 크게 낮다. 여기에 미 국채와 회사채 간의 수익률 차이를 의미하는 신용 스프레드도 최근 2년 이내 가장 낮은 1.01%p로 떨어졌다.

과거보다 투자자들의 수요가 늘어난 점도 기업들이 채권 발행을 서두르는 요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차입자인 기업들이 낮은 이자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을 늘리는 한편, 채권 투자자들도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기 전 새로운 채권을 사들이기 위해 서두르면서 회사채 시장이 붐비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기준금리가 인하되기 전, 즉 채권 가격이 아직 저렴할 때 매수하려는 투자자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통상 채권 금리는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이 밖에도 지난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억눌렸던 회사채 공급이 폭발한 것이란 분석과 더불어, 최근 기업들이 경기 둔화 지표가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아직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될 요인이 남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가 글로벌 경기의 연착륙 시나리오를 믿고 있다”면서 “시장이 침체되기 전에 미리 자금을 조달하려는 재무 담당자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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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미국 하이일드 스프레드(블루)와 Baa 등급 회사채 스프레드(레드) 추이/출처=FRED

신흥국 채권시장 발행 규모도 급증하는 추세

이같은 양상은 신흥국 채권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7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첫 4거래일간 신흥국 정부·기업들의 달러·유로화 표시 채권 발행 규모가 244억 달러(약 32조6,700억원)를 기록하면서 같은 기간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연도별 첫 4거래일간 신흥국의 채권 발행 규모는 2020년 3억 달러에서 2021년 59억 달러로 급증한 뒤 2022년(62억 달러)과 2023년(209억 달러)에도 증가세가 이어졌다.

신흥국 채권 시장의 이러한 흐름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과거보다 완화된 채권 시장 여건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해 4분기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던 신흥국 채권 시장에선 현재 채권 평균금리가 직전 분기보다 1.5%p가량 낮아진 상태다. 여기에 미국 기준금리 인하 개시 시점의 불확실성 등에 따라 향후 금리가 다시 오를 수 있단 우려까지 겹치자, 정부와 기업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채권 발행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도 중국 경제 둔화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주요국 선거 등 대외적 위험 요인이 시장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채권 물량이 쏟아지는 또 다른 배경이다. 미하이 버르거 헝가리 재무장관은 당초 시장의 예상보다 5억 달러나 더 많은 채권을 발행한 배경을 두고 “앞으로 몇 달간 혹은 올 한해 남은 기간 무슨 일이 생길지 예견할 수 없다”며 “유리한 금리 조건에서 발행 기회가 있는 만큼 최대한 빠르게 자금을 모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이 신흥국 채권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함에 따라 정부와 기업들의 채권 발행 추세도 이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EPFR에 따르면 최근 2주간 글로벌 신흥국 채권 펀드들에 최근 2주새 4억9,400만 달러가 순유입됐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5개월 연속 순유출이 지속된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아울러 주요 투자기관들도 지속 신흥국 채권에서 다양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만라즈 세콘 템플턴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 제외 글로벌 주식과 신흥국 시장, 그리고 소형주를 선호한다”며 “특히 채권 시장에선 신흥국 하이일드가 미국 국채보다 매력적인 스프레드와 낮은 민감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밸류에이션 관점에서 볼 때, 해당 섹터에 많은 투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