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에 머문 행동주의, 주주제안 성과 부진에 올해는 ‘발톱 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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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시즌 마무리 단계,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은 사실상 '실패' 분위기
공격성 누그러뜨렸지만, "행동주의 펀드는 여전한 부담"
발톱 감추고 기회 노리나, "제대로 된 성과 보려면 몇 년 기다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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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태광산업이 서울 중구 굿모닝시티빌딩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사진=태광산업

국내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끝난 가운데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성공 여부에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행동을 펼친 기업 이사회에 추천 후보가 들어가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행동주의 펀드는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렇다 보니 행동주의 펀드 자체적으로도 다소 공격성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동시다발적인 주주제안과 캠페인으로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리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성과 못 얻은 행동주의 펀드들, ‘찻잔 속 폭풍’에 그치나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3월 주주총회를 연 기업 가운데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행동 대상에 오른 곳은 태광산업, JB금융지주, 삼성물산, KT&G, 금호석유화학 등이다. 이 가운데 태광산업은 행동주의 펀드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29일 정기주주총회에서 트러스톤자산운용에서 주주제안한 김우진·안효성 사외이사 후보 및 정안식 사내이사 후보의 선임 안건을 의결한 바 있는데, 태광산업이 주주제안을 통해 상정된 이사 후보를 선임한 것은 2007년 장하성 펀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이 2021년 6월 태광산업 지분 5.01%를 일반투자 목적으로 사들인 뒤 주주행동 캠페인을 꾸준하게 진행해 왔던 것이 빛을 발했다는 의견이 업계를 중심으로 쏟아진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분 매입 이후 태광산업에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 기업가치 저평가 해소 등을 지속해서 요구해 왔지만, 태광산업이 보수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대치 구도를 이었다. 일례로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 당시 트러스톤자산운용이 1주당 1만원 규모의 현금배당, 주식 10분의 1 액면분할, 자사주 취득 등을 주주제안했지만 모두 부결되기도 했다. 주주제안 가운데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 선임의 건(조인식)은 주주총회 상정에서 아예 제외됐다.

트러스톤자산운용과 태광산업의 관계는 2023년 11월부터 개선되기 시작했다. 당시 태광산업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5개년 계획을 내놓으면서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트러스톤자산운용도 이를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트러스톤자산운용에서 추천한 후보들이 태광산업 이사회에 입성하게 됐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입장에서는 태광산업과 협력을 통해 주주행동 캠페인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된 셈이다.

반면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는 JB금융지주를 대상으로 펼친 주주행동 캠페인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데 그쳤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3월 28일 열린 JB금융지주 정기 주주총회에 이사 후보 5명을 추천했는데, 이 중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린 건 김기석·이희승 후보 두 명 정도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주주제안한 안건 가운데 비상임이사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부결됐다.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안건의 경우 JB금융지주에서 제안한 후보 4명이 선임됐고,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측에서 추천한 2명은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들 트러스톤자산운용과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을 제외한 다른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행동은 절반의 성과조차 내지 못했다. 싱가포르계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3월 28일 KT&G 주주총회에서 방경만 후보의 대표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방 후보가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경우 박철완 전 상무와 손잡고 금호석유화학에 대해 주총 표 대결에 나섰지만 사측 이사회 안이 모두 통과되며 고배를 마셨다. 안다자산운용은 영국계 자산운용사 시티오브런던, 미국계 자산운용사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 다른 자산운용사 4곳과 주주연대를 꾸려 삼성물산을 상대로 현금 배당 확대 등을 요구했으나 지난달 15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주주연대 측 안건은 모두 기각됐다. 한창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행동주의 펀드가 막상 시장에 들어와선 ‘찻잔 속 폭풍’만 못한 결과를 내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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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과소평가해선 안 돼, 기업 입장에선 여전히 부담”

다만 올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단 이유만으로 행동주의 펀드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행동주의 펀드가 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여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행동주의 펀드는 주식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사주 소각과 매입, 배당 확대, 이사 선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애초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단 의미다. 이에 대해선 한 행동주의 펀드 관계자도 “주주제안이라는 게 엄청난 시간, 비용,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으로 무조건 늘려나갈 수는 없다”며 “견제 역할이 중요한 것으로 당장 한 해보다 몇 년간에 걸친 활동을 통해 성과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입장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여전하다. 행동주의 펀드의 압박이 상장 기업의 의사결정에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긍정적인 역할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성장전략과 괴리된 채 단기 주가 상승과 차익 실현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면 기업은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 체력에 비해 과도한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하는 등 행태를 보이는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에 적잖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상장사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보단 현재의 주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하면 이슈가 되니까 개인투자자도 자연스레 모이겠지만, 결국 장기적인 기업 발전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언급했다.

대화 나선 행동주의, 기업 압박 방식도 ‘다변화’

일단 올해엔 행동주의 펀드들도 지난해에 비해선 공격성을 누그러뜨리는 모양새다. 실제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주주 활동을 벌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올해 주총을 앞두고 주주환원 정책과 관련한 별도의 주주제안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히려 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지주 등 7곳이 주주환원율을 전년 대비 평균 4.2%p 인상하고 작년에 발표한 자본 배치 및 주주환원 정책 준수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긍정 평가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 또한 태광산업을 제외하곤 따로 주주제안을 하지 않았으며,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행동주의 활동을 해온 KCGI도 이번 정기 주총에선 따로 주주제안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들도 올해엔 대화에 좀 더 무게를 싣는 분위기”라며 “어떻게든 기업과 맞붙어야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최대주주 및 국민연금과의 연대를 꾀하거나 대규모 소송을 추진하는 등 보다 간접적인 압박을 넣는 게 요즘 추세”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지난해 주총 기간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지나치게 활개를 치다 유의미한 성과를 보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다발적인 주주제안과 캠페인으로는 가시적인 성과가 보장되지 않음을 깨달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들의 태도 변화를 이미 이끌어낸 상황인 만큼 행동주의 펀드 입장에서도 강대강 대결로는 입지를 굳히기 어려우리란 판단이 나온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한 행동주의펀드 임원은 “주주제안을 한 번 할 때마다 법률 상담과 캠페인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며 “기업으로서도 법적 대응에 부담스러운 비용이 들고 부정적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데, 올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까지 추진돼 대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분위기도 아니다”라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