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에 개미들도 외면하는 한국주식, “낮은 배당 성향·쪼개기 상장부터 해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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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시장 기피 현상 만연, 원인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성장 동력 되찾으려는 정부, 정작 쪼개기 상장 등에는 '속수무책'
정부 전략은 배당 압박, 시장선 "기업의 주가 상승 노력부터 유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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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와 성장 동력 상실 우려 등의 이유로 한국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는 ‘K-증시 패싱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장에선 정부의 노력 방향성이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순히 배당만 압박할 게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 개선, 국내 시장 내 기업과 투자자 간 상호신뢰도 향상부터 차근차근 이뤄나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 한국 증시의 현실은

한국 주식시장은 다른 나라 주식에 비해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적용된다. 같은 매출, 같은 이익을 내는 두 회사 중 한국 회사의 주가가 외국 회사 주가보다 싸다는 의미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대표적인 주식투자 지표를 비교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좀 더 확실히 드러난다.

2022년 결산 자료에서 한국 코스피200의 PER은 11.3인 반면, 미국의 PER은 20.4로 한국의 2배 가까이 된다. 삼성전자가 한국 회사가 아니라 미국 회사였다면 주가가 2배가량 더 비쌌을 것이란 뜻이다. 이외 일본의 PER은 16.3이고, PER이 낮은 편인 프랑스도 13.8 수준이다. 선진국의 PER 평균값이 17.9임을 고려하면 한국의 수치가 얼마나 낮은지 체감이 잘 된다.

PBR은 더 심하다. 지난해 기준 한국 코스피200의 PBR은 0.9였는데, 당해 선진국 시장의 PBR은 2.9, 신흥국은 1.6 수준이었다. PBR은 통상 1.0이 정상 수준이고 1.0보다 낮으면 굉장히 저평가돼 있다고 본다. 개별 회사도 아닌 한국 전체의 코스피200 평균이 1이 되지 않는단 점은 한국 증시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정학적 위험이 원인? “자본활용성 등이 더 큰 문제”

이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이 1순위로 꼽힌다.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인 만큼 한국 기업은 외국 기업보다 위험도가 높다. 북한 위협 탓에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잘 사지 않다 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만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전 세계에서 전쟁 가능성이 높은 국가가 비단 한국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만은 미국과 중국 간 군사적 충돌 위기로 거듭 위협을 받고 있다. 전쟁 위험이 디스카운트의 진정한 원인이라면 대만은 한국보다도 주가가 낮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만의 PBR은 2.2로, 한국의 2배를 상회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 특유의 낮은 자본 활용성과 배당 성향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 주식시장 자기자본이익률(ROE)은 8.0%로 미국(14.9%), 일본(8.3%), 영국(9.6%), 중국(9.3%) 등 주요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ROE는 자기자본을 활용해 1년간 얼마나 많은 순이익을 창출했는지 판단하는 수익성 지표로, 경영 효율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쓰인다.

ROE가 낮다는 건 그만큼 자본 생산성이 저조하다는 뜻이다. 배당 성향도 주요국보다 낮다. 한국의 배당 성향은 10년 평균 26.0%로 미국(42.4%)·일본(36.0%)·영국(129.4%)·중국(31.3%) 등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배당 성향은 당기순이익에 대한 현금배당금의 비율을 뜻하는 말로 주로 주주환원 관련 참고 지표로 활용되는데, 배당 성향이 높을수록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에게 많이 돌려주고 있다는 의미다.

쪼개기 상장이 만연하다는 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부추기는 요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상호출자제한집단(자산총액 10조원 이상) 가운데 상장 회사가 2개 이상인 집단에 속한 상장사는 208개에 달했다. 국내 상장사 전체(2,457개)의 8.47%에 이르는 규모다. 대기업 계열사의 ‘줄줄이 상장’ 현상도 거듭 이어졌다.

문제는 모·자회사 동시 상장으로 인해 ‘모회사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증권시장에 모회사와 자회사가 함께 상장돼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의 지분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수 있단 뜻이다. 자회사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만큼 모회사에 투자할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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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한 밸류업, 시장선 “배당 압박만으론 부족해”

이에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상장주식 대주주 양도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한도 확대 등 정책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증시 투자 세 부담을 줄여 투자 수요를 끌어올리면 주가도 오른다는 분석에 따른 것인데, 시장에선 정부가 핵심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진적인 국내 기업 지배구조를 해결하지 않고 피상적 문제 해결에만 매몰되면서 사실상 밸류업 동력을 잃었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해선 단순히 배당을 늘릴 것을 압박할 게 아니라 주가 상승을 위한 기업 차원의 노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르게 말하면, 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기업을 신뢰할 수 있게 해달란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시장에선 재벌그룹에 속한 기업은 이익 추구보다 계열사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 계열사가 경영난에 빠지면 같은 그룹에 속한 다른 계열사가 도움을 준다는 건데, 이는 기업의 본질인 이익 추구를 뒷전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는다.

대기업 승계를 위한 꼼수로 계열사 동시 상장을 활용하는 양상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순환출자로 지배력을 공고히 해오던 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 도입으로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대안 중 하나가 자회사 상장”이라며 “불투명한 지배구조 체제가 지속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내에 국한된 자회사 상장 이슈는 지분율 희석을 꺼리는 지배주주와 승계 이슈, 자금 조달 수요, 증권사들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린 결과”라며 “주주 및 기관투자자들의 꾸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투자자의 투자금이 몰리려면 회사가 주가 상승에 힘쓰고 있음을 내보일 필요가 있다. 주가 상승에 큰 뜻이 없음을 스스로 내비치는 꼴을 반복하는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금이 몰리지 않음은 결국 당연한 시장 순환의 원리라는 것이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먼저 디뎌야 할 지침돌은 이 같은 시장 불신을 먼저 지우는 일이라는 목소리가 거듭 쏟아진다.